1. 모든 법이 다만 의식에 의해 지어진 것일 뿐, 실제(實際)란 없다.
  2. 법문(法門) : 만법(萬法)이 유식(唯識)이라는 이 말 자체가 또 하나의 법이다.
  3. 공안(公案) : 법(法)이란 바로 중생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4. 게송(揭頌) : 무명이 본래 석가의 몸이거늘·······
 
     
   
     
   

비단 불법(佛法)에 인연을 맺지 않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살면서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거창하게 만법이 유식(唯識)이니,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니 하는 고색창연하고 종교색 물씬 풍기는 말을 거들지 않더라도, 이미 모든 사람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연 불자(佛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지금 세속의 여느 일반인들에 비해 그러한 부처님 말씀을 얼마나 더 깊이 사무쳐, 참으로 그리 행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사실. 그렇다면 온 중생의 손에 깨달음의 실마리는 이미 쥐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깨닫는가 깨닫지 못하는가의 차이는 단 하나다. · · · · · · 진실로 마음뿐이요, 마음밖엔 한 법도 없다는 사실을 얼마나 분명히 사무치는가, 모든 법은 다만 의식에 의해 지어진 것일 뿐, 실제(實際)란 없다는 사실을 얼마나 철저히 사무치는가 이다.  


어머니 배 밖에 나온 이후로 줄곧,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며 알게 된 모든 것들이 몽땅, 전혀 의심할 여지없는 실제라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이, 사실은 그것이 전부 네 마음으로 지어진 전혀 실체가 없는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은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듣자마자 선뜻 그 말에 동의하여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52가지의 부처 지위(地位) , 50위인 법운지(法雲地)에 이른 보살도 여전히 은은하게나마 마음 밖에 뭔가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니,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사실이 불교라는 특정 종교의 교리나 부처님의 말씀으로서가 아닌, 어찌 보면 모든 사람들이 종교보다도 더 믿어 의심치 않는 과학에 의해 증명된 바라면,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는 진실에 대해 보다 흔쾌히 마음을 열 수 있는 조건은 충분히 갖추어진 것이 아닌가. · · · · · · 20세기 들면서 일단의 선구적인 물리학자들에 의해 그 사실이 이미 증명돼 마쳤다는 얘긴 이미 수도 없이 반복된 것이고 보면, 역시 관건은 그 진실 앞에 그동안 절대적으로 믿어왔던 라는 존재를 얼마나 기꺼이, 얼마나 통쾌하게 놔버릴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이다.  


늘 적당한 선에서 현실과 타협하며 내 것을 지키기에 급급하여, 도대체 그 내 것이란 것이 어디서 온 것인가를 전혀 돌이켜 볼 생각조차 못하고, 매일 매일을 그 말단 끄트머리에서 서로 밀고 당기고 옥신각신 먼지만 피우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 · · · · · 이미 우리 손에 이 온 우주 삼라만상의 근본을 깨달아 마쳐 훤칠하게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마저 쥐어져 있으면서도, 또한 수많은 선지식들의 간곡한 말씀이 이미 차서 넘칠 만큼 많은데도 여전히 그리하고 있다면, 말세(末世)라는 말이 전혀 지나친 과장이 아니지 않는가.  


크게 심호흡하고 한동안 잊고 살아온 진실에 대해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되짚어 봄으로써, 모든 것이 가 지은 바라, 진실로 마음뿐이요, 마음 밖에는 단 한 법도 없는 것이 제법실상임을 다시 한 번 깊이 사무쳐야 할 것이다.  




경전(經典)에 이르기를, · · · · · ·  


『마음을 등지고 경계에 합하면 세속의 잡사(塵霧)가 일어나고, 경계를 여의고 마음에 합한다면 법계(法界)를 뚜렷이 비추느니라. 왜냐하면 마음은 능의(能依), 법은 소의(所依)이기 때문이다. 소의는 능의로부터 나는 것이니, 마치 물은 능의요, 물결은 소의이므로, 물을 여의고는 물결이 없듯이 마음을 여의면 법이 없다.  

마음은 본래 청정(淸淨)하므로 따라서 그 자취가 다 청정하고, 체성도 작용도 다 청정하니, 마음을 여의고는 따로 청정이 없으므로 허망한 객진이 물들일 수 없고, 참된 법도 깨끗이 할 수 없다. 마음을 여의면 도무지 다른 법이 없거늘 어찌 능염(能染)과 소염(所染)이 있겠으며, 마음을 여의면 참된 법도 없거늘 어찌 능정(能淨)과 소정(所淨)이 있겠는가.  

마음의 진여(心眞如)를 여의고는 따로 심성(心性)의 깨끗함이 있지 않고, 다른 마음이 있지도 않다. 이 마음의 진여를 일러서 마음이라 하며, 이 마음을 일러서 자성청정’(自性淸淨)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