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념으로 고요히 비출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구경(究竟)이다.
  2. 법문(法門) :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3. 공안(公案) : 마음 밖에 불성(佛性)이 따로 없다.
  4. 게송(揭頌) : 그대, 마음을 알고자 하는가?
 
     
   
     
   

그 어떤 일을 당해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늘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로 제 마음을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법을 터득하는 것을 마음공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마음공부의 본 뜻에 대해 보다 더 깊고 오묘한 그 무엇을 지향하는 듯이 말할지 몰라도, 대부분의 경우, 앞서 말한 의도에 대해 제 스스로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 · · · · · 거기엔 그 어떤 설법, 그 어떤 경전의 말씀도 무색하게 하는, '모든 행위의 주재자(主宰者)로서의 '나'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참으로 뿌리깊은 헛된 믿음이 깔려있다. '내'가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땀과 시간을 들여 애써 노력하고, 마침내 그 공덕으로 훗날 그 여여한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구도. · · · · · · 시작이 그러하다면 그것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꿴 것이다.


가령 동요하고 날뛰는 제 마음을 조복(調伏)하여 쉬게 하려고 할 때,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 · · · · · "만법은 비어서 꿈같은 것이다", "이 세상에 실제란 없다", "내 면전에서 내 마음을 흔드는 저것은 전부 헛것이니 홀리지 말자" 등등, 지금까지 들었던 온갖 말씀을 총동원하여 동요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심지어 찍어누르려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런 마음을 내어 동요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시도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그 날뛰는 마음이 마침내 쉬게 되었다고 할 때, · · · · · · 시종 일관해서 그러한 작업을 누가 하고 있는가 보라. · · · · · · 여전히 제 마음이지 않는가? 입에는 늘 '한 마음뿐(唯心)'이라 소리를 달고 다니면서, 그럴 때에는 마음이 두 개가 된다는 말인가? 날뛰는 마음과 그를 다스리기 위한 더 억세고 완고한 마음? 날뛰는 마음을 쉬게 하려고 또 다른 마음을 동원하는 한 그 마음은 애당초 쉬기는 틀린 것이다.




참으로 하나의 마음뿐이라면, 부처님의 그 말씀이 진정코 참이라면, 마음은 마음을 가지고 볼 수도 없고, 마음을 가지고 들을 수도 없는 것이다. 눈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보아도 제 눈 자신은 볼 수 없고, 시퍼런 칼이 모든 것을 다 베어도 제 스스로는 벨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이치가 이렇게 자명한 것임에도 우리는 늘 여기 있는 '내'가 저 밖에 있는 경계를 보고, 듣고, 만지고, 그 어간에서 온갖 갈등과 번뇌가 끊이질 않고, 그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의심의 여지조차 없지 않은가? 오직 한 마음뿐인데도.· · · · · · 이 길은 참으로 준엄하고 삼엄한 길이다. 적당히 듣기 좋은 말로 쓸어 덮고, 적당히 타협하며 갈 수 있는 길이 절대 아니다. 누구한테 검증 받을 필요도 없이 제 스스로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는 제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는가? · · · · · · 모름지기 철저해야 하고 모름지기 투철해야만 한다.




참으로 마음뿐이니, 도무지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다스릴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들끓는 생각을 여의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알아야 한다. 일체 만법이 다만 여여한 본래 마음 위에 비추어진 허망한 그림자일 뿐임에도, 중생들이 미혹해서 그것을 저 바깥에 존재하는 실체로 오인하여 집착을 일으키는 것이다. 수천만 년을 그렇게 살아온 뒤끝이라, 그 질기디 질긴 업(業)의 뿌리가 남아서 지금도 여전히 무엇인가를 구하고 이루어야 할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내내 그래서야 어찌 구도의 길을 간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알아도 알지 못해도, 얻어도 얻지 못해도 그 모두가 오직 한 마음 안의 일일뿐이니, 결코 마음을 가지고 법을 구하려하거나, 마음으로 하여금 깨달아지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본래 '신령한 깨달음의 성품'(靈覺性)은 각자에게 스스로 온전히 갖추어져 있어서, 다시는 더 갈고 닦고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꿰뚫어 본다면, 그저 일체 만법을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 고요히 비출 수 있을 터(無念寂照), 그 자체가 바로 구경인 것이다.




부처를 구하려거든
다만 마음을 밝힐지니
단지 마음 그대로의 마음이 곧 부처니라.

나,
마음을 구하려 하지만
마음은 마음 스스로가 본래 아나니
마음을 구하려면
마음으로 알아지기를 기다리지 말라.

부처의 성품은
마음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니
마음이 문득 일어날 때가 죄가 생기는 때니라.



                달마(達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