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음으로써 마음을 구하지 말라.
  2. 법문(法門) : 무심(無心)을 위해 노력하는 한, 무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3. 공안(公案) : 부처를 구하고 복덕을 탐하므로 무주·무념의 도리에 합하지 못한다.
  4. 게송(揭頌) : 무심을 체득할 때, 비로소 도(道)를 쉰다.
 
     
   
     
   

낙포(洛浦)에게 어떤 중이 묻기를, · · · · · ·


『경에 이르기를,「백 천의 부처에게 공양하는 것이 하나의 수행도 없고, 증득함도 없는 이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다」했는데, 백 천 부처님은 무슨 허물이 있고, 수행도 없고 증득함도 없는 이는 무슨 공덕이 있습니까?』하니, 선사가 말하기를, · · · · · ·

『한 조각 흰 구름이 골짜기를 막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새들이 저녁에 둥지를 찾지 못했던가?』하였다.




△ 곤산원(崑山元)이 송했다.


도인이 그 누가 부처고, 누구는 부처가 아니기에
사람들에게 그를 공양하라 하는가?
만약 정법(正法)을 존중케 하려는 뜻이라면
백천 부처님은 보리(菩提)를 등졌다 하리라.




△ 단하순(丹霞淳)이 송했다.


습득(拾得)은 게을러서 새벽을 알지 못했고
한산(寒山)은 나태해서 돌아갈 줄 몰랐다.
소리 이전의 한 구절은 원음(圓音)이 좋고
세상 밖의 삼산(三山)엔 조각달이 빛난다.




△ 금산원(金山元)이 염하기를, · · · · · ·


『백천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 하나의 생각 없고, 잡념 없고, 수행도 없고, 증득함도 없는 무심 도인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다 했는데, · · · · · · 이 방안의 삼백 여 중들도 추우면 그저 화롯불을 쪼이고, 더우면 부채를 들어 바람을 부친다. 물으면 입이 방울을 찾는 것 같고, 때리면 눈앞에 불똥이 튄다. 말해 보라. 어떤 것이 무심도인인가? 알고자 하는가?

문 앞은 모두가 장안으로 통하는 길이니, 모름지기 오리패(五里牌)로 돌려야 하리라.』하였다.


※ 五里牌 ; 五里마다 세워서 길을 알리는 푯말이니, 모든 집의 門前이 長安으로 通하는 길 임을 모르거든, 그를 아는 이는 오직 이 五里牌 뿐이라고 미루어 두자 함이니, 곧 道人 아닌 이가 없음을 强調하는 말이다.




△ 천동각(天童覺)이 이 이야기를 들고는 말하기를, · · · · · ·


『좋구나, 형제여! 공허(空虛) 가운데서 흑백을 가리고, 사량의 밖에서 빛을 보며, 세속의 기연(機緣)을 건드리지 않은 채 묘하게 참된 비춤을 분별하느니라.

눈(雪) 빛, 달, 갈대꽃이 강 위에 싸늘한데, 새벽바람이 소슬함은 갈매기의 노래니라.』 하였다.




△ 법진일(法眞一)이 이 이야기에서「무심도인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다」한 것까지를 들고는 말하기를, · · · · · ·

『어떻게 알아야 할까? 부처님이 어찌 이 유심(有心)의 사람이겠는가? 다만 그대들 중생이 부처라는 견해를 일으켜서 인과에 막히고, 복덕(福德)을 탐하기 때문에 머무름 없고 생각 없는 도리(無住無念之理)에 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 것이거늘, 요즘 사람들이 이 같은 말을 듣고는 부처님 이외에 참으로 따로이 무심도인이 있다고 여긴다. 이는 부처란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인지를 전혀 모르는 짓이다.

나한(羅漢)도 소승의 도과(道果)를 이룬 성인으로서 의근(意根)을 다 멸해 버렸으니, 그들도 무심도인이라 해야 할 것이요, 제팔지(第八地)의 보살도 무공용도(無功用道)에 들어서, 부처를 구하고 중생을 제도할(求佛度生) 마음이 조금도 나지 않으니, 그도 역시 무심도인이라 할 것이며, 부처인들 어찌 그만 못하다 하리요.

부처는 본래 중생의 분별하는 소견을 제거하려 함이거늘, 이제 또 한 겹의 소견을 더 내었으니, 마치 쐐기로써 쐐기를 뽑으려고 하는 것과 같아서, 비록 앞의 쐐기는 빠지겠으나 뒤의 쐐기가 다시 박힌 것과 같도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