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음으로써 마음을 구하지 말라.
  2. 법문(法門) : 무심(無心)을 위해 노력하는 한, 무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3. 공안(公案) : 부처를 구하고 복덕을 탐하므로 무주·무념의 도리에 합하지 못한다.
  4. 게송(揭頌) : 무심을 체득할 때, 비로소 도(道)를 쉰다.
 
     
   
     
   

아마 불자(佛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성불(成佛)하라는 말일 거요. 근데 성불한다는 말은 흔히들 사용하는 것처럼 그렇게 상투적이고 막연한 의미가 아니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어떤 개인에게 있어서 아주 근본적인 변혁이 일어난다는 뜻이오. 알다시피 변혁이라는 것은 차츰차츰 변화한다는 뜻이 아니고,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끝낸다는 얘기요. 지금 앉은 그 자리에서 완벽하게 끝내야 하오. 장차 두고두고 서서히 끝내겠다는 사람은 끝내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소.


모든 걸 완벽하게 끝낸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얘기는 아니오. 그것은 그야말로 완벽한 깨달음에 의해서만 가능하오. 어머니 배 밖에 나온 이후, 보고 듣고 읽고 나름대로 연구해서 터득한 모든 이치와 이론, 상식들이 몽땅 다 전부 자의적이고 가공적인, 전혀 근거 없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달을 때에만 가능하오.


그 사실을 밝히는 데에는 또 다른 상위의 이론이나 이치 따윈 필요 없소. 가장 완벽하고 최고 최후의 이론은, 그 이론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그 이론 자체가 붕괴되는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어떤 이론이건 적당한 선에서 대충 얼버무려 넘기지 말고, 그 자체의 바닥을 철저하게 사무친다면 더 이상 밝힐 게 없고 더 이상 파헤칠 게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요. 새삼 여기서 양자이론을 또 들먹이진 않겠소.




바닥을 사무치기 위해 흔히 쓰이는 말 가운데 마음을 비운다는 말이 있소.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참으로 숱한 것들을 긁어모아 간직하고 있소. 이롭고 해로운 거, 옳고 그른 거, 참되고 허망한 거, 높고 낮은 거, 수많은 이런 의식의 파편들이 지금 우리 마음을 꽉 채우고 있소. 그 가짓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것들이 서로들 부딪히고 긁히고 깨지고, · · · · · · 지금은 그 소음이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이른바 위험수위까지 도달한 거요. 그래서 결국 생각해낸 것이, '이래 가지곤 안 되겠다. 마음을 비워야 되겠다' 라는 그런 결론에 도달한 거요.


그런데 여기서 '마음을 비워야 되겠다'고 작정하면 작정하는 그 순간, 비우기는커녕 이미 또 하나를 긁어모았다는 사실을 낌새도 못 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오. 이런 미세한 메커니즘을 잘 이해해야 하오. · · · · · · 여러분이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우선 하는 일이 뭐요? 우선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자각을 하고, 그 모든 잡념들을 싹 쓸어내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에 들면 편하겠다는 생각을 할 테고, 이어서 마음을 비우겠다는 작정을 하고, 그를 위해 가부좌를 틀거나 주리를 틀며 고요히 앉아서 아무 생각 없는 상태에 들기 위해 자신의 의식을 쉬려고 애쓸 거요. 대충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소?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그 전 과정을 통해 작동을 쉬지 않고 있는 것이 뭐요? · · · · · · 여러분이 흔히 마음이라고 알고있는 의식이 계속 그 모든 과정을 통제하고 감독하고 있는 거요. 잡다하고 심란한 의식들을 제거하기 위해, 그럴싸한 명분(名分)까지 갖춘 보다 상위의 의식이 작동하고 있다는 소리요. 이는 마치 도둑을 잡기 위해 강도를 불러들이는 꼴과 다를 바 없는 거요.


결국 산란한 마음을 비움으로써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고자 한 건데, '비워야 되겠다'는 새로운 과제를 받아들임으로 해서, 결과적으로 자기 마음에 또 하나의 부담을 가중시킨 꼴이 된다는 얘기요. 설사 비운들 그 상태가 얼마 못 갈 것이 분명하고, 비우지 못한다면 그 비우지 못한 자책이 그 산란한 마음에 하나 더 추가될 것이라 소리요. · · · · · · 마음을 비워야 되겠다, 깨끗하게 해야 되겠다, 맑게 해야 되겠다 등등, 그 모든 것이 지금도 이미 숱한 사금파리에 또 하나의 사금파리를 보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달마대사도 경책했듯이 절대로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되오. 그러니 수행자가 무심(無心)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계속하는 한, 무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거요. · · · · · · 이는 달은 안 보고 달을 가리키고 있는 부처님 손가락에만 매달리는 격이니, 부처님이 무심을 얘기할 때는, 미혹한 중생들이 사사건건 뭔가에 얽매이고 붙잡혀 늘 헐떡이며 헤어날 줄 모르기 때문에 우선 무심이라는 말을 썼을 뿐이지, 부처님한테는 무심이니 유심이니 하는 게 전혀 의미가 없는 거요. 마음 그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주변에 '나는 마음을 비웠다'고 떠드는 사람은 비우기는커녕, '비워야 한다'는 보따리를 하나 더 짊어진 사람이라고 보면 틀림없소. '나는 불법을 터득해서 그 뭐에도 걸림도 막힘도 없는 경지를 터득했다'고 하는 자는, 걸림 있으면 틀리고, 걸림 없으면 옳다는 또 하나의 분별의 그물을 뒤집어쓴 사람이라고 보면 맞소. 허공에다가 어렵게 어렵게 제 혼자 시뻘건 획을 그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니, 오히려 측은하게 봐주시오. 결국 그의 마음은 뭔가를 깨달았다는 사실로 인해 또 하나의 병이 생긴 거요. · · · · · · 맑은 눈망울과 그 순수함에,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시름을 잊게 해주는 어린 아기한테 물어보시오. 그렇게 마음을 비우니 얼마나 편하냐고.


결국 여러분이 지금 거의 부지불식간에 받아들여 끌어안고 있는, 경우에 따라서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여 받들고 의지하고 있는, 그 수많은 이치, 도리, 상식, 그러한 온갖 의식의 파편들, 그것들이 몽땅 다 허망해서 전혀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하면 빨리 깨달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 모든 그물에서 해방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이 마음 공부의 요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