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념으로 고요히 비출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구경(究竟)이다.
  2. 법문(法門) :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3. 공안(公案) : 마음 밖에 불성(佛性)이 따로 없다
  4. 게송(揭頌) : 그대, 마음을 알고자 하는가?
 
     
   
     
   

이 길에 들어서 한동안 공부를 지어가다 보면, 때때로 '내 공부가 그동안 어느 정도나 무르익었을까?' 하고 궁금해하는 경우가 있을 거요. 그럴 때 여러분이 자신의 공부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주로 하는 일이 뭐요? · · · · · · 혹시 심한 모욕이나 어떤 엄청난 일을 당했을 때, 내가 그 상황 앞에서 과연 얼마나 의연하고 초연히 대처할 수 있겠는가, 내가 얼마나 평정심을 잃지 않을 수 있겠는가, 뭐 그런 것을 기준 삼아 공부의 진척 정도를 가늠하지 않소? · · · · · · 우선 '내 공부의 수준'에 대한 궁금증이 드는 것 자체가, 수행의 주체가 '나'인 동안은 천리 밖이라는 옛 고인들의 경책을 정면으로 등지는 까마득한 얘기이긴 하지만, 그것을 잠시 비껴놓는다 쳐도, 거기엔 또 다른 큰 허물이 있고, 그 허물을 전혀 의식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여러분 마음이 명실상부하게 비었다면 무슨 소리를 듣건, 어떤 상황에 처하건 절대 동요하는 법이 없어야겠지만, 이미 다들 알다시피 그게 어디 그렇게 됩디까? 앞서 잠깐 기준이란 말도 썼지만 여러분 면전의 그 어떤 것이, 마음에 드는가 들지 않는가, 마땅한가 마땅치 않은가에 대해 반응하려면 우선 '내 잣대'가 있어야 하오. 결국 그 잣대가 아직 남아있는가 아닌가, 남아있다면 얼마나 무뎌졌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 여러분이 공부의 진척 상황을 알아보는 또 하나의 잣대가 되는 거요.


그럴 경우 아마 십중팔구는 여전히 제 잣대가 기세 등등하게 세력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실망'할 거요. 그리고는 이내 결심하겠지. 내가 앞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그 잣대를 꺾고야 말겠다고! · · · · · · 근데 단적으로 말해서 그렇게 작정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제 잣대를 안 버리겠다고 작정하는 것과 다름없소. 지금 이 사실을 이해하라는 거요. 앞으로 열심히 갈고 닦아서 제 잣대를 기필코 꺾어버리고야 말겠다는 사람은, 그 어떤 잣대도 갖고 있으면 틀리다는, 보다 완강하고 절대적인 말뚝이 자리잡게 되어, 눈을 부릅뜨고 잣대가 있는가 없는가를 감시하고 판단하는 보다 업그레이드 된 또 하나의 잣대가 생겨난다는 거요. · · · · · · 이렇게 의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흘러가는 여러분의 짧은 생각 속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잣대들이 등장하는지 보시오. 그런데도 아마 이 자리엔 그런 잣대를 더 준비하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요.




학교에서 배운 거였건, 사회에서 배운 거였건, 아니면 절이나 교회에서 배운 거였건, 지금까지 가장 소중한 것이라 여기고 틈만 나면 끌어 모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금과옥조와 같은 귀한 말씀들이, 알고 보니 여태 '나' 스스로를 옭아매 온 멍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칩시다. 그러면 그 다음에 여러분이 자동적으로 하게 되는 생각이 뭐겠소? 모든 문제의 발단은 바로, 그동안 끌어 모은 온갖 잡다한 의식의 파편들이 머릿속에서 왈그락달그락 서로 부딪히면서 나는 소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 원수 같은 의식의 사금파리들을 어떻게 하면 말끔히 쓸어내겠는가? 당장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소? · · · · · · 이분법적인 사고에 길들여진 중생들이 생각할 수 있는 건 결국 그것뿐이오. 어떻게 하면 이걸 깨끗이 쓸어내겠는가? · · · · · · 그런데 그것을 쓸어내려고 하는 노력 자체가 또 하나의 사금파리를 보태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거요.




흔히 마음공부라 하면, 마음을 맑게 해야 된다, 마음을 비워야 된다, 마음에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어야 된다 등등 그런 말들이 떠오를 거요. 물론 그런 말들 자체는 잘못된 게 없소. 하지만 문제는 그 마음을 맑히기 위한 일을 누가, 어떤 기관이 하느냐는 거요. · · · · · ·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음을 맑히기 위한 작업을 할 놈은 다시 그 마음 아니오?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 의존할 것이라곤 결국 마음밖에 없다는 거요. 마음을 쉬게 하기 위해서 또다시 마음을 동원해야 한다면, 그 마음은 영영 쉬긴 틀린 것 아니오? 이 이치는 아주 간명한 거요. · · · · · · 마음을 비울 방법이 없소. 길이 없는 거요.


게다가 어떤 골치 아픈 생각(마음)을 없애기 위해 새로 동원한 또 다른 생각이 힘을 발휘하려면, 기존의 골치 아픈 생각보다 훨씬 억세고 사나워야 하지 않겠소? 쉽게 말해 좀도둑을 쫓아내려다가 강도가 들어앉는 꼴이 돼버리는 거요. 결국 뭔가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 위해 시간과 땀을 쏟아 부어 애써 노력한다는 것이 얼핏 당연하고 그럴싸하게 보일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첫 출발부터 잘못 됐다는 소리요.




골치 아픈 그 생각을 쓸어내려고도 하지 말고, 부숴 버리려고도 하지 마시오. 그게 전부 싸움이고 다툼이오. 다만 그렇게 마음을 괴롭고 산란하게 만드는 모든 분별 망상, 틀림없이 내 마음 밖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상대경계가 전혀 실체가 없는 꿈 같고 허깨비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참으로 깊이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오. 굳이 말한다면 마음 공부에 있어서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소.


언뜻 보기에 전부 제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듯이 보이는 유정, 무정의 모든 낱낱의 개체들은 사실은 전부 다른 그 무엇인가로 이루어진 인연화합에 불과한 거요. 즉 저만의 고유의 성품이 없는, 다른 그 무엇들이 모인 것에 불과한 것이니, 그러한 것은 단지 있는 듯 할 뿐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닌 거요. 그래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일체 만유가 꿈 같고 환(幻) 같고 물거품 같다고 말하는 거요. '나'라고 할 만한 핵심도 없고 '너'라고 할 만한 알맹이도 없는 거요. 마치 메아리 같고 그림자 같은, 그 스스로 성립할 수도 없고, 따라서 다른 것을 일으킬 수도 없는, 도무지 아무 능력도 없는 게 진실이오.


일체 만법이 그러한 것이니, 그 생각이 아무리 훌륭하고 정교하다 할지라도 그 생각 자체가 본래 생겨난 적이 없는 거요. 그러니 새삼스럽게 모든 생각을 새로 비우고 없애고 쓸어내고 할 일이 없이, 생각이 생각인 채로 빈 거라 소리요. 일체 우주 삼라만상은 지금 있는 그대로인 채로 전부 허깨비 같고 메아리 같은 것임을 밝히는 것이 우선 해야할 일인 거요.




흔히 어리석은 범부들이 자연스레 일어나는 생각을 억지로 못 일어나게 도리질 치며 찍어누른다거나, 그마저 잘 안 되면 심산유곡에 처박혀 안 보고 안 들으면서 애써 고요해지려고 주리 틀고 면벽(面壁)도 하는 경우가 주변에 심심찮게 있소. · · · · · · 이 세상에 주재자(主宰者)란 없소. 이 '나'란 놈은 지각도 없고 힘도 없는 거요. 아무리 역사적으로 전통이 있는 수행 방법일지라도,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생각 없는 것만 못한 거요. 아무리 좋은 행위일지라도 작용 없는 것만 못한 거요.


다시 말하지만 생각이 생각인 채로 빈 거요. 생각이 일어날 때, 일어나는 생각이 본래 없는 거라 소리요. 일체법이 다만 인연을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니 자체의 성품이 없는 것이며, 따라서 생각을 종일토록 굴려도 그것은 마치 없는 것을 굴리는 것과 다름없는 거요. 그러므로 일어나는 그 말단의 생각을 좇아 그것을 붙들고 어떻게 좀 해보려고 도모하고 집착한다면 그 사람은 영영 마음 밝히긴 글른 거요.


그래서 옛 고인들이 한결 같이 말씀하신 거요. "쉬어라! 쉬고 또 쉬어라!" · · · · · · 흙탕물을 맑게 하려면 그냥 가만 놔두는 것 보다 좋은 방법은 없소. 그걸 맑게 하려고 이리 젓고 저리 젓고 이리 기울이고 저리 기울이고, · · · · · · 그렇게 백날 해봐야 절대 흙탕물이 맑아질 리가 없는 것 아니겠소. 모름지기 무심히 모든 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 담담히 비출 수 있는 게 제일 좋소.(無念寂照) 행여 이 말 말들 사이에서 뭔가 또 알아듣는 바가 있을까 걱정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