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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바른 수행'(正修)이란,···
2. '마음'과 '경계'는 허망하여 서로 알지 못한다
3. '허공'에는 '방향'도 '위치'도 없다
4. 모든 것은 빛의 얼룩으로 화(化)하고,···
5. 우주 공간에는 <절대 정지해 있는 것>은 없다
6. 그 '영리한 마음'이 공부에 가장 해롭다
7. 눈앞에는 티끌만한 한 법도 없다
8. '여실히 본다'란, '허깨비처럼 본다'는 뜻이다
 
     
   

여러분은 혹시 이런 체험해 본 적이 있어요? ··· 어느 무덥고 노곤한 여름날, 지루한 기차 여행 끝에, 마침 내가 탄 차가 미끄러지듯 어느 조그만 시골 간이역 구내에 진입해 정차합니다. 바로 옆 선로에는 다른 차가 이미 정차해 있었는데, 그것도 같은 방향으로 가던 기차였어요. ··· 요란하게 굉음을 울리면서 달리던 끝에 찾아온 정적이라, "치익! 치익!" 가쁜 듯 숨결을 고르는 기관차 소리를 들으면서 한참을 지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탄 차가 슬그머니 후진하는 게 아니겠어요? 「어!? 이상하네. 왜 뒤로 가지?」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이때 옆 차의 저 반대편에 전봇대 하나가 언뜻 눈에 띄어요. 그런데 그 놈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제 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당연히 후진하는 내 차와 반대방향으로 멀어져 가야 할 텐데 말이에요. ··· 이제 무슨 이야긴지 알 만하지요? 실은 내가 탄 차가 후진한 게 아니고, 옆의 차가 슬그머니 발차했던 거예요. 그 전봇대가 바로 잠깐 멍했던 나에게 이런 사정을 일깨워 준 셈입니다.



이 우주공간에는 무수히 많은 물체들이 저마다의 궤도를 그리면서 복잡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 운동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물건과 물건 상호간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기술할 수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주 공간에는 일정한 방위도 경계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가없는 허공'(無邊虛空)을 한 눈에 바라보면서, 그 가운데의 모든 물체의 운동상태를 일률적으로, 또 일관되게 가늠할 수 있는 공통의 기준이 될 만한 게 도무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떤 경우에도 그것이 '움직이고 있다'거나, '정지해 있다'거나 하는 등으로, 매사를 결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는 게 '진실'인 겁니다>. 이것은 '유한한 틀'에 의해서 철저히 길들여져 있는 우리들의 지각기능이 '법계 허공계'에 계합(契合)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주조(鑄造)의 틀'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강력히 시사해 주는 대목입니다.

우리들은 매사에 얼마나 분명한 걸 좋아합니까? 또 뭐든지 결정적으로 단정해서 말하길 얼마나 좋아합니까? 그러나 일이 여기에 이르면, 그 분명하다는 게 과연 객관적 정당성이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이 전적으로 사람들의 허망한 업식(業識)이 멋대로 지어내는 잠꼬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지금 드러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고인들은 늘 경책하여 말하기를, 「그 '꼭 맞는 말' 한마디가 만겁(萬劫)에 당나귀를 묶어 두는 말뚝이니라(一句合頭語 萬劫繫驢 )」라고 했던 게 아니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뭐든지 애매하고 희미하게 알아야 한다는 건 물론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분명하건, 애매하건 간에 그 모두가 오직 정식(情識)에 의한 허망한 분별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뭐든지 치우치게 집착하지 말라는 경책인 겁니다. 더구나, 지금 현재 눈앞에 번히 보이는 별도 없는 것일 수 있고, 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경우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진 마당에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가령 지구에서 50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별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대폭발을 일으켜서 산산조각이 나서 없어졌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그 폭발 순간에 그 별을 출발한 빛은 지금 이 순간, 여기서 40광년 떨어진 곳까지 와 있을 테고, 그러니까 그 폭발 순간의 빛이 내 눈에 와 닿으려면 앞으로도 40년은 더 기다려야 하지 않겠어요? 결국 앞뒤 도합 50년 동안을 있지도 않은 별을 '있는 것'으로 보고 있어야 하는 셈입니다. 반대로 그 자리에 별이 새로 생겼을 경우에도, 앞의 경우와 유추해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여기서 20광년 떨어진 곳과 30광년 떨어진 곳에 각각 새로 별 하나씩이 '동시'에 생겨났다고 합시다. 이때에도 이 두 별은 '동시'가 아니라, 10년의 시간차를 두고 '전·후'(前後)로 갈려서 우리 눈에 뜨이지 않겠어요?

이쯤 되면 우리들이 사물을 관찰할 때, '먼저'와 '나중'과 '동시' 등은 물론이고, 나아가 '있고' '없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지각작용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게 되어 버립니다. ― 적어도 이 광활한 무한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무엇 하나 결정적으로 판단할 만한 기준이 없다는 사실 ― 이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은, 지구의 땅갈피에 달라붙어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그저 당혹스럽고 헷갈리기만 하는 일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 '먼저'와 '나중'이 '동시'이고, 나아가서 '있는 것'이 그대로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그대로 '있는 것'인, ― 이 영락없는 선문답(禪問答)의 세계가 곧 이 '무한공간'이요, 이것이 바로 '법계 허공계'의 실상인 겁니다.



이번엔 다른 각도에서 한번 살펴보기로 할까요? ··· 내가 탄 기차가 쾌적하게 산과 들을 가로지르면서 달립니다. 선로 가에는 오랜 가뭄에 시름겨워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이구요. 이때 농부들의 눈에는 달리는 기차 안의 사람들이 시원스럽게 앞으로 내닫는 것으로 보이겠지요? 그러나 막상 기차 안의 사람들은 가만히 의자에 앉은 채로 평상하게 담소하면서, 적어도 그들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 고속으로 이동중이라고 해서 ― 특별히 마음써야 할 만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기차가 아무리 빨리 달린다고 하더라도 그 기차 칸 안에서는 여전히 저 바깥에서 적용되는 것과 똑같은 자연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겁니다.

이 경우 물리학자들은 이 한 폭의 낯익은 풍경 위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좌표계를 설정해 놓고 <모든 자연법칙은 등속도운동(等速度運動)을 하는 모든 좌표계에서 동일하다>고 설명합니다. 즉 기차 안의 사람들은 기차 칸의 바닥을 공통의 좌표계로 삼고, 선로 가의 농부들은 논바닥을 그들의 좌표계로 삼고 있는 거죠. 따라서 쾌적한 속도감을 즐기며 여행하는 기차 안의 사람들은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이, 즉 어지럽거나 별다른 이상을 느끼는 일 없이 지낼 수 있으며, 그 좌표계 밖에 있는, 즉 선로 가의 농부들도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거죠.

조금도 별날 게 없어 보이는 이 단순한 주장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의 골간을 이루고 있는 겁니다. ― 즉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운동하는 비행물체가 있을 때, 그 비행물체를 타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별 다른 이상이 감지되지 않지만, 그 바깥에서 이것을 바라볼 때에는,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운동방향을 따라서 그 부피는 줄어들고 시간도 느려진다는 게 바로 '특수상대성이론'의 핵심이거든요. 물론 그 사람의 생체 리듬도 느려지구요. 사람들은 특히 이 부분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혹시 오래 살 수 있는 무슨 비결이라도 거기 숨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에요.

그러나 적어도 참된 수행자라면 이와 같은 일련의 상황전개에 대해서 결코 마음을 뺏기는 일이 있어선 안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유한한 틀'에 갇혀서 범용(凡庸)하게 꼬여버린 우리 마음을, 한량이 없는 '본래 마음'으로 되돌리기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우선 그 용렬한 마음 때문에 잘못 틀 지워진 안목, 즉 물질관이나 자연관을 바로잡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현상계의 드러난 모양>(法相)을 살펴보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랜 세월 동안 미망에 가려서 빛을 보지 못했던 여여(如如)한 '본래 성품'(法性)을 드러내고자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인연을 따르면서 생멸하는 모든 현상들은 허망해서 전혀 취할 게 못 된다>(諸相非相)는 걸 분명히 깨달아서 모든 집착을 여읠지언정, 다시 그 <유루(有漏; 상대경계에 끄달려서 일으키는 번뇌)의 티끌>에 끄달려서야 되겠습니까?



금강경(金剛經)에 이르기를,···

무릇 존재하는 바 온갖 형상은 그것이 모두 허망한 것이다. 만약 모든 '모습 있는 것'들이 실체가 없는 것임을 깨친다면 바로 여래를 보리라.』고 했으니, 뜻 있는 수행자라면 모름지기 하루 빨리 밝은 안목을 갖추어서 '존재하는 것', '일어나는 일' 모두가 꿈속 같은 것임을 분명히 간파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