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법문'은 '강연' 듣듯 학습하는 게 아니다 
2.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우주 
3. 온갖 '문제'는 본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4. 의증(疑症)을 내는 것은 '깨달음'의 첫걸음이다
5. '상식'이라는 이름의 때(垢)
6. '마음' 밖에는 알아야 할 만한 단 하나의 법도 없다
7.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8. 이 '움직이는 마음'이 그대로 '고요한 마음'이다
 
     
   

아마도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걸 보면, 아까 그 세 사람의 천재들이 담론(談論)하던 현장에서 눈살을 찌푸리던 그 낯선 사람이 다시 한번 눈살을 찌푸릴 거예요. 「또 그렇게 가는구나!」 하고 말이에요.
지금 이와 같은 말을 들으면서도 아마 십중팔구는, 아니, 열이면 열 다 이 말속을 더듬으면서 '알았다'커니,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다'커니 하면서 분주히 알음알이를 굴릴 게 뻔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앎'이 항상 스스로 청정해서 <'앎'이 '앎'인 채로 '앎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요컨대, 이 '불법' 즉 '진리'는 알고 모르는 데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 '신령한 앎'(靈知)은 늘 스스로 환히 아는 것이며, 결코 뜻을 지어서 아는 게 아닌 겁니다. 따라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가운데서 '아는 바'를 취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요는 그저 <알 뿐인 것>입니다. 마음 밖에는 진실로 알아야 할 만한 티끌만한 한 법도 없다는 것을 철저히 사무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고인(古人)들은 이르기를, 「어떻게 알아도 잘못 알아들었다」고 했던 겁니다.



협산(夾山) 선회(善會) 선사가 처음에 선자(船子, 華亭) 화상을 참문(參問)했을 때의 일입니다. 선자가 묻기를,···

『대덕은 어느 절에 사는가?』
『비슷하면 살지 않고, 살면 비슷하지 않습니다.』
이에 선자가 다시 묻기를,···

『그대가 "비슷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 '비슷하지 않다'는 게 무엇인가?』
『'이것'은 '눈앞의 법'이 아닙니다.』
『어디서 배웠는가?』
『눈과 귀로는 미칠 바가 아닙니다.』
이에 선자가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한 구절의 꼭 맞는 말이 만겁(萬劫)에 당나귀를 매어두는 말뚝이니라. 천 자(千尺)의 실(絲)을 드리우는 것은 깊은 못(池)에 뜻이 있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세 치(三寸) 갈고리를 떠나서 말하지 않는가?』 했습니다.

이에 선사가 입을 열려고 망설이는 것을, 선자가 삿대로 떠밀어서 물에 빠뜨려 버렸습니다. 물에서 헤어 나오려고 허우적거리는 선사를 향해 선자가 다시 『말하라, 말하라!』 하고 다그쳤더니, 선사가 입을 열려고 망설이는 것을 선자가 또 다시 호되게 때렸습니다. 그제서야 선사는 크게 깨닫고 고개를 세 차례 끄덕였다고 합니다.

이에 선자가 다시 말하기를,···

낚싯대 끝의 줄은 그대 마음대로 희롱하라마는 맑은 물결을 범하지 않는 뜻은 저절로 뚜렷하니라.』 했습니다.

이에 선사가 묻기를,···

『줄을 버리고 낚시도 던지시니, 스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실을 드리워서 맑은 물에 띄우는 까닭은 '있음과 없음의 뜻'(有無之意)을 확정지으려는 것이다. 속히 말하라, 속히 말하라!』 하니, 선사가 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어 말하기를,···

말이 비록 현묘(玄妙)함을 띄(帶)었으나 거기엔 길이 없고, 혀끝으로 이야기를 하되, 그것은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니, 그제야 선자는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강물을 죄다 누비면서 낚다가(釣) 오늘에야 비로소 금 비늘(金鱗)을 만났구나.』 하니, 그 말에 선사가 귀를 가리는(掩耳) 것이었습니다.

이에 선자가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그렇니라, 그렇니라!』 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험한 길입니다. <결코 '배워서 아는 것'을 가지고는 범접할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거듭 명심할 일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이 법문을 세속의 강의나 강연을 듣듯 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강조하지만 막무가내 아닙니까? 지금도 이 법문을 열심히 듣고, 잘 기억해서는 설법의 내용에 맞게 살아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걸 잘 알아요. 그러나 그렇게만 알아들어도 이런 법회에 참예(參詣; 참석)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 공덕이 비할 바가 아니지요. 그러나 그와 같은 모든 공덕은 결국 유한한 것입니다. 끝내는 얻은 것은 잃게 마련이고, 이루어진 것은 곧 허물어지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므로 이 '유심(唯心)의 도리'를 그냥 그렇게 알음알이로 더듬고 헤아리고 해서는 턱도 안 닿는다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유심의 도리'(唯心法)를 '최상승의 법문'(最上乘法)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 '유심의 도리'는 사실 공(功)도 밑천도 들이지 않고 정립된, 따라서 새로 정립된 거라곤 하나도 없는, 그러므로 모든 법은 오직 지금 있는 이대로일 뿐이라는 것, ― 이것이 곧 '붓다'의 가르침의 본령(本領)이에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 이 '법계' 가운데의 어느 것 하나도 '불법' 아닌 게 없고, 따라서 하나의 티끌 가운데 이미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성덕(聖德)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게 실상이므로, 따라서 「교화(敎化)에 다시 교화를 짓는다」고 하는 말이 다 이 뜻입니다.



조과 도림 선사(道林禪師)가 어느 날 회통 시자(會通侍者)가 길을 떠나려 하기에 말하기를,···

『그대는 지금 어디로 가려는가?』 하니, 회통이 대답하기를,···

『회통은 불법을 위해서 출가했었는데 화상께서 가르쳐 주시지 않으니, 이제 제방(諸方)에 가서 불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했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하기를,···

『만약 그런 불법이라면 나에게도 약간은 있느니라.』 하니, 회통이 얼른 묻기를,···

『어떤 것이 화상의 불법입니까?』 했습니다. 그랬더니 선사가 몸에서 실 보푸라기(布毛) 하나를 집어들어서는 "훅!" 하고 부는(吹) 게 아니겠어요? 이것을 본 회통이 문득 현묘(玄妙)한 이치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화두를 들고 불타손(佛陀遜)이 다음과 같이 송했습니다.



한 실 보푸라기에서 티끌 세계(刹塵)를 보았으나
아직 상정(常情; 세속사에 물든 凡情)을 여읨을 벗어나지 못했도다.
모름지기 곧장 높이 비로자나(法身佛)의 정수리를 걸어야
비로소 화성(化城; 망상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벗어나 소요(逍遙)하리라.



스승이 실 보푸라기 하나를 "훅!" 하고 불어버리는 것을 보자, 문득 세속사의 허망함을 보아서 몰록 범정(凡情; 사물에 집착하는 범부의 망령된 정서)을 여의었으나, 어찌 '티끌 경계'(塵境)를 여의는 것으로써 족하다고 하겠어요? ― 불즉불리(不卽不離), 즉 집착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게 됨으로써 스스로 우뚝 드러나는 '신령한 성품'(靈性)에 잠잠히 합할 수 있어야 ― 그제야 비로소 대장부의 살림살이라 할 만하지 않겠어요? 본래 난(生) 것이 없으니, 다시 무엇을 집착하고 여의고 하겠습니까?

그러니 공부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본래 스스로 청정하고, 온갖 공덕이 본래 구족하게 갖추어 있어서, 전혀 조작할 일이 없는 '제 마음'>을 등지고, 헛되이 마음 밖에서 '불법'을 구하면서, 공연히 설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집안에 무진장한 보배 무더기를 놓아두고는 밖으로 구걸행각을 나서는 꼴이니, 이 얼마나 딱한 일입니까? 그래서 중생의 이와 같은 가엾은 모습을 보고, 붓다는 말하기를, 「마치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 물결'(蜃氣樓)에 목을 축이려고 내닫는 것과도 같다」고 했던 겁니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진정한 수행자라면, 허망한 유위행(有爲行)에 매달리면서, ― '범부의 지견'을 버리고 '성인의 지혜'를 구하려 하던가, '번뇌'를 멸하고 '보리'(菩提)를 구하려 하던가, '생사법'을 여의고 '열반법'을 구하던가 하는 따위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지금 당장 일체의 유위행을 몰록 쉬고, 마음을 거두어서, '진실'도 '허망'도 몽땅 보내고, 보냈다는 생각도 보내고서, ― 오직 지금 있는 이대로의 모든 법을, 다만 지금 있는 이대로의 자세로 담담히 비추되, 결코 헛되이 상념의 꼬리를 끌지 않을 수만 있다면, 다만 그것만으로 여러분은 지금의 이 '육신'인 채로 '금강 같은 선정'(金剛定)을 얻어서, 어지러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항상 물들지 않고 변하지도 않는, 그 영원한 '구경(究竟; 맨 끝)의 땅'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믿어야 합니다. 전혀 시간도 노력도 들임이 없이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