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법문'은 '강연' 듣듯 학습하는 게 아니다 
2.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우주 
3. 온갖 '문제'는 본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4. 의증(疑症)을 내는 것은 '깨달음'의 첫걸음이다
5. '상식'이라는 이름의 때(垢)
6. '마음' 밖에는 알아야 할 만한 단 하나의 법도 없다
7.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8. 이 '움직이는 마음'이 그대로 '고요한 마음'이다
 
     
   

'마음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증을 내는 일입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너무나 분명해서 아무도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 흔해빠진, 지극히 평상한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이게 과연 뭘꼬?" 하고 의심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마치 천진한 어린 아기의 호기심에 찬 눈동자처럼 말입니다.

그것도 아주 큰 의증을 내야 합니다. 그 의증이 깊고 클수록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전혀 의심해 보지 않았던, 너무나 분명해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었던, 그런 일들에 대해서 어느 날 생각지도 않게 문득 마음이 닿으면서 홀연 눈이 열릴 때,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깨달음의 성품'(悟性)에 새벽이 밝아오는 순간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그 <절대로 옳았던 것들>이 차츰 초점이 흐려지다가 마침내 자취를 감추게 될 때, 그것이 바로 영성(靈性)이 스스로 빛을 놓게 되는 순간입니다. 마치 먼동이 훤히 밝아오자 초롱초롱 빛나던 밤하늘의 뭇 별들이 차츰 그 빛이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사라져 버리듯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완강한 세력을 견지하던 그 <절대로 옳은 것들의 두꺼운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마침내 찬란한 여명이 밝아오는 겁니다.

이것은 많은 노력의 과보(果報)로 얻어지는 경지가 아닙니다. 다만 모든 법이 '자체의 성품'이 없는, 허망한 존재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집착하는 마음이 스스로 소멸될 때, 전혀 조작함이 없이 저절로 밝아지는 경지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는 결코 '주재자'(主宰者)에 의해서 체험되어지는 경지가 아닙니다. 만약 이때, 「아아! 참 맑고 고요하구나!」 하고 말한다면, 이것은 그 '신령한 깨달음의 성품'(靈覺性)이 빛을 놓는 게 아니라, 바로 그 교활한 '정식'(情識)이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조심하고 삼가야 할 자립니다. 결코 털끝만큼이라도 '얻은 바'가 있고, '깨달은 바'가 있으면 그것은 '참된 깨달음'이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먼 훗날 그 어떤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지금에 부지런히 애쓰던 모든 유위행(有爲行)을 당장에 몰록 쉬고, <아무 희망할 것이 없는 마음>을 위해 진정한 발심(發心)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부단히 큰 의증을 내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그 <절대로 옳다고 믿었던 것들>을 말끔하게 쓸어내십시오. 이거야말로 우리 범부들의 천년 묵은 '무명'(無明)의 멍에, 즉 <'상식'이라는 이름의 때(垢)>를 벗겨내는 아주 훌륭한 실마리가 된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미국의 시인 휘트먼의 시 '풀잎' 중에서 그 첫머리를 소개합니다.


한 어린이가
두 손아귀 가득히 '풀잎'을 들고 와서
"이게 뭐예요?" 하고 내게 물었다.
그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그 어린이가 모르듯이
나도 모르는 것을, ···


이 세상은 지금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새로운 '이름'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습니다. 자고 새면, 생전 듣도 보도 못했던 괴상한 이름들이 대중매체를 온통 도배해 버립니다. 사전에 충분한 설명도 없이 말입니다. 그리고는 그 새로운 이름들을 다시 멋대로 뗐다 붙였다 하면서 숱한 새로운 '개념의 그물'을 만들어내서는 스스로도 뒤집어쓰고, 남들에게도 억지로 뒤집어씌우려고 기를 씁니다. 그래서 언필칭 이 정보화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매일같이 양산되는 이 새로운 '지식', 새로운 '정보'의 엄청난 홍수에 휘말려서 거의 녹초가 된 상탭니다.

언어가 갖고 있는 온갖 순기능(順機能)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모든 시비의 단초를 제공하는 이 언어의 <독소적 요소>들을 만약 우리의 마음에서 말끔히 지워버릴 수 있다면, 거기 과연 무엇이 남을까요? 목석처럼, 불 꺼진 재처럼, 그렇게 될까요? ··· 아닙니다. 말끔히 청소된 방은 아주 쾌적한 생활공간이 될지언정, 어찌 온기도 생기도 없는 그런 무덤 같은 공간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걱정하는 게 뭔지 다 압니다. 모든 전문적, 기술적 지식을 다 털어내 버리면 어떻게 살아갈까? 그러는 거죠?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모든 갈등과 시비의 원인이 되는 그 '알음알이의 독소적 요소'들, 즉 일상의 신선한 체험의 고비마다에서, 그 낡은 기억과 그에 수반하는 끈적한 감정을 말아냄으로써, 늘 새로워야 할 우리의 일상을 온통 먹칠해 버리는, 그 '의식'의 고약한 장난을 종식시키려는 것뿐입니다. 그것뿐이에요. 그 밖에 다른 것은 손끝 하나 까딱할 생각이 없어요. 심지어 여러분이 '진실'에 눈을 뜨고 보면, 그 이른바 '독소적 요소'라는 것들도 모두가 '빈 이름'뿐인, 허망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무엇을 더 조작하고 대처하고 할 일이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