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어떤 것’을 관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적으로 허구이다.
  2. 법문(法門) : 수행의 주체가 '나'인 동안은 천리 밖이다.
  3. 공안(公案) : 일어나는 법이 본래 일어나지 않는 것이거늘······
  4. 게송(揭頌) : 모든 법은 작용이 없고 체성도 없으며······
 
     
   
     
   

무유자성(無有自性), 경전 도처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말이오. 이 세상 일체만유는 그 자체의 성품이 없다. · · · · · · 이 말은 우리의 기존 물질관에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너무나 중요한 말이오. 자체의 성품이 없다, 이 뜻은 이 세상 그 무엇도 어떤 작용을 일으킨다거나 혹은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하는 그런 능력이 없다는 소리요. 다시 말해 제 성품이 없으니, 자기 스스로도 성립할 수가 없는 것이고, 자기 스스로도 성립할 수가 없으니 항차 다른 것의 원인이 되어주는 일은 더더욱 없는 거요. 일체 만법이 그렇소.


일체만유가 제 고유의 성질이 없으니 이 세상 그 무엇도 이게 이거라고 지칭할 만한 실체가 없는 거요. 그래서 이제 그 허깨비들을 깡그리 모아 장례를 지낼 참이오. 그동안 내 마음을 뒤흔들고 산란하게 했던 온갖 것들, 아쉽지만 나를 즐겁게 했던 것들까지도 마음 모질게 먹고 몽땅 큰 관에다 싹싹 쓸어 넣고, 다시는 기어 나오지 못하게 커다랗고 무거운 관 뚜껑을 덮어서, 못도 보통 못도 아니고 아주 커다란 대못을 촘촘히 쾅쾅 때려 박는 거요. · · · · · · 자 이제 그러고 나면 그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더 이상 동요하거나 핍박받는 일은 없겠지요?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니 말이오. · · · · · ·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거요? · · · · · · 아니오. 제일 중요한 걸 빼놓았소. 제 자신! 다른 모든 걸 다 빼놓더라도 그 자신, ‘를 관속에 넣고 장사를 지내야 하오. 그러면 나머지 온갖 것들은 물거품처럼 저절로 사라지게 돼 있소.  


이처럼 이 세상 일체만유가 자체의 성품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와 같은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는 자기 자신, 는 일체만유에서 제외를 시켜요. 물론 작정을 하고 그리 보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서의 의 존재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또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터라, 무의식중에 자신은 그 범주에서 제외를 시키는 거요. 그리고는, ‘를 제외한 나머지가 몽땅 허깨비라고 알아듣는, 그 어리석음이 문제요.  


기회 있을 때마다 하는 소리지만, 참구가 깊지 못하고 맨날 그런 식으로 알아듣는 사람은 느느니 고작 알음알이밖엔 없소. 이 세상 삼라만상이 자체의 성품이 없다더라 하는. · · · · · · 그런 하나의 지견을 알게 됐다고 그게 무슨 공덕이 있겠소? 그것뿐만 아니라, 팔만 사천 법문을 죄다 달달달 외우고 다닌들 그게 그 사람이 성품을 밝히는 데에 무슨 공덕이 있겠냐는 말이오. 그런데 어찌 된 게, 온통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알아서 자칭 깨달았네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소? 참으로 말세(末世)는 말세요. · · · · · · 이 법은 배워서 깨치는 게 아니오. 많이 배우고 많이 알면 알수록 멀어질 뿐이오. 이건 절대 과장된 얘기가 아니오. 정확하게 그렇소.  




우리가 이른바 현실세계라고 알고 있는 일체 존재가, 물론 자기 자신까지 포함한 일체 존재가 그 자체의 성품이 없소. 전부 다른 그 무엇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일 뿐, 스스로는 존립할 수가 없는 거요. 이 말은 곧, 어떠한 작용이 일어날 때 그 작용의 주체가 없다 소리요. 본체가 없는 거요. 본체가 없는데 어떻게 작용을 일으킬 수 있겠소? 그래서 지금 목전에서 온갖 작용이 번성하게 일어나는 이때에도, 단지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 실상은 전혀 아무 작용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꿰뚫어 봐야 하오. 작용하는 자도, 작용하는 바도 없으니,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요. · · · · · · 지금까지 실제라고 철석같이 믿어왔던 모든 상대경계가 전부다 허망하고, 그 모든 것을 그렇게 알아보는 주체인 역시 전부다 허망한 거요. 그래서 온갖 법의 성품, 즉 법성(法性)이 몽땅 비었다고 말하는 거요.  


그러니 지금까지 힘들게 배우고 익히면서 제 아무리 희한하고 오묘한 이치를 알아내고 깨달았다 한들, 그것을 알아낸 사람(能知)이나 알아낸 바(所知), 깨달은 자(能覺)나 깨달은 바(所覺), 몽땅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전부 허망하고 빈 거라 소리요. 심리적 물리적 모든 걸 망라해서 그렇소.  




법성에 비추어보면, 이 몸도 마음도 전부 법성의 몸이요, 법성의 마음이오. 이 법성의 몸, 법성의 마음은 전부 토끼뿔, 쥐뿔이오. 이름은 있되 실상이 없는 거요. 그런데 백이면 백 사람 다 능각(能覺)은 옆으로 비켜 놓고 소각(所覺)만 없는 거로 쳐요. 그리고는 긁어 부스럼이라고 능각이 계속 문제꺼리를 공급하면서 지우고, 공급하고 지우고 공급하고 지우고. · · · · · · 끝도 없이 그 짓을 반복하는 거요. 그래 갖고서야 문제꺼리가 늘면 늘었지 절대 없어질 수가 없소. 이 능각이 마저 없어져서 절대(絶對) 절명(絶命)을 해야 하는데 절명을 안 하는 거요. 목숨이 안 끊어진단 말이오. 그래서 선지식들이 한결같이 몽땅 죽어 마쳐라!’ 소리를 그렇게 하는 거요. 목숨 뿌리까지 몽땅 죽어 마쳐야 하오.  


작용의 주체도, 일어난바 작용도 모두 본래 한 법인데 이게 둘로 나뉘어져서 마치 작용의 주체가 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은 그런 착각 속에 우리가 빠져있는 거요. 이처럼 하나의 참된 성품이 인연 따라 감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기까지는 우리 눈과 귀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가 너무 많소. 작용의 주체는 응당 그대로 놔두고는 작용의 내용만 계속 바꿔댐으로써 작용의 주체인 제 스스로가 장차 훌륭하게 될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 너무 뿌리가 깊소. 수행의 주체가 엄연히 존재하고 그 수행의 주체가 수행을 한다는, 이것은 전혀 잘못된 거요. 한 법이요, 한 법. 작용의 주체와 작용은 서로 다른 게 아닌 한 법이란 말이오. · · · · · · 가 수행의 주체인 한, 절대로 진실을 밝힐 수 없소. 계속 분열 상태이기 때문이오.  




여러분에게 뭔가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거든 그 갈등의 말단에서 문제를 풀려고 씨름하지 말고 얼른 근원으로 돌아가라 소리를 많이 하오. 왜 그리 말하겠소? 이 법성에 갖다 대면 아무 것도 남아나는 게 없소. 없다는 생각조차도 없이 일체가 다 해버리니, 그게 바로 만법이 유식(唯識)이라, 나쁜 일이건 좋은 일이건 그게 몽땅 다 생각으로만 그렇게 지어진 것일 뿐, 실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음을 알아차리도록 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이 세상 일체만유가 제 성품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존립할 수가 없는 게 분명한데도 지금 여러분 모두는 엄연한 존재로서 행세하고 있지 않소? · · · · · · 그것을 존재이게 한 것은 오로지 우리의 생각 때문이오. 이렇다고 저렇다고, 산이라고 물이라고, 전부 생각으로 지은 거요. 지금 여러분 목전의 울퉁불퉁 형형색색의 모든 물질적 정신적 존재는 몽땅 여러분 의식 속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 거요. 인간의 의식이 없으면 모든 존재는 없소. · · · · · · 이 말이 참으로 믿기시오? 부처님 말씀이라고 그런가 보다하며 대충 넘어가는 게 아니고, 절절히 그 말이 사실로서 믿겨지느냔 말이오. 혹시 인간의 의식이 작동하건 말건 그것들은 예전부터 그렇게 바깥에 계속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쭉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오? · · · · · · 지금 그것이 바로 결정적인 괴리요. 그 괴리는 여러분 스스로의 지혜의 힘으로 메꿔야 하오. 이미 말과 글은 넘칠 만큼 많이 주어졌소. 깨치고 깨치지 못하고는 전부 각자의 몫이오.  




인무아(人無我), 법무아(法無我)라는 말이 있소. 관찰해서 알았건, 들어서 알았건, 읽어서 알았건 가 만약 뭔가 아는 바가 생겼다면, 그 아는 자가 곧 인()이오. 그리고 가 그렇게 해서 알아낸 바가 법()이오. 그런데 그 앎의 내용이 뭔가는 불문하고, ‘가 뭔가를 알았다면 그것을 안 주체인 능()이 생겨버리게 돼 있소. 그러니 인무아(人無我)라는 말은 이미 까맣게 놓친 거요. 안 바가 생겼으니 법무아(法無我)도 당연히 놓친 것이고. · · · · · · 그러니 가 뭔가를 봤다, 뭔가를 알았다, 뭔가를 들었다 그러고 있는 동안은 허공에 대고 뭔가를 걷어잡겠다고 계속 헛손질 하고 있는 거요. 마음에 능소의 자취가 있는 동안은 깨닫기는 글렀다 소리가 괜한 소리가 아니오. · · · · · · 불가(佛家)에서 회향(廻向)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그렇게 계속 뭔가 헤아리고 뚜져서 알아내려고 하는 그 마음을 툭툭 털어버리면 그게 곧 제대로 된 회향이오.  


수행의 주체가 인 동안은 천리 밖이오. 수행의 주체로 여겼던 이 는 볼 수도, 들을 수도, 깨달을 수도, 알 수도 없는 전혀 무력한 거요. 모양만 있지 실체가 없는 거요. 그것은 마치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와 전혀 다르지 않소. 바다의 파도가 출렁이고 그 파도가 이동하고 하는 모든 작용은 다만 인연을 따를 뿐이지, 그놈이 뭔가 힘이 있고 지혜가 있고 목적이 있어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생각을 내고 뜻을 세워 힘을 들여 출렁이는 게 아니오. 그런데 자꾸 고개 쳐들고 가 했다고 버둥대고 있는 꼴이오. · · · · · · 이제 회향하시오. ‘가 사는 게 아니고 다만 살리어지고 있을 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