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와 ‘내 것’, ‘나’와 관계된 모든 것과의 깨끗하고 영원한 단절
  2. 법문(法門) : 몸과 마음이 몽땅 빈 것이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3. 공안(公案) : 손 뿌리치고 집에 이르니 무엇이 있던가?
  4. 게송(揭頌) : 현실에 집착하면 미혹한 것이요, 이치에 계합해도 깨달음이 아니다.
 
     
   
     
   

지금까지 몸과 마음, 또 그 몸과 마음에 의해 인지되는 모든 대상들, 객관 경계가 전부다 허망해서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수도 없이 드러내 보였소. 그 중에서도 특히 이 몸과 마음이 전혀 의지할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가장 중요하오. 눈, 귀, 코, 혀, 몸(眼耳鼻舌身)을 계속 굴리기는 굴리는데 굴리는 주재자(主宰者)가 없다는 얘기요.


왜 그렇겠소? · · · · · · 눈, 귀, 코, 혀, 몸이라고 할 만한 게 없기 때문이오. 눈, 귀, 코, 혀, 몸 뿐 아니라 일체 만법이 자체의 성품이 없소. 전부 인연화합으로 되어있을 뿐, 그 스스로 성립되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거요. 그 스스로도 존재하지 못하고 그 스스로도 성립되지 않거늘, 하물며 다른 것과 교섭한다든가 작용을 일으킨다든가 하는 일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오.


그런데도 우리 모든 범부들은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見聞覺知) 그 중심에 허망하게도 '나'라는 주재자를 설정한 거요. 그래서 '내'가 본다, '내'가 듣는다, '내'가 한다는 식으로, 순전히 사고(思考)에 의해서 빚어진 전혀 허망하고 아무 의거할 것이 없는 '나'라는 걸 만들어놓고 수천만 년 동안 그 허망한 '나'를 중심으로, '나와 너', '내 것과 네 것' 등등의 숱한 분한(分限)을 지어놓고 수많은 갈등을 빚어냈던 거요.


그러니 무엇보다 먼저 그 모든 갈등의 원흉인 '나'와 '내 것'이라는 생각을 송두리째 뽑아 없애야 하지 않겠소? 그래서 마침내 모든 걱정과 시름의 원인이 되는 이 몸과 마음이 없는 자리에 이른다면 얼마나 자유롭겠소? · · · · · · 누가? · · · · · · · · · · · · 고삐를 바싹 잡고 정신차려야 하오. 그 '나'라는 놈의 뿌리가 그렇게 엄청나게 깊고 질긴 거요. 눈 깜박할 사이 어느새 모든 생각과 행위의 중심을 다시 그 '나'라는 놈이 차지하고 있지 않소? '나'라는 놈을 뽑아 없앤다느니 자유로울 거라느니 하는 생각의 중심엔 벌써 '나'라는 놈이 버티고 있는 거요. 심지어 그놈을 부정하는 그 순간에도 말이오. 결국 그 생각의 중심에 '나'가 없으면 부정도 긍정도 있을 수 없는 거요. 그러니 이 길이 얼마나 삼엄하고 투철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오.




자유롭고자 하고, 시간 공간적인 그 어떤 제약에서도 벗어나고픈, 이른바 영원한 삶, 안정된 삶 등등의 온갖 바람들이 전부 이 몸과 마음에 의거해서 비롯됐던 거요. 그런데 이 몸과 마음이라는 게 전혀 의거할 것이 못 되는, 전혀 마음이 빚어낸 환상이요, 환영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연하게 드러났을 때, 경전에서 읽은 어떤 글귀나, 누구한테서 들은 얘기가 아니고, 직접 자기의 깊고 성숙된 통찰력으로, 도무지 마음이라고 할 만한 마음이 없고 몸이라고 할 만한 몸이 없다는 사실이 확연히 증험되었을 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겠소?


우리의 몸과 마음이 전혀 의거할 것이 없는 것이라면, '나'라는 삶은 도대체 어디에 의지해서 그 삶을 유지하고 있느냐 이 말이오. 몸과 마음이 제 성품이 없는 전혀 가공적인 것이라면, 우리가 순간순간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서 이른바 삶이라는 이름으로 영위하고 있는 이 모든 생명활동은 도대체 어디에 의거하고 있는 거요?


바로 그때, 즉 아무 데도 의거할 것도 없고, 장소도 없고 시간도 없고 도무지 의지할 데가 없이 막막해져 버린 바로 그때, 비로소 참된 진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거요. 그것도 살풋. 아주 순간적으로 잠깐. · · · · · · 찾으면 아무 데도 없지만 인연만 닿으면 뭐든지 나툴 수 있는 그 참된 하나. 흔히 법성(法性)이니 진여(眞如)니 진리니 하는 말들로 불려지지만 그것은 인간이 편의상 갖다 붙인 이름이지, 진여 자체가 스스로 진여라고는 물론 한 적이 없소.




이 몸과 마음뿐 아니라 일체 만유가 비어서 제 성품이 없고, 장소도 없고 방위(方位)도 없고, 시간적인 제약도 없다는 그 사실이 참으로 진실로 사무쳐질 때, 그때 이른바 참된 하나가 우뚝 드러나는 거요. 그 참된 하나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존립할 수가 없소. 일체 만유가 제 성품이 없으니 그 어떤 것도 제 스스로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소? 그런데도 여러분 눈에는 지금 실제로 삶이 영위되고 굴려지고 행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소?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나 허깨비가 어떻게 삶을 유지하고 굴릴 수 있냐는 말이오?


또한 이 몸과 마음이 전혀 실체가 없는 거라면, 그 몸과 마음을 어떻게 갈고 닦고 할 수 있겠소? · · · · · · 여러분이 지금 여기 와서 귀를 쫑긋 세우고 이 얘기를 듣는 이유가 뭐요? 이 몸과 마음을 어떻게 해서든 맑게 한다든가 깨끗하게 한다든가 무애자재한 어떤 경지로 이끌어 올린다든가 하는 뭐 그런 속셈이 있어서 온 것 아니오? 그런데 이 몸과 마음이 전혀 의거할 게 못 되는, 생각만으로 빚어진 그림자 같은 것이라면 도대체 지금 여러분의 이 상황은 뭐요? 비단 출세간적인 거룩한 목표를 지향하는 게 아니더라도, 소위 안정되고 안락한 삶, 행복한 삶, 보람 있는 삶, 그게 전부 무엇에 의해 추구되는 거요? 이 몸과 마음 아니오? · · · · · · 계속 반복하는 말이지만, 그런데 그 몸과 마음이라는 것이 전혀 의거할 게 없는 것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하는 것을 지금 깊이 보라는 얘기요.


깨달음이니, 거룩한 목표니, 안락한 삶이니, · · · · · · 그런 일 없는 거요. 전부 생각만으로 그랬던 거요. 지금 이 말은 핵폭탄 보다 더 엄청나고 충격적인 거요. 실제라고 철석같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지금 여러분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이 세상 삼라만상이 몽땅 다 꿈이라 소리요.




몸과 마음이 없으면, 지금이니 여기니 하는 시점(時點), 지점(地點)이 있을 수 없소. 오직 텅 트인 법계(法界)일 뿐이오. 이 '나'가 소멸되면 오직 하나의 참된 법계일 뿐이지, 여기니 저기니, 나니 너니, 먼저니 나중이니 하는 그 어떤 시간, 공간적인 전개가 전혀 근거가 없어지는 거요. 모든 기준이 없어진다는 얘기요. 모든 논리체계나 가치체계 역시 이 몸과 마음을 '나'인 줄로 아는, 전혀 잘못된 출발 때문에 생겨난, 전부 쓸데없는 이론일 뿐이오.


관찰한다는 게 무슨 소리요? 전부 '내'가 보는 바 아니오? 그렇다면 '내'가 본 모든 것, '내'가 관찰한 모든 것, '내'가 들은 모든 것, 그렇게 보고 듣고 궁리해서 깨달아 알아낸 모든 결과는 전혀 가공적이고 근거가 없는 것 아니겠소? 이 사실을 확실히 깨달은 사람은, 새삼스럽게 새로 비울 것도 없이 지금 있는 이대로인 채로, 자신이 그 동안에 꾸역꾸역 긁어모았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 전부 빈 것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소. 아주 흔쾌히 그 자리에서 두 손 툴툴 터는 거요.




지금까지 한 얘기는 엄연히 존재하는 '나'를 없애라는 소리가 아니오. 여러분이 그동안 철석같이 믿고있는 그 '나'라는 존재는 순전히 생각만으로 빚어진 환영이나 그림자 같이 본래 없었던 거요. · · · · · · 그래서 이 몸과 마음이 전혀 의거할 데가 없다는 사실이 확연해 지는 순간, 그 무수한 낱낱의 소중심(小中心)들이 전부다 해소되고, 그때 비로소 본래의 자리로 지귀(知歸)할 수 있는 거요. 하나로 돌아간다 소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