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연 맨 처음에 무엇이 있었는가?
2. '시작'도 '끝'도 없는 공간에서 
3. 항상 반쪽이면서 동시에 늘 꽉 차 있다
4.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다
5. 불이 섶을 태우는 게 아니고···
6. "이 뭇꼬?"···
7. 온갖 법은 스스로 성립되는 일이 없다
8.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살고, 용과 뱀이 섞였느니라
 
     
   

모든 것, 심지어 '공간'과 '시간'까지도 다 사람의 '마음'에 의해서 허망하게 인식되어진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 같은 존재라는 사실이 이론의 여지없이 거듭거듭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을 떠나서는 결코 혼자서 성립될 수 없는 거예요. 사실이 이에 이르렀는데도 사람들은 좀처럼 낡은 물질관이나, 고전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시간'과 '공간'까지를 포함한 일체만유는 이 모두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있고', '없다'고 해서 '없다'」는 이 사실을 사람들이 선뜻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 '시간'이나 '공간'에 관한 인식도 역시 '빛깔'이나 '냄새' 등에 대한 느낌과 마찬가지로 <지각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입니다.

'빛깔'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안목이 없으면 아무 의미도 있을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한 찰나'나 '한 시간'이나 또는 '하루'와 같은 시간적 차별도 <그것을 식별할 수 있는 어떤 '사건'>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지 않겠어요? 마치 '공간'이라는 게 <그 공간을 점유하는 물건>이 없다면 그 '공간'은 아무 것도 아니듯이, '시간'이라는 것도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는 순서>라는 것이 없다면, 그 '시간'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뭔가가 생겨나서는 잠깐 머물렀다가 변하면서 마침내 사라져 가는>, 이른바 '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 사건들이 없다면 '시간'이 어떻게 혼자서 성립될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사람들 마음에 「모든 것이 변하면서 흘러가고 있구나! ··· 」 하는 묘한 환각을 일으키는 거예요. 이게 바로 '시간'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공간'이니 '시간'이니 하는 것도 역시 다른 모든 '법'과 마찬가지로 혼자만의 독립적인 '성품'을 갖고 있는 게 아니고, '다른 어떤 것'에 의지해서만이 그 존재성이 인정되는, 이른바 '의타기성(依他起性)의 도리'를 벗어나는 게 아닌 겁니다. 그러기에 고인(古人)이 이르기를, 「저 '허공'마저도 마치 망망대해에 나타난 한 점 물거품처럼, 미혹한 중생들의 망정(妄情)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하게 된 한갓 허망한 티끌에 지나지 않으니, 그 밖의 다른 것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했던 거예요. 그러므로 「무한한 과거로부터 무한한 미래를 향해서 똑딱똑딱 비정하게 흐르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사람들이 멋대로 지어낸 가상적 개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 대목을 이해하는 데는 매우 깊은 고찰을 필요로 합니다. 만약 이것이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면, 이것이 이해될 때까지는 다른 건 모두 일단 덮어두세요. 설사 '유심(唯心)의 도리'를 깨달아서 '순일한 허공성'을 얻었다 하더라도 이 <'있음'과 '없음'으로 정의되는 '존재'의 장애>를, 즉 이른바 '질애'(質碍)라는 이름의 이 엄청난 말뚝을 그 '마음'에서 완전히 뽑아버리지 못한다면 결코 <'있음'에 교섭하면서 걸림 없이 자재한다>는 것은 한갓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흔히 이 '색루'(色累=質碍)를 제하려고 애쓰던 끝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어느 날 문득 <모든 경계가 사라지는 경지가 나타나면> 스스로 환희하면서 말하기를, 「허공에 바람 가듯 한다」고 겁도 없이 말하는 걸 보는데, 참으로 삼갈 일입니다. 이런 경지는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의근'(意根)으로 '법 티끌'(法塵)을 희롱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해탈', 진정한 '열반'은 결코 인간의 의식으로 감지될 수 있는, 그런 게 아닙니다. 만약 '참 지혜'가 열려서 모든 존재의 본래 평등한 '실상'(實相)을 간파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춘 이라면, 곧 지금처럼 이렇게 어지럽고 시끄러운 세속 이대로가 바로 '해탈'이요, 이대로가 '열반'이라는 걸 곧 알게 될 겁니다.



무착 선사(無着禪師)가 오대산(五臺山)으로 문수사리(文殊師利)를 뵈러 갔더니, 문수가 무착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어디서 떠났는가?』
『남방에서 왔습니다.』
『남방의 불법이 어떻게 유지되는가?』
『말법(末法)의 비구(比丘)들이 계율을 지키는 이가 적습니다.』
『대중은 얼마나 되는가?』
『삼백에서 오백 정도 됩니다.』

그리고는 무착이 도리어 문수에게 묻기를,···

『여기서는 어떻게 사십니까?』 하니, 문수가 대답하기를,···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살고, 용과 뱀이 섞였느니라.』하는 것이었어요.

약간 어리둥절한 무착은 이어 묻기를,···

『여기에는 대중이 얼마나 됩니까?』 하니, 문수가 대답하기를,···

『앞도 삼삼이요, 뒤도 삼삼이니라(前三三 後三三).』 했습니다.

이어서 문수가 유리잔을 들어 무착에게 보이면서 묻기를,···

『남방에도 <이런 것>이 있는가?』
『없습니다.』
『이미 없다면 <무엇>을 가지고 차를 마시는가?』 하니, 무착이 대답을 못했습니다. 이윽고 해가 저물자, 무착이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니, 문수가 말하기를,···

『그대는 집착하는 마음이 있어서 여기서 묵을 수 없느니라.』
『저는 집착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에 문수가 묻기를,···

『그대는 계(戒)를 받은 지 얼마나 되는가?』
『이십 년이 됩니다.』 하니, 문수가 말하기를,···

『집착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몹시 좋아하는구나.』 하고는 동자(童子) 균제(均提)를 시켜서 내쫓으라고 했습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길에 무착이 균제에게 물었어요.

『아까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앞도 삼삼이요, 뒤도 삼삼이라」 하셨는데, 그게 얼마라는 말인가?』 하니, 동자가 말하기를,···

『대덕이여!』 하여, 무착이 막 고개를 돌리는 것을 향해서, 동자가 묻기를,···

『<그것>은 얼마입니까?』 하는 것이었어요. 무착이 그래도 알아듣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다가, 이 절에 편액(扁額)이 없는 게 눈에 띄었어요. 그래서 동자에게 묻기를,···

『이 절의 이름이 무엇인가?』 하니, 동자가 손으로 금강신장(金剛神將)의 등뒤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
『보시오!』 하자, 무착이 그 손길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변화(變化)로 된 절도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유명한 화두(話頭)를 통해서 참으로 많은 걸 깨우치게 됩니다. '허공'처럼 텅 트인 '한 마음' 가운데는 본래 '방향'도 '경계'도 없어서, 도무지 시간 공간적인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어요. 따라서 '허공'은 본래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물론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이와 같은 말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일체의 시간 공간적인 차별법은 순전히 이것이 정식(情識)으로 지어진 영상일 뿐, '본래 마음'(本心)에는 아무런 증감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도 실정은 어떻습니까? 명색이 '마음 공부'를 한다는 이들이 매양 '범부'를 면하고 '성인' 되기를 희망하면서 오늘도 이리 저리 무리 지어 다니며 헛수고를 하고 있으니, 이 공안(公案)의 말씀이 마치 큰 천둥소리 같지 않습니까?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살고, 용과 뱀이 섞였느니라」,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 이니라」··· 그 동안 이 화두를 두고 얼마나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입 품을 팔았습니까.

본래부터 티끌 하나 있었던 적이 없었는데 다시 무엇이 사라지겠어요? '있는 게' 그대로 '없는 거'예요. 지금처럼 이렇게 울퉁불퉁 시끄러운 게 그대로 평평하고 고요한 겁니다. 지금 그렇게 '움직이는 마음'이 그대로 '고요한 마음'인 거예요. ··· 덥수룩한 '거북 털'을 말끔히 깎아버렸더니 시원하게 됐다고 좋아한다면 누군가는 되게 눈살을 찌푸리지 않겠어요?



운문 대사(雲門大師)의 말처럼, 「'평지'(平地=淨土) 위에서 죽은 사람이 무수하니, 가시밭을 통과해야 비로소 좋은 솜씨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도 그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학인(學人)들이 애쓰고 있습니까?
따라서 이르기를, 「천리동풍(千里同風)에 동참하기는 차라리 쉬우나, 걸음걸음마다 발끝에 밟히는 오랏줄을 제하긴 쉽지 않느니라」 하고 말했던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