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칼은 스스로를 베지 못하고, 손가락은 스스로를 만지지 못한다.
  2. 법문(法門) : 전일(全一)한 그 자리는 능·소(能所)가 나뉘기 이전이다.
  3. 공안(公案) :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라.
  4. 게송(揭頌) : ‘불법의 견해’나 ‘외도의 견해’가 모두 나쁘고...
 
     
   
     
   

     만약 뜻(意)을 두어서 '부처'를 찾는다면
     이는 마치 산에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으려 함과 같아서,
     헛되이 힘을 써도 이익이 없거늘
     이 얼마나 부질없는 수고를 했던가?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치 말(馬)을 타고 다시 말을 찾는 것과 같구나.
     만약 온갖 것에 애증(愛憎)의 마음만 없으면
     모든 번뇌가 당장에 없어지리라.


     ··· (중략)


     '불법의 견해'나 '외도의 견해'가 모두 나쁘고
     '불법'도 '마법'(魔法)도 모두 틀렸다.
     이 두 가지의 큰 '마'(魔)에 걸리면
     당장의 '고'를 싫어하고 '낙'을 치구(馳求)하게 되나니,

     생사의 근본은 본래 공한데, 부처나 악마가 어디 붙으랴?
     '근본'에 돌아가면 누가 있어 따지고 분별하겠는가?
     '있고·없음'은 다만 스스로가 판단할 따름이니
     '허망한 마음'에는 헤아릴 힘이 없다.


     ··· (중략)


     만약 '나'와 '남'이라는 두 생각을 내면
     마주 대하고도 '부처'를 보지 못하리라.

     세간의 허다히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도'를 가지고 다시 '도'를 구하면서
     온갖 '이론'만을 찾아 어지럽게 설치니,
     자기 몸 구제하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네.

     오로지 남의 글만을 찾아 어지러이 지껄이면서
     '지극한 이치'가 오묘하다고 자칭(自稱)하는데,
     이렇게 헛수고로 일생을 헛되이 보내다가
     영겁토록 '생사'에 빠져 헤매리라.

     '마음'이 본래 공한 줄 알면 '진여'는 스스로 구족하건만
     저 '성문'(聲聞)들은 생각생각에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혹은 미혹을 끊고, 혹은 미혹 끊으려는 마음을 물리치니,
     언제나 '본래의 참 뜻'을 깨달으랴?

  

     ― 대승찬(大乘讚) 중에서, 지공(誌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