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칼은 스스로를 베지 못하고, 손가락은 스스로를 만지지 못한다.
  2. 법문(法門) : 전일(全一)한 그 자리는 능·소(能所)가 나뉘기 이전이다.
  3. 공안(公案) :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라.
  4. 게송(揭頌) : ‘불법의 견해’나 ‘외도의 견해’가 모두 나쁘고...
 
     
   
     
   

 어느 날, 『무엇으로써 마음을 삼는가?』 라는 제자의 질문에 달마대사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그대가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 마음>이요,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는 것이 곧 <나의 마음>이니라.
 끝없는 광대겁(曠大劫) 이래로, 내지 온갖 운동을 하는 모든 시간과 모든 장소가 모두 그대의 <본래 마음>(本心)이며, 모두 그대의 <본래부처>(本佛)이니,···<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니라> 함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이 '마음'말고는 끝내 따로이 '부처'를 얻을 수 없나니, 이 '마음'을 떠나서 '부처'와 보리(菩提), 열반(涅槃)을 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니라.
 <자기의 성품>은 진실하여, 인(因)도 과(果)도 아니며, '법' 그대로가 곧 '마음'인 이치이니,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요, <자기 마음>이 곧 원만하게 밝고 고요히 비추느니라.

 '부처'란, 곧 <자기의 마음>으로 지은 것이거늘, 어찌 이 '마음'을 떠나서 따로 '부처'를 찾으리요?
 모든 부처가 오직 이 마음을 말하였으니,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인지라,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마음이 없다. 만약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면 부처가 어디 있는가? 마음 밖에 이미 부처가 없다면 어찌 <'부처'라는 소견>을 일으키겠는가?
 모습에 홀려서 마음이 뒤바뀌어, <본래 마음>(本心)을 요달하지 못하고, 무정물(無情物, 佛像)에 포섭되어 자유가 없나니, 만약 믿지 못하면 스스로를 속이는지라 이익이 없도다.

 '부처'는 허물이 없건만, 중생이 전도되어 <자기 마음>이 곧 '부처'인 줄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느니라. 만약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인 줄 알았으면 마땅히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지니라. '부처'가 '부처'를 제도할 수 없나니,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찾는다면 끝내 부처를 알지 못하리라. (밖으로 찾는 부처는) 다만 '밖의 부처'일 뿐이니, 이 모두가 자기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또한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절(禮佛)을 하지 말며,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생각(念佛)하지도 말라. 부처는 독경(讀經)도 하지 않고, 부처는 계율(戒律)을 지니지도 않고, 범하지도 않으며, 부처는 지킴도 범(犯)함도 없고, 또한 선(善)도 악(惡)도 짓지 않느니라.
 만약 부처를 찾고자 원한다면 모름지기 '성품'(性品)을 보아야 곧 이 부처이리니, 만약 '성품'을 보지 못하면 염불(念佛)하고, 독경(讀經)을 하고, 지재(持齋), 지계(持戒)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이익도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