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의식을 통한 어떠한 노력으로도 해소될 수 없다.
  2. 법문(法門) : 이해하려 하지말고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그냥 스쳐가도록 두어라.
  3. 공안(公案) : 안으로 마음이 일어날 때, 이것이 바로 부처를 해침이니라.
  4. 게송(揭頌) : 많이 생각하지 말고 많이 알지 말라,...
 
     
   
     
   

 우리한테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본래 '있다, 없다' 하는 것은 빈 말에 불과한 겁니다. 이 세상에는 있다고 할만한 것도, 없다고 할만한 것도 없어요. 우리의 지극히 애매모호한 감각이 뭔가를 있다고 인식하고, 뭔가를 없다고 인식할 뿐인 거요. 본래 성품 그 자리는 찬 것도 빈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그대로인데, 그게 어떤 인연과 조건에 따라 외양으로 드러날 때에는 지금 우리가 보는 물질적인 형태로도 나타나고 허공과 같은 형태로도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나 그 외양이 아무리 다르게 느껴져도 마음이 물질을 취한 거나, 마음이 허공을 취한 거나 취하기는 매한가지이니 물질도 허공도 똑같이 마음에 비친 그림자인 거예요. 물질이니 허공이니 하는 것은 우리가 억지로 지어낸 구분이지 본래의 참 마음자리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모두를 자기가 지어서 펼쳐놓은 것인 줄 모르고, 허공은 본래 있고 그 가운데 '나'까지 포함한 모든 물질이 있다고 믿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여러분은 물질과 허공이 크게 봐서 둘 다 사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취하지 않으면 물질도 허공도 본래 없는 겁니다. 만약 이 세상에 뭔가 대상을 봐서 그것을 물질이라고, 혹은 허공이라고 인식하는 생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주는 우주가 아닌 거예요. 우주니 자연이니 하는 것은 그냥 의미 없는 소리에 불과한 거예요. 없는 거란 말입니다. '없다'는 것도 지각인데 아무도 없다면 도대체 누가 '없다'고 하겠어요? · · · 이쯤 되면 '없다'는 것도 없는 겁니다.

 이 세상의 일체 존재는 다만 인식작용을 하는 어떤 생물의 마음에 비친 빛의 얼룩입니다. 그런데 그 빛이라는 것도 마음이 인식해야 빛인 거예요. 우리는 빨간색은 내가 인식하거나 말거나 빨간 색으로 있는 줄 알지만, 사람의 마음이 의식하지 않는데도 빨간빛이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겁니다. 마음이 지어서 빨간색이고 마음이 지어서 세상인 거예요. 모든 형상은 전부 환영입니다. 우주 삼라만상도 마음이 지어서 존재지 마음이 짓지 않으면 존재도 비존재도 모두 빈 말인 거예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일체가 다만 마음이 지어낸 겁니다. 마음이 짓지 않으면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이런 말을 듣고도 이치는 그럴 것 같지만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무리 생물이 없다고 해도 저 무변광대한 우주는 있다'고 생각하기 쉬울 거요. 그것이 소위 '질애(質碍)'요. 발목 잡힌 겁니다. 우리가 근본적인 초월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골치 아파하는 거 알면서도 양자역학을 다시 거들지 않을 수가 없어요.
물질의 최소단위인 소립자를 관찰하면, 관찰방법에 따라 입자의 성질을 나타내기도 하고 파동의 성질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물질을 이루는 최소단위는 물질이기도 하고 허공이기도 하다는 얘기예요. 이 알 수 없는 것들이 모여서 온갖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물질도 허공도 아닌 이 양자의 집합이 일체존재라는 소리요. 이 종잡을 수 없는 것들이 어우러서 인연을 맺으면 각가지 결과를 내는 겁니다. 마치 나무막대와 쇠꼬챙이를 써서 바퀴를 만들면 원래의 나무막대나 쇠꼬챙이한테는 전혀 없었던 '구른다'는 성질이 나타나는 것처럼, 이 물질도 아니고 허공도 아닌 존재가 어우르면 온갖 아기자기한 형상을 지어내는 겁니다. 물질도 지어내고 허공도 지어내고 소위 정신적인 지각작용, 물리적인 운동, 별거 다 하지만 그 근본은 본래 비어서 하는 자도, 짓는 자도 없는 거예요.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마음에 비친 그림자이고 실체가 아닌 환영이니 머릿속에 뭔가를 떠올리거나 그린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지만, 우리는 그 모두를 실체로 보고 대상을 머리에 떠올려서 인식하고 이해하는 거예요. 모든 대상을 머리에 떠올리고 그리는 것만이 이해하는 것인 줄로 압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대상을 이해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투영한 것을 바라보는 거예요. '나'의 바깥에 '나'하고 상관없이 존재하는 현실이 있다는 생각은 그럴 거라는 가정에 불과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가정이라고 하지 않고 뭔가가 분명히 있다고 확신합니다. 뭔가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을 머리에 떠올리고 생각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예측하기도 하는 거예요. 그러나 진실로 대상은 그릴 수가 없는 겁니다. 대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데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떠올리고 하겠어요? 일체는 모두 그 자체의 성품이 없는 겁니다. 그런 걸 다만, 사람이 '그건 거기에 자체의 성품을 갖고 그렇게 존재하는 거'라고 여기고 있는 것뿐이에요.
 양자역학이라는 일련의 의미 있는 과학적 발견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대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어요. 객관적 관찰이란 불가능한 겁니다. 내 마음 바깥에 '나'와 무관하게 실체로 존재하는 것은 없는 거예요. 모두가 우리 마음이 지어낸 겁니다. 지금까지 소위 20세기 초엽 이전의 과학은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기술(記述)한다는 바탕 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객관적인 관찰이나 기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도 아닌 과학자들 자신에 의해서 표방된 겁니다. 과학도 이제 더 이상 절대적인 의미가 없다는 소리예요. 그러니 모든 시간적 공간적 측정은 이미 절대적인 의미가 없는 상대적인 거라 이 말입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인 관찰이고 정신적인 구조물이지 절대적인 의미는 없는 거예요. 관찰자인 '나'하고 무관하게 저기에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어떤 현실도 환상입니다. 관찰했다는 사실 자체에 의해서 대상은 이미 변형되는 거예요. 단지 그 변형되는 상태가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그게 감지되지 않는 것뿐인 겁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객관적 관찰이 불가능하다면 모든 것이 내가 관찰한 것이 아니고 내가 지은 것이라는 소리 아니겠어요? 다시 말해 내 뜻에 합당하도록 내가 지은 거라 이 말입니다. · · ·
 이처럼 모든 존재가 존재가 아니고 내가 지은 것이라는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 · · 우리는 더 이상 대상을 그리는 수고를 않게 되겠지요? 대상을 그리지 않으니 좋고 싫고의 분별도 사라지는 겁니다. 모두 내가 지은 것이고 대상을 그릴 수가 없는 게 현실이라면, 내가 오관(五官)을 통해서 뭔가를 인식했다는 것은 대상을 인식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그린 그림을 인식한 것에 불과한 거예요. 또한 객관적인 관찰이 불가능하다면 객관적인 기술도 불가능하겠지요? 관찰 결과를 객관적으로 적을 수도 없고 객관적으로 말할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객관적인 관찰이나 기술이 불가능하고 모두가 내가 지은 것이라면 우리가 뭔가를 보거나 듣고 그것 때문에 헐떡이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중뿔나게 자기 자신을 내세울 일도 없는 겁니다. 게다가 지금처럼 말을 듣거나 글을 읽어서 진리에 접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없다는 뜻이에요. 경전이나 모든 지혜로운 사람들의 말씀이나 그분들이 남긴 행적을 통해서 진리에 접근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실상은 무엇이겠어요? · · · 우리가 언어화하고 개념화해서 저기 어딘가에 있는 절대적인 진리를 터득하고 그것을 체달하는 그런 구조가 아닌 겁니다. 뭔가를 새로이 배워서 이루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이미 행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있는 이대로인 채로 진리 그 자체의 율동인 겁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아무리 강조해도 감각이나 느낌에만 의존하는 고전적인 세계관이나, 대상을 머리로 그려서 인식하고 설명하려는 오랜 습관을 부수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 마음속의 얼개가 그만큼 완강한 거예요. 우리는 항상 감각과 의식에 의존해서 뭔가를 머릿속에 그리고 떠올려서 이해하는 인식방법에 너무 길들여져 있어요. 앞에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은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지 이해하는 것이 아닌 거예요.
 늘 강조하듯이 머릿속에 뭔가를 떠올려서 이해하려 하지말고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모든 게 그냥 스쳐가도록 둘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해하는 것이라기보다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상을 머릿속에 그려야만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고전적인 세계관이 우리한테 남겨준 유물이에요. 우리는 "은하수는 저기에 있다"고 하늘을 가리키지만, 그 말을 하는 자기 자신도 은하수인 겁니다. 그렇다면 내가 본 은하수는 나한테 보이도록, 내가 관찰할 수 있도록 배열된 은하수 한 부분의 모양이지 은하수의 전체 모양은 아닌 거예요. 이런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은 모든 대상은 나와 더불어 하나인 거예요. 나와 대상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소립니다. 관찰자인 나와 관찰 대상은 본래 하나인 거예요. 통틀어 하나인데 어떻게 다시 이 '내'가 대상을 보겠어요? '내'가 '나'와는 전혀 다른 실체로서의 대상을 본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지금껏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대단히 특별한 공간 속에 갇혀서 특별한 환경에서 특별한 경험을 축적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의 감관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특별한 환경에 맞도록 조율된 겁니다. 이제 우리의 행동반경을 무한으로 확산하려면 대상을 머리에 그려서 이해하고 설명하는 인식방법에서 벗어나야 해요. 감각, 느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전체가 보입니다. 느낌이란 내가 대상을 봤을 때에 그 대상에 수반되는 감정이고 과거의 기억에 지나지 않는 거요. 지나간 기억을 현재에서 말아내는 것이 지금 우리의 관찰인 겁니다. 우리가 뭔가를 보고 듣고 해서 느낌이나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전부 죽은 기억의 재생작업에 불과한 거라 소립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여러분은 '대상을 그리지도 않고 감각에 의지하지도 않고 어떻게 알 수 있겠나?' 하며 답답증을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그냥 문을 활짝 열어놓게 되면 여러분은 분명히 이해하게 될 겁니다. 분명히 이해하기는 하는데 그것을 누군가에게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그런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뭔가를 보고 듣는 가운데 그것을 언어나 문자로 설명하려고 하는 한, 우리는 감각과 의식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겁니다. 말하자면 설명 그 자체가 전혀 의미 없는 잠꼬대와 같은 거라 소리예요. 그것이 옳은 설명이었건 그른 설명이었건 모두 환상인 겁니다.
 이제 더 이상 감각이나 느낌에 의지하지 않게 되어야 합니다. 나와 대상 사이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가공적인 것이고 환상적인 거예요. 실체가 없는 거란 말입니다. 꿈을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무슨 뜻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모든 것이 전적으로 꿈과 같은 겁니다.

 지금껏 내가 하는 말을 그냥 넋 놓고 수긍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깊숙이 들어가서 그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직접 알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뭔가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일, '나'하고 상관없이 내 바깥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현실이 있다는 생각 등등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알게 될 겁니다. 마음밖에 한 물건도 없다면 우리의 마음을 헐떡이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것은 전부 까닭 없는 겁니다. 자기가 지은 그림에 제가 속아 헐떡이는 거예요. 그러나 이 고개가 너무 높고 험해서, 이 약을 먹기는 먹어야겠는데 너무 커서, 삼킬 수가 없어서 헐떡이고만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참으로 이것을 한 목숨에 집어 삼킬만한 결의를 가지고 달려든다면 이 환약은 간단히 삼켜집니다. 그게 전부다 내 마음으로 지어서 그 환약이 크게 느껴지고 그 골이 깊게 여겨지는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