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릇 문자나 언어는 그 모두가 '마음의 자취'이다.
  2. 법문(法門) : 정신적, 물질적 모든 존재는 머리로 지은 관념에 불과하다.
  3. 공안(公案) : 만약 바로 안다면 무슨 현묘한 말이나 구절이 있을 수 있겠는가?
  4. 게송(揭頌) : 심명(心銘) 중에서
 
     
   
     
   

 '푸르른 신록(新綠)의 계절'· · · 요즘과 같은 5월이면 흔히 듣는 소리이다. 울긋불긋한 꽃들과 파란 초목, 향긋한 꽃향기· · · 그 광경을 바라보며 "아, 아름답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도 하지만, 개중엔 "글쎄, 난 그저 그런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의식'과 그를 표출하는 '말'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자기 중심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것일 뿐, 결코 '사실' 자체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아무 것도 없고 없는 것조차도 없는 텅 트인 허공에 스스로 지어서 감탄하고 스스로 지어서 고민하는 것일 뿐, 실상은 한치도 늘고, 줄고, 옮기고 한 적이 없이 공적(空寂)한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은 경계마다 역·순(逆順)으로 엇갈려 내달리니, 생각 생각마다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 가는 곳마다 동요하고 결박되는 것이 범부의 모습이다. '진공(眞空)' 가운데 망령되이 이름과 모양을 세우기 때문에 범부요, 이름과 모양이 공한 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성인이란 말도 그래서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와 같은 범부와 성인이라는 '말'에 끄달려 또 다시 성인의 경지를 탐하여 헐떡인다면 그 사람은 당나귀해가 되어도 성불할 기약은 없을 것이다. 다음의 경책을 깊이 참구할 일이니 과연 삼엄하고 삼엄한 길이 아닐 수 없다.

 '참된 이치'(眞諦)는 그 성품이 '공의 본체'이지만, 공하면서도 공하지 않고, '세속의 이치'(俗諦)는 환(幻)으로 존재하는 현상이므로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인지라, '존재'는 공(空)을 장애하지 않고, '공하지 않은 공'인지라, '공'은 '존재'를 단절시키지 않는다.
 만약 마음으로 한 법이라도 존재한다고 작정하면 곧 '상견'(常見)에 떨어지고, 만약 "마음 밖에는 한 법도 없다"고 집착하면 곧, '단견'(斷見)에 떨어지리니, 이와 같은 지견들이 모두 '소견의 그물'을 이룰 뿐이요, 이와 같은 지견을 버리지 않는 한 결코 뚜렷한 대원경(大圓鏡)에 들지 못하리라.

 따라서 무릇 문자나 언어에 비친 것이면 그 모두가 '마음의 자취'인 것이니, '자취'를 알고 '근본'을 얻으면 저절로 '자취'가 끊어지면서 종(宗)으로 돌아가겠지만, 만약 '자취'에 미혹하여 '대경'(對境)을 좇으면 곧 '근본'을 잃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알면 '근본'과 '자취'가 비록 다르나 그 모두를 하나로 굴릴 수 있고, 만약 이것에 어두우면 '근본'과 '자취'를 모두 미혹하여 망정(妄情)만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도 역시 모두 말과 글에 불과하니, 영특한 사람은 글을 설명하면 곧 그 뜻을 알아야 한다. 만약 글을 설명할 때에 뜻을 알면 바로 법을 보고 마음을 알리니, 비로소 대원경에 들어서 단박 의심이 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