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애(無碍)를 탐하는 것이 이미 장애(障碍)이다.
  2. 법문(法門) : 있는 그대로, 지금 무엇이 부족합니까?
  3. 공안(公案) : 흐름을 따라 성품을 깨달으면...
  4. 게송(揭頌) : 도(道)를 닦으나, 도는 원래 닦을 것이 없고...
 
     
   
     
   

 이 길에 들어선 수행자라면 무애자재(無碍自在)한 삶의 모습을 한 번쯤은 머릿속에 그려보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러한 경지를 탐하고, 그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유위의 노력을 멈추질 않는다. '무애(無碍)'를 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장애(障碍)'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수행자들이 많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경(經)에 이르기를 성품을 밝혀 구경에 이르면 저절로 다음과 같은 열 가지 '걸림 없음(無碍)'이 나타나게 된다고 하니 즉, ···

  (1) 작용이 두루하여 걸림 없고, (用周無碍)
  (2) 모양이 두루하여 걸림 없고, (相遍無碍)
  (3) '고요함'과 '작용'이 걸림 없고, (寂用無碍)
    <이와 같은 '그지없는 자재'가 나타나면서도 '뜻'(意)을 짓지도 않고, 생각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언제나
    '삼매'에 있으면서도 일으키는 작용에 거리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사의품(不思議品)에 이르기를, ···
   『한 생각 동안에 삼세제불을 나투고, 중생을 교화하되 '부처의 적멸'과 '둘 없는 삼매'를 여의지 않는다.
    이것이 '부처'의 비길 데 없는 '부사의 경계'로서, 마치 '마니주'가 보물을 비내리고, '천고'가 소리를 내
    는 것과 같아서, 공을 들임이 없이 저절로 성취된다.』고 했다.>
  (4) 의지(依支)와 일어남(起)이 걸림 없고, (依起無碍)
   <비록 모든 나타난 바가 공용(功用)이 없기는 하나, 이 모두가 '해인삼매(海印三昧)의 힘'에 의하면서 나
    타나게 된다.>
  (5) 진신(眞身)과 응신(應身)이 걸림 없고, (眞應無碍)
   <응현(應現)하는 그지없는 몸이 생멸이 없고, '법신'과 평등하여 '한 맛'이며, '작용'에 거리끼지 않고 한
    량(限量)이 없다.>
  (6) '나뉨'과 '원만'함이 걸림 없고, (分圓無碍)
   <법계에 두루한 '노사나(盧舍那)의 몸'(부처의 眞身)에는 낱낱의 몸의 낱낱의 갈래와 낱낱의 털구멍마다
    모두가 스스로 '노사나의 전신'이 있다. 따라서 '나누어진 곳'이 그대로 '원만'하다.>
  (7) 원인과 결과가 걸림 없고, (因果無碍)
  (8) 의보(依報)·정보(正報)가 걸림 없고, (依正無碍)
  (9) 숨어 들어감이 걸림 없고, (潛入無碍)
   <중생세계에 들어감을 말하는 것이니, 마치 여래장(如來藏)이 비록 중생으로 되었다 하더라도 '제성품'
    을 잃지 않는 것과 같다. 선화천왕(善化天王)이 "그대는 부처의 한 털구멍 속을 살필지니, 온갖 중생이
    모두 그 속에 있다"고 읊은 이유가 그것이다.>
  (10) 뚜렷이 통하여 걸림이 없다. (圓通無碍)
   <'부처 몸'은 '본체'가 곧 '현상'이요, '하나'가 곧 '여럿'이며, 의보(依報)가 곧 정보(正報)요, '인아'가 곧
    '법아'이며, '이것'이 곧 '저것'이다. '정'(情)이 '정'이 아니어서, '깊음'이 곧 '넓음'이니, 모두가 동일하
    여 걸림이 없다.>

 이와 같은 경전의 말씀을 대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참된 수행자라면 유위의 공덕을 바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공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위와 같은 무애의 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난날의 습관(業)처럼 '그렇게 되기 위해' 끊임없이 보다 높고, 보다 훌륭한 경지를 탐하여 헛되이 유위의 노력을 계속한다면 아무리 높고 거룩한 경전의 말씀도 한낱 스스로를 옭아매는 또 하나의 족쇄가 될 뿐이다. 황금이 비록 아무리 귀하다 하더라도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진리는 본래 스스로 온전히 갖추어져 있어서 닦을 것도, 할(爲) 것도, 알 것도 없지만 각자가 억지로 지어 괜히 헐떡일 뿐이니, 이와 같은 사실을 철저히 알아서, 다만 시절과 인연을 따르되 조작함이 없고 자취가 없으면 이것이 바로 무애자재(無碍自在)한 삶인 것이다. 이와 같은 '걸림 없음'(無碍)은 오직 '한 마음' 뿐이요, 만약 밖의 대경(對境)이 털끝만큼이라도 있다면 곧 걸리게 되는 것이다.
화엄경(華嚴經)의 게송에도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으니 깊이 참구할 일이다.

  '부처 몸'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요
  또한 장차 오는 미래도 아니며,
  '한 생각' 동안에 태어나게 되고
  또한 성도(成道)하고 열반함도 나타내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