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다의 천파만파(千波萬波) 그 어느 것도 바다 아님이 없다.
  2. 법문(法門) : 작은 파도 하나가 이미 저 광대한 바다와 한 몸이다.
  3. 공안[公案] : 목전의 여러 가지가 여러 가지가 아니요, 여러 가지 아닌 것이 곧 여러 가지이다.
  4. 게송(揭頌) : 이 보고 들음이 보고 들음인 채로 보고 들음이 아니니······
 
     
   
     
   

앙산(仰山)이 어떤 중에게 묻기를, · · · · · ·


『그대는 어디 사람인가?』
『유주(幽州) 사람입니다.』
『그대는 그 곳의 일을 생각하는가?』
『네, 항상 생각합니다.』 하니, 선사가 말하기를, · · · · · ·

『생각하는 것(能思)은 마음이요, 생각하는 바(所思)는 경계이니, 그대는 그 곳의 누대(樓臺)와 전각(殿閣), 그리고 분주히 오가는 인마(人馬)등을 생각하는 것을 돌이켜 생각하여 보라(返思思底). 그래도 그 숱한 것들이 있는가?』하였다. 이에 중이 대답하기를, · · · · · ·

『제가 여기에 이르러서는 도무지 있음을 보지 못합니다.』 하였다. 이에 선사가 말하기를, · · · · · ·

『신위(信位)는 얻었으나 인위(人位)는 얻지 못했다. 그대 견해에 의하건대, 단지 하나의 현묘함(一玄) 만을 얻었으니, 앉을 자리를 얻어서 옷을 걸친(得坐披衣) 뒷날 스스로 살펴보라.(自看)』하였다.




△ 대홍은(大洪恩)이 송했다.

앉을 자리를 얻거든 응당 모름지기 다시 스스로 살펴보라.
열반성(涅槃城) 속이라도 편안치는 못하리라.
털을 쓰고(披) 뿔을 인(載) 무리들을 거듭 서로 만나니
온갖 간난(艱難) 끝없이 겪기 얼마이던고?




△ 법진일(法眞一)이 송했다.


유주(幽州)의 고향을 물어 이야기를 시작하니
역력(歷歷)한 산천이 가슴속에 간직되었다.
생각함을 도리켜 생각할 때 모두가 없으니
옷을 입은 뒷날에 모름지기 다시 생각해 보라.




△ 취암종(翠岩宗)이 염하기를, · · · · · ·


『바야흐로 생각할 때(正思時)는 산하대지는 어찌하여 있으며, 돌이켜 생각할 때(返思時)는 산하대지는 어찌하여 없는가? 만약 이 속에서 곧바로 본다면, 고인이 이르기를, 「유·무의 자취가 다하고, 피·아가 함께 없어져서, 인위(人位)와 신위(信位)가 가지런히 나타나고, 능히 생각함(能思)과 생각하는 바(所思)가 평등하도다」한 말을 믿게 되리니, 이럴 때에는 어떻게 행리(行履)해야 되겠는가?

벽옥(碧玉) 소반에 구슬이 구르고, 유리(琉璃) 궁전 위에 달이 배회한다.』 하였다.




△ 불안원(佛眼遠)이 이 이야기를 들고는 말하기를, · · · · · ·


『때에 중이 말하기를, 「생각하는 바(所思)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생각(思底)은 여러 가지가 없다」는 치우친 견해를 드러냄으로써 앙산(仰山)으로 하여금,「겨우 한 가지 현묘함만을 얻어서 도안(道眼)이 바르지 못하다」고 말하게 하였다.

만약 산승의 견해에 의하건대, 생각하는 바(所思) 누각과 전각 등이 많으나, 그것이 도리어 여러 가지가 아닌 것이요, 생각이 여러 가지가 아니지만 그것이 바로 여러 가지인 것이니, ― 지금 목전에 있는 여러 가지가 여러 가지가 아닌 것이요, 여러 가지 아닌 것이 바로 여러 가지인 것임을 증험(證驗)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비목선인(毗目仙人)이 선재(善財)의 손을 잡으니 선재가 무량한 세계의 미진수(微塵數) 부처님을 뵈었고, 선인이 손을 놓자 완연히 전과 같았던 것과도 같다.

좋구나, 대중이여! 손을 놓자(放下手了) 완연히 전과 같으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바로 알아야 한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