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다의 천파만파(千波萬波) 그 어느 것도 바다 아님이 없다.
  2. 법문(法門) : 작은 파도 하나가 이미 저 광대한 바다와 한 몸이다.
  3. 공안[公案] : 목전의 여러 가지가 여러 가지가 아니요, 여러 가지 아닌 것이 곧 여러 가지이다.
  4. 게송(揭頌) : 이 보고 들음이 보고 들음인 채로 보고 들음이 아니니······
 
     
   
     
   

통상 우리가 무엇을 알아보거나 인식하기 위해서는, 거기엔 반드시 관찰의 주체와 관찰 대상이 있게 마련이오. 본래는 참된 하나뿐인데, 그 전체로부터 관찰의 주체와 관찰대상을 따로 따로 떼어내어 그 사이에서 이루지는 것을 인식작용이라고 말하는 거요. 이렇게 무언가를 특정하여 알아보기 위해 정신을 팔 때에는, 무엇이 그렇게 하게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 국소적 관찰에만 집착을 하기 때문에 그러한 관찰은 절대로 온전할 수가 없는 거요.


모두가 참된 하나뿐인데 인간은 늘 관찰자인 '나'라는 허상을 세워 자기를 그것에 소속시켜버려요. 그러면 조그마한 새로운 중심이 생기고, 그 중심을 통해 관찰대상을 보게 되는 거요.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쌓아온 모든 지식이나 상식이라는 것이 그 조그마한 '나'라고 하는 중심이 생기면서, 그것을 통해 축적해 온 경험들이오. 따라서 보는 방식도 전부 이 '나'라고 하는 필터를 통해 대상을 걸러서 보게 되고, 결국 엉뚱하게 정해서 붙들고 있는 '나'라는 허상이 생겨, 보는 것이 전부 그를 통해 왜곡되고 뒤틀려버리는 거요. 마음이 본래의 조화로움을 잃는다 소리요. 있는 그대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마음으로 보는, 그런 눈을 잃어버린 거요.


관찰의 주체도 관찰의 대상도 모두 참된 하나로부터 나툰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그 참된 하나가 여러분의 본래 마음이오. 진실이 이러하니, 거기엔 그 어떤 시시비비도 붙을 여지가 없는 거요. 울퉁불퉁한 모든 천차만별이 전부 내 마음이 변해서 나타난 이런 모습 저런 모습에 불과한 것이니, 작고 보잘 것 없이 생긴 파도도, 집채만큼 크고 멋있게 생긴 파도도 그게 다 바다의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인 거요.




경전에 보면 원융(圓融) 과 행포(行布) 라는 말이 있소. 우리의 본 성품은 이미 온 누리에 두루해서 미치지 않는 데가 없으니, 그것이 원융이오. · · · · · · 해변가에 허옇게 부딪히는 볼품 없는 물거품이, 초라하고 꾀죄죄한 자신의 모양새에 늘 주눅들어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곧 바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소. 그 보잘것없는 물거품 하나가, 곧 그대로 바다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바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동시에 다 미치는 거요. 바다 전체에 두루 삼투하기 위해서 따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오. 새삼스럽게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본래 하나였던 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나로 알고 살아왔던 이 고깃덩어리가 '참 나'를 깨닫는 순간, '나'는 이미 온 누리에 두루해서 원융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거요.


행포라 함은 이 현상계의 모든 차별적인 작용을 이르는 말이오. 미혹한 중생이 앓고 있는 가장 큰 병중의 하나는, 천태만상의 모든 심리적, 물리적 작용들이 모두 그 작용의 주체가 있다고 여긴다는 거요. 그렇게 주재자(主宰者)를 세우는 것, 그게 제일 큰 병이오. 낱낱의 파도는 제 스스로 그런 모양을 갖추고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그런 개별적인 능력이 있는 게 아니오. 바다 그 자체는 다만 인연을 따를 뿐, 그 스스로는 어떠한 작용도 없소. 모든 작용과 움직임들은 전부 인연에 속하는 것뿐이지 그 작용을 일으키는 주체는 없는 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보고 듣고 행하는 모든 작용은 그 참된 하나의 성품이 중생들 각자가 익힌 업에 응해주는 것뿐이지, 본 성품 그 자체는 티끌 하나 까딱한 조짐도 없는 거요. 천파만파가 아무리 그 모양이 제각각이라도 그 어느 것 하나도 바다 아님이 없듯이, 중생의 본 성품도 그와 같아서 이미 온 누리에 두루해서 남음도 없고 모자람도 없고, 보탤 것도 덜 것도 없이 그대로 온전한 거요.


숱한 차별적인 작용인 행포는 본체의 현상이오. 거울의 그림자 같은 거요. 거울 속에는 미리 준비된 그 어떤 작용도 없어서, 그 속에는 온갖 차별 현상이 다 나타나지만, 거울은 절대로 그 현상을 무너뜨리는 일이 없소. 현상인 채로 바로 본체인, 그것이 거울의 모습이오. · · · · · · 마찬가지로 행포도 원융을 훼손하는 일이 없소. 거울에 비친 그림자가, 거울을 훼손하는 경우가 없듯이 말이오. 거울이 빨간색을 비춘다고 거울이 빨갛게 물드는 경우는 없지 않소? 거울의 항상하고 변하지 않는 그 본래 성품은 어떤 그림자가 비춰도 늘 그대로라 소리요.


이 무변광대한 허공 가운데서 지금 이 순간에도 온갖 차별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허공이 간섭하는 일이 없고, 마찬가지로 인간이 별의 별 온갖 차별을 다 지어도 허공이 어떻게 되는 일이 없는 것과 같은 거요. · · · · · · 그러니 따로따로인 채로 본래 원만한 하나요. 하나도 아니고 따로도 아니니, 이것이 본체인 채로 현상이고, 현상인 채로 본체인 이치요.




그러니 새로 갈고 닦아 부처를 이루고자 하는 것은, 눈앞의 현상이 다 인줄 알고 있을 때 하던 버릇이오. 지금 있는 이대로인 채로 본체를 여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지금 이대로 모두 부처 몸이오. 끊임없이 옳고 그른 것, 높고 낮은 것 등등 온갖 차별법에 휩싸여 있어도, 한 찰나 지혜가 밝아져 그 어느 모습도 부처의 모습 아님이 없음을 잊지 않는다면, 그의 나라는 늘 안연(晏然)하지 않겠소?


조그마한 물방울이 한 찰나 깨닫는 순간, 제 스스로가 이미 그 광대한 바다와 하나이듯이, 물방울이 새삼스레 바다가 되기 위해 새로운 노력과 시간을 들일 일이 없는 거요. 만약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열심히 갈고 닦아서 제 아무리 훌륭한 결과에 도달했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캄캄한 밤이오.


그저 시절과 인연 따라서 때와 장소에 따라서,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고, 그 무엇에도 거리낌 없이 인연에 맡겨 자재하시오. 거기에 행위의 주체가 있으면 늘 뒤뚱뒤뚱 할 수밖에 없소. 삶의 주체가 있으면, "이러면 안 되는데, 저래야 되는데", "이렇게 하는 게 이로울까? 저렇게 하는 게 이로울까?" · · · · · · '나'라는 중심이 있으면 늘 그런 선택이 문제가 되는 거요.




무대에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꼭두각시는 그를 조작하는 자에 의해 움직일 뿐, 제 스스로의 능력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오. '살리어지고 있다'는 말이 그래서 하는 소리요. 그런데 전부 '나'라는 주재를 세우기 때문에, '나'와 '내 것'이 생기고, '나'와 남을 비교하게 되고,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이 있고, 주장해야 할 것이 있고, · · · · · · 결국 그로 인해 끊임없는 대립과 충돌과 갈등이 생겨 지금 이렇게 고달픈 거요.


'나', '내 것', 그런 건 본래 없소. 다만 하나의 참된 성품을 머금고 있을 뿐, 각각 개별적인 낱낱의 성품은 없소. 그러니 어느 게 높다 할 것도 없고 어느 게 낮다 할 것도 없는 거요. 이 진실을 아는 사람은 그 참된 하나인 본향으로 돌아가 좌정하게 되니, 의젓하고 당당하기가 임금 같고, 고요하고 인자하기가 성자 같아서, 일체만법이 일체만법이 아니고, 그 모두가 '내'가 짓는바 한갓 업의 그림자임을 환히 아니, 그 무엇에도 휘둘리는 일이 없는 거요.


그저 그 마음의 참됨에 맡겨 흐름이 있을 뿐이오. 그저 삶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소리요.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나'의 체험이라고 간직해 기억하는 법도 없고, 앞으로 닥쳐올 일에 대해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할 일도 없소. · · · · · · 앞이 끊어지고 뒤가 끊어지고 항상 그때그때의 그 삶이 온전히 꽃피게 하시오. 완전 연소(燃燒)하게 하시오, 전혀 자취가 없이. 어떤 경험도 어떤 체험도 반복되는 법이 없이, 매 순간 새로운 삶, 그것이 삶의 아름다움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