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천 가지 법문이 모두 마음으로 돌아가고 · · · · · ·
  2. 법문(法門) : 미(迷)해도 깨달아도 그 모두가 한 성품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3. 공안(公案) : 지금 있는 이대로의 온갖 법이 바로 부처의 길이다.
  4. 게송(揭頌) : '있고 없음'은 동일한 체성이요· · · · · ·
 
     
   
     
   

지금의 산란하고 요동치는 마음을 갈고 닦아 마침내 그 어떤 외부 자극에도 미동도 않는 여여한 마음자리를 얻는 것. · · · · · · 수천만 년 동안 인간의 삶을 온통 지배하고 있는 생사법(生死法) 속에서 익힌 업식(業識)이 워낙 뿌리깊고 골수에 사무친 지라, 부처님 가르침에 뜻을 두고 오랫동안 수행과 심지어 고행도 마다 않고 오직 깨달음을 위해 애쓰는 대부분의 불자(佛子)들에게조차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바램이요, 목표로 여겨진다.


고불(古佛)의 법이 본래 생사법이 아니라는 말씀도 아랑곳 않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그 마음 바탕에는 예외 없이 생사법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자신이 생사법으로써 진리를 구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애써 공부한 보람으로 산란한 마음을 여의고 여여한 마음을 얻었다 한들, 얻은 것은 잃고, 이룬 것은 허물어지는 게 바로 범부가 빠져있는 생사법 아니겠는가?




산란함이 됐건, 여여함이 됐건, 모든 개별적 사건과 개별적 사물들이 저마다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철저한 환상이다. 해탈이니 속박이니, 깨달음이니 미혹함이니 하는 그러한 추상적 개념들이 마치 틀림없는 실상(實相)인냥 여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범부의 망상인 것이다.


오직 마음뿐이라, 그게 무엇이건 간에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들은 전부 제 마음이 변하여 나툰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치 크고 작은 온갖 형상의 물결들이 전부 한 물에 의지하고 있음과 다르지 않다. 산란한 마음을 여여한 마음으로 바꾸겠다는 것은 결국 이 물결을 저 물결로 바꾼다는 것이니, 이 보다 더 부질없는 짓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있는 그대로의 것이 진리이지, 지금의 것을 바람직한 다른 어떤 것으로 바꾼 다음에야 진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대로가 전부 한 마음의 다른 모습이요, 한 마음의 다른 이름일 뿐인 것이다. 바다의 천파 만파중에 그 어느 파도가 물 아닌 것이 있겠는가? 그저 생사법에 의해 길들여진 뿌리깊은 여습 때문에 늘 뭔가 더하고 혹은 제하고 해서 보다 나은, 지금과는 다른 그 어떤 경지로 향하려 하는 그것이 범부의 미혹인 것이다.




경(經)에서 이르기를, · · · · · ·


『삼계는 허망하여 하나의 망심으로부터 변화했을 뿐이다. 따라서 삼계 안에서는 한 법도 제 마음에서 나지 않은 것이 없나니,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고 분별하면서 조작하는 것은 마치 요술로 만물을 변화시키는 것 같다.

즉, 나타남이 없는 성품(心性은 本來 生滅 去來가 없다)이 마치 저 바깥에서 나타나는 것 같지만 이 모두가 오직 자기 마음에서 생길 뿐인 것이다. 뒤바뀐 사람들은 이것을 집착하여 밖의 경계로 삼고, 매양 이 경계를 따르면서, 곱거나 미운 자기 분수(곱고 미운 것은 自業의 分別이다)를 요별(了別)하다가 겨우 좋거나 싫은 감정이 생기면 문득 진로(塵勞, 煩惱)의 자취를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번뇌의 소굴을 부수고 생사의 뿌리를 끊으려면 다만 안으로 한 생각을 관하여 남(生)이 없음을 깨칠 뿐이다. 그러면 허공꽃인 삼계는 마치 바람에 연기가 흩날리듯 사라질 것이며, 환각의 그림자인 육진(六塵)은 마치 끓는 물에 눈(雪) 한 송이 뿌린 듯이 소멸될 것이니, 휑하고 끝이 없어서 오직 하나의 진심(眞心)일 뿐이리라.

다만 망심은 남이 없음(妄心無生)을 분명히 알뿐이니, 이것이 곧 진심(眞心)은 움직이지 않음(眞心不動)의 도리인 것이다. 이 움직이지 않는 것(動·靜의 包攝이 아님) 이외에는 다시는 가는(微細한) 터럭만큼의 법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또한 사조(四祖) 도신(道信)대사가 이르기를, · · · · · ·


『백천 가지 법문이 모두 마음으로 돌아가고, 항하사와 같이 많은 묘한 공덕이 모두 마음의 근원에 있다. 계정혜(戒定慧), 해탈법문(解脫法門)과 온갖 신통변화가 모두 구족하게 그대 마음을 여의지 않았으며, 온갖 번뇌와 업장(業障)이 본래 공적(空寂)하고, 온갖 인과(因果)가 모두 꿈과 같다.

삼계(三界)를 벗어날 것도 없고, 보리심(菩提心)을 구할 것도 없다.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 성품과 형상에서 평등하며, 대도(大道)는 비고 드넓어서 생각과 걱정이 몽땅 끊어졌다. 이와 같은 법을 지금 그대는 얻었다. 조금도 모자람이 없으니, 부처와 무엇이 다르랴? 다시는 다른 법이 없으니, 그대는 그저 마음대로 자유로이 하라.

관·행(觀行)을 쌓지도 말고, 마음을 맑히지도 말며, 탐욕과 성냄을 일으키지도 말고, 근심도 걱정도 하지 말라. 그저 탕탕(蕩蕩)하게 걸림없이 마음대로 종횡하라. 선(善)을 짓지도 말고, 악(惡)을 짓지도 말라. 행주좌와(行住坐臥) 간에, 보는 것, 만나는 일, 모두가 부처의 묘용(妙用)인지라, 쾌락하여 근심이 없나니, 그러므로 부처라 한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