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재자(主宰者)는 없다
  2. 법문(法門) : 인연(因緣)따라 나는 것은 자체의 성품이 없다.
  3. 공안(公案) : 진성연기(眞性緣起)
  4. 게송(揭頌) : 모든 법은 체성도 작용도 없어서,...
 
     
   
     
   

우리한테 지금 가장 곤란한 문제, 범부들이 가장 넘기 어려운 준령은 무엇일까요? 소위 유무(有無),... 있고, 없는 이 존재론을 극복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준령입니다. 모든 존재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철히 사무치기 전에는 한 걸음도 옮겨 놓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여기 모인 사람들도 입만 벌렸다하면 모든 존재가 존재가 아니라고 말들 합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물질이 곧 허공이고 허공이 곧 물질이고 물질이 허공과 다르지 않고 허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다고 말로는 잘 외웁니다. 그러나 그 말이 뭐를 가리키는가 하는 그 참 뜻을 그야말로 완전히 마음 바닥을 꿰뚫어 사무치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게 확철하기 전에는, 이곳에 와서 법문을 그야말로 몇 아승지겁 듣는다고 해도 전혀 공덕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존재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거나, 많은 노력을 들여서 터득되는 게 아니에요.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밑에서 새벽 별을 보고 깨달으셨다고 했는데, 그 때 과연 부처님은 뭐를 깨달으셨을까요? 깨달은 다음에는 새벽 별이 뭐로 보였을까요? 깨달은 다음에는 별이 별이 아니라고 했어요. 새벽 별을 보고 깨달았는데 깨달은 다음에는 별이 별이 아니다,... 그게 무슨 말일까요?

일체 존재는 그 자체의 성품이 없어요. 모두가 인연이 화합해서, 그 뭔가의 구성 요소들이 어울러서 어떤 형상, 형체를 나툰 겁니다. 그 자체의 성품이 없다 하는 소리예요. 그게 바로 연기설(緣起說)이요, 인연생기(因緣生起)라는 말의 뜻입니다.
그것은 바로 의타기성(依他起性),... 의지해서 생기는 성품이라는 얘깁니다. 이 세상 일체 존재가 그 뭔가 타에 의지해서 생겨요. 타에 의지해서 생기는 거는 그 자체의 성품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하는 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인연생기와 의타기성,...

부처님께서 “일체 만법은 인연화합으로 생겨나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어요. 일체 만법이 인연화합으로 생겨난다는 말은 비교적 우리 중생들의 소견하고 잘 들어맞아요. 우리 두 눈으로 보니까 모든 것이 인연화합으로 생겨나거든,... 그런데 지금까지 줄곧 인연법을 말씀하시던 부처님께서 능가경에서 뭐라고 그러셨는가?

“일체 만법은 화합하는 법이 없느니라”,... 이 말은 금강경(金剛經)의 화법을 빌린다면, “화합이 화합이 아니고 다만 그 이름이 화합이니라,... 아무 것도 화합하는 것이 없고, 화합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없느니라,... 이 세상에 화합하는 것도 없거니와 흩어지는 것도 없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인연이 인연이 아니고, 화합이 화합이 아니고, 흩어짐이 흩어짐이 아닌 줄로 확연히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연기설을 말씀하시지 않고 성기설(性起設)을 말씀하셨습니다. 연기설의 ‘인연'이라는 것은, 모든 존재를 실체로 인정해서 즉, 실체가 존재한다는 기초 위에서 방편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존재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면, 존재가 존재가 아닌데, 그것을 편의상 무(無)라고 표현한다면, 무(無)가 화합한 것을 어떻게 화합이라 하겠어요? 화합은 화합인데 빈 말뿐인 화합이라...그 말씀입니다.

자, 그럼 뭔가? 소위 연기설이라 하는 게, 일체 존재의 실체성을 부정하기 위해서 세운 논리인데, 일체 존재가 부정되고 났더니 이 연기설 자체도 역시 부정되어버린 것입니다. 연기설이라는 건 인연 따라 생긴다는 것을 논리의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인연 따라 생기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인연이 인연이 아니고 따라서 생기는 게 생기는 게 아니면, 연기설에 의해서 연기설 자체가 부정된 겁니다. 알아듣습니까, 무슨 말인지? 그래서 성기설(性起說)을 내놓은 겁니다.

그러면 성기설(性起說)이라는 게 뭔가?... 우선 ‘본 성품'을 봅시다. 이건 일체 만유의 본질을 일컬어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러면 뭐가 성품인가? 일체 만유의 본질은, 성품 없는 것이 성품이다 이겁니다. 무성(無性)이라,... 성품이 없어요. 결국 성기설이라는 것은, 이 연기설의 인연 따라 생긴다 하는 그런 논리적인 과정을 완전히 넘어서서 ‘성품' 이것만이 유일한 실제요, 이 성품을 바탕으로 해서 생겨난 것은, 생겨난 것 같은데 실제로는 하나도 생겨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거요. 아까 얘기했던 인연화합으로 된 것은 그 자체의 실체성이 없다는 말은, 사실은 참 어쩔 수 없어서 폈던 궁색한 논리에 불과한 거요. 그러나 그것도 영특한 사람들은 금방 알아들었을 겁니다.

마침내 이쯤 되고 보니, 일체의 인연이 인연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졌어요. 인연이 다 빈 거요. 원인이 다 빈 거요. 뭐가 원인이 됩니까? 원인이 그게 뭐가 됐건 전부 인연화합으로 된 거 아니요? 인연화합으로 된 거는 존재가 존재가 아니요. 그 자체의 실체성이 없는 거요. 그 자체의 실체성이 없다는 것은,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는 뜻이요. 그 이름도 형상도 빈 거요. 허깨비 같은 거라 하는 소리입니다.

인과관계가 전부 빈 거요. 이걸 바꿔 얘기하면 이제 아무 것도 그대에게 원인이 되어주지 않는다...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원인 결과가 다 빈 건 줄로 알아서, 억지놀음 하는 법이 없고, 그저 시절과 인연 따라 물 흐르듯 살 뿐, 목마르면 물 마시고, 더우면 덥다 그러고, 추우면 춥다 그러고,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잘 뿐이요.

자, 그렇다면 일체 만법이 본래 근본이 빈 거니까, 만법이 본래 얻을 게 없겠죠? 얻을 것도 버릴 것도 없는데, 여러분 왜 깨닫고 깨닫지 못하고를 걱정합니까? 여러분이 볼 때는 높은 법, 큰 법을 얻어야 깨닫는 거 아니요? 여러분, 범부법하고 성인법하고 어느 것을 가질래요?... 범부법도 성인법도 여기서 이미 다 녹아나버린 겁니다. 알아듣겠습니까? 그런데 아직도 깨닫고 깨닫지 못하고를 걱정합니까?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은 지금 있는 이대로인 채로 하나도 보탤 것도 덜 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연히 알게 됩니다.
우리가 뭔가를 끊임없이 얻어서, 구해서, 보태서 보다 높아지고 위대해지려고 하는 거는, 아직도 과거에, 모든 존재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때에, 일체 만법의 근본이 빈 거라는 걸 알지 못했을 때에, 그래서 끊임없이 보다 낫고 보다 크고 보다 훌륭한 거를 얻어서 나한테 보탬이 되게 해 가지고, 나를 보다 고상하게 위대하게 하려고 했던, 그 전의 뒤집힌 소견으로 헐떡일 때의 습관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지금 일체가 밝혀지고 나니, 지금 있는 이대로인 채로 하나도 모자라는 게 없는 거예요. 그 와중에도 뭔가 지금 모자라는 것처럼, 부족한 것처럼 늘 불평 불만을 하고 있으니,... 그건 전부다 아직도 눈을 너무 부릅떠서 헛것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요. 알아듣습니까, 무슨 말인지? 있는 그대로 원만구족하고, 하나도 모자람이 없으니 이 지경에 오면, 모든 원인 결과가 다 빈 거여서, 따로 애쓸 것도 노력할 것도 없다 이겁니다.

어떤 걸 깨닫는다는 게 뭡니까? 그것 역시 알음알이 수준을 벗어나질 못하는 거요. 뭔가 깨닫는다 하면, 벌써 깨닫고 깨닫지 못하고 둘로 갈라져요.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깨닫지 못했는데 지금 깨닫는 거요. 진정한 깨달음이란 그런 거 아니요. 본래 깨달음이요. 본래 깨달음이라면 깨달을 거 없잖아요? 안다는 것도 마찬가지요. 보는 것, 듣는 것 다 마찬가지요. 일체 존재가 존재가 아니면, 본 바가 본 바가 아니죠? 보기는 봤는데 아무 것도 본 게 없는 겁니다. 듣기는 들었는데 하나도 들은 게 없는 거예요. ‘소리'라 하는 거요, 소리가 만약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면, 소리를 일으킬 수 있는 어떤 원인과 조건을 기대함이 없이 스스로 존재해야 되겠죠? 그렇지만 빛깔이 됐건 소리가 됐건 전부다 타에 의지해 존재하는 거요. 인연 따라 있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닌 겁니다.

그러면 이제 그 결과는 뭘까요? 이른바 무생법인(無生法忍)이요. 일체가 남이 없는 거요. 나는 게 나는 게 아니고, 생기는 게 생기는 게 아니고, 일어나는 게 일어나는 게 아닌 거예요. 일체 모든 현상은 빈 것이니, 뭐를 봤다 뭐를 들었다 뭐를 깨달았다 뭐를 알았다 하는 거는 전부 헛소리인 거요.

여러분,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거든, 우선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이 실제 체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됩니다. 자,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게 실제적인 체험이 아니라 하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내 하나 질문을 할게요. 실제적인 체험이 아니면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은 어떤 경우가 있을까 생각해 보세요... 실제적인 체험이 아니면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은 어떤 경우가 있냐고?... 꿈 아니야, 꿈? 그거 밖에 없겠지요?... 근데 문제는, 우리 범부들이 의심할 여지없이 실제적인 체험인 줄 알고 있는, 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이 전부 꿈과 하나도 다르질 않다는 거요.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거를 실제적인 체험인 줄로 아는 사람은 도(道)를 공부하고 있는 게 아니고, 진리를 공부하고 있는 게 아니고, 세속법을 공부하고 있는 거요. 세속법은 생멸법이고 아구다툼이야. 그러니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이 사실적인 체험인 줄로 아는 자 하고는 더불어 도를 논하지 말라는 소리가 있는 거요.

여러분 이 말이 얼마나 엄청난 소린가 하는 그 말의 참뜻을 음미해야 합니다. 다시 얘기할까요?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이 사실적인 체험인 줄로 아는 자하고는 더불어 도를 논하지 말라고 했어. 그런데 거두절미하고, 지금 여러분의 관심사는 뭐요?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 이외에 관심이 있어요?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게 전혀 허망한 것인 줄로 알아서, 전혀 끄달리지 않고 물들지 않게 되면 곧 참 성품이 드러납니다. 그러니 지금 현재,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이것 때문에, 견문각지(見聞覺知) 때문에, 지금 현재 범부 신세를 면하지 못했는데, 알고 봤더니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게 말짱 꿈 같은 거네? 그러면 전혀 의지할 것 없죠?

자, 그러면 여기서 범부하고 성인의 차이가 어디서 생기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게 실제인 줄 알고, 진실인 줄 알고 여기에 홀리면 이건 꼼짝 할 수가 없어요.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모든 게 전혀 허망한 건 줄로 알아서 거기에 끄달리지 않았을 때 참된 진리가 드러나는 거요. 거룩함이 거기 있다는 소리입니다.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그 가운데에는 수많은 차별이 있어요. 높고 낮은 수많은 차별이 있고, 많고 적고, 넓고 좁고, 앞과 뒤, 먼저와 나중, 시작과 끝 이런 게 있다고.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일체의 알음알이를 넘어선 그 자리에는, 앞과 뒤도 없고 먼저와 나중도 없고 과거 현재 미래가 몽땅 빈 말일 뿐이고 시간 공간을 넘어서서 일체의 알음알이가 아득히 미치지 못해요. 그러면서 그 근본에 의지해서 일체 만법이 거침없이 나긴 나는데 어떻게 나는가? 마치 물 속의 달 그림자처럼 나는 거요...내 말뜻 이해합니까?

견문각지가 견문각지가 아닌 줄로 알아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데에 전혀 끄달리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지혜가 반야지혜(般若智慧)요. 그것은 그 본래의 성품이 저절로 환히 밝을 뿐이지, 봐도 봄이 없고, 들어도 들음이 없는 그런 확연한 그 무엇이요. 근데 지금 우리는 이 반야지혜를 등지고 허망한 지혜를 따라가는 거요. 왜 허망하다 그러는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어때요? 있었다 없었다 하죠? 왔다 갔다 하고, 들었다 놨다 하죠? 우리는 이렇게 끊임없이 생멸법을 좇고 있지만, 그러나 사실은 어떤가? 생멸하기는 생멸하는데 실제로 생멸하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생멸법을 떠나서 따로 불생불멸법이 있는 줄 안다는 거요. 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고 하는 게, 생멸법을 여의고 무생법인이 생긴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멸이 생멸인 채로, 생멸이 아닌 줄로 확철하게 꿰뚫어 보는 사람은, 지금 이대로인 채로 무생법인을 얻는 거요. 알아듣겠습니까? 그러니까 생멸이 생멸이 아닌 줄 아는 사람은, 그 전의 습관 때문에 생멸법을 문득 따라가다가도, 지금 법문 들었던 생각 잊어버리지 않으면, 그냥 흘려 보내 버린다고.

오직 자기 자신이 투철해서 스스로의 마음을 깨치는 길 이외의 다른 길은 없어요. 오직 나 자신만이 나를 구하고, 나 자신이 나의 스승이고, 내 자신이 나의 제자고, 달리 마음 밖에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지금까지 밝힌 게 모두 그거요. 모든 존재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 영롱한 참마음만이 유일한 실제고, 그 마음이 지어낸 모든 이름, 그 마음이 알아차린 모든 형상,... 그 이름과 형상은 전부 다 허망한 거요. 마치 물에 비친 달 그림자 같은 거요. 이해합니까?

그 어떤 것도 인연화합 아닌 게 없는데, 마침내 오늘은 그 인연화합조차도 인연화합이 아니라 했어요. 일체 화합하고 흩어지고,... 또 생기고 사라지는 것은 모두 허깨비라 이겁니다. 허공 꽃이 열 개 모이건 백 개 모이건, 또 허공 꽃이 모두 흩어지건 허공 꽃이 하나도 없건, 거기에는 털끝 하나 움직인 조짐도 없는 겁니다. 허공 꽃이라는 건 전부 빈 이름만 있기 때문이요.
그렇다면 생긴다고 하는 건 뭘 말하는 걸까요?... 생(生)한다는 건 마음이 생(生)한다는 거요. 심생종종법생(心生種種法生)이라고 했어요. 심생(心生)은 심생(心生)인데,... 마음이 나기는 났는데, 마음 바탕이 본래 빈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나기는 났는데 하나도 난 게 없어. 마음을 내기는 냈는데 하나도 낸 게 없단 말이요.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허망한 거요. 본래 오는 데도 가는 데도 없는 거요. 마음의 근본이 비었기 때문에, 마음이 내기는 내도 하나도 낸 것이 없어요. 그러니까 ‘무심(無心)'고, ‘무경(無境)'인 거요. 그러니 ‘마음이 한 생각 내면 일체 만법이 난다' 하는 것도 빈 거짓말이네? 마음이 내서 일체 만법이 나기는 났는데, 빈 말뿐인 만법이고, 빈 말뿐인 만법이 난 거요.

모든 게 문제가 문제가 아니고, 일체가 전부 그야말로 이글거리는 용광로의 눈 한 송이 격이요. 이 이치를 알기는 그래도 비교적 쉬워요. 그러나 이 이치를 잊어버리지 않고 지속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