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재자(主宰者)는 없다
  2. 법문(法門) : 인연(因緣)따라 나는 것은 자체의 성품이 없다.
  3. 공안(公案) : 진성연기(眞性緣起)
  4. 게송(揭頌) : 모든 법은 체성도 작용도 없어서,...
 
     
   
     
    복잡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중생들이 실망감이나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원인을 살펴보면, 거의 한 가지 요인으로 집약됨을 알 수 있다. 즉, 자신이 들인 노력에 비해 그에 상응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얻지 못하였을 때 중생들은 예외 없이 실망하고 좌절한다. 그리고 이러한 좌절감은 갈등이니, 고뇌니, 번뇌니 하는 따위의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그 정도를 더해간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일반인들만의 경우로 국한되지 않고, 부처님법을 공부하면서 늘 인연생기(因緣生起)나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입에 달고 사는 불자(佛子)에게도 예외가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법(佛法)에 입문하여 거의 처음에 -그만큼 중요한- 대하는 법문이 인연생기, 즉 연기법(緣起法)임에도 불구하고 그 참뜻을 깊이 참구하는 수행자들은 많지 않다. 일체만법은 오직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 결코 거기에는 <짓는 자>도 <받는 자>도, 어떠한 주재자(主宰者)도 없다는 연기법의 요체를 체달한다면, 어찌 거기에 노력한 ‘나'가 있고 그 노력의 결과로 덕을 보는 ‘나'가 있을 수 있겠는가?
나무가 있어서 그림자가 있고, 소리가 있어서 메아리가 있듯이, 그 무엇인가에 의지해서 나는 것은 말 그대로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은, 실체가 없는 것임을 간파하여야 한다. 결국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없는 것이 진실이라면, 그 결과라는 것은 그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실체가 없는 것임이 분명한 것이다. 이처럼 결과가 허망한 것이라면 원인인들 어찌 참일 수 있겠으며, 이쯤 되면 인과법마저 비었다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전혀 복잡하거나 궤변적인 이치가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법은 인연으로 말미암지 않고 나는 법은 하나도 없으므로, 당연히 모든 법은 체성(體性)이 빈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모든 법이 꿈과 같고 허깨비 같은 것이라면, 그런 가운데 ‘좌절'은 무엇이며, ‘성공'은 무엇이며, 모든 시비득실, 나아가 이 세상 삼라만상이 몽땅 다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이 세상사가 몽땅 내 마음의 거울에 비친 그림자와 같은 것임을 분명히 깨달아 살펴야 한다. 비록 그 겉모양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듯이 보이기는 해도, 그것은 다만 인연에 따른 외양이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결코 움직이고 변하고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꿰뚫어봐야 하는 것이다. 마치 저 바다가 종일토록 물결쳐도 바다 자체는 전혀 증감이 없듯이,...

어느 날 가섭(迦葉)이 문수(文殊)의 위대한 설법의 공덕을 찬탄하여 마지않자, 문수가 가섭에게 물었다.
『가섭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산하대지는 과연 누가 만들었으며, 이 세계는 또한 어디서 났습니까?』 하였다.
이에 가섭이 대답하기를,···
『문수사리여, 모든 세계는 물거품처럼 이루어졌으며, 중생의 <부사의한 ‘업의 인연'>(不 思議業緣)으로 났습니다. 』라고 했다.
문수가 이 말을 받아 부연(敷衍)하여 설명하기를,···
『모든 법도 역시 ‘부사의한 업의 인연'으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일에 전혀 공력 (功力)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온갖 법은 모두 인연에 속할 뿐이어서 주재(主宰)가 없으며, 다만 뜻을 따라서(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이치를 알 수 있으면 모든 하는 일이 어렵지 않으리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