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음에 능·소(能所)의 자취가 없으면 곧 정각(正覺)이다.
  2. 법문(法門) : 관찰자와 관찰대상은 둘이 아니다.
  3. 공안(公案) : 관계치 말라!
  4. 게송(揭頌) : 마음과 경계는 허망하여 서로가 알지 못한다.
 
     
   
     
   

 그 원인이 병 때문이었건 혹은 사고 때문이었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지하게 마음 공부를 지어 가는 사람에게는 '실제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철저하게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아플 때가 공부하기 가장 좋은 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흔히 고통을 회피하거나 모면하려 하지말고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것을 비난하거나 혹은 정당화하는 일 없이 그저 바라만 보게 될 때,· · · · · · · · · · · · 고통과는 전혀 별개였던 '나'와 '나'를 괴롭히기만 하던 고통과의 간격이 점점 줄어 그 경계가 모호해 지고,· · · · · · · · · · · · 궁극에 가서는 마침내 고통만 남게 될 때.

 이때 '나'는 괴로워하고 있는 관찰자로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고통의 일부분이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내'가 그 고통이 되어 그것과 함께 머물며 그것을 내차려고도 부정하려고도 하지 않게 되었을 때.· · · · · · · · · · · · '나'는 바로 그 고통 자체인 것이다.· · · · · · · · · · · · 이때는 이미 그 이름만 고통일 뿐, '내'가 곧 고통 자체라면· · · · · · · · · · · · 그 고통이 무서워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생각은 이미 사라져있을 것이다.· · · · · · · 아주 미묘하긴 하지만 조금만 주의력이 있고 조금만 진지하다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다.

 이와 같은 아주 작은 일 예(例)에서 알 수 있듯이, 관찰자(能)와 관찰대상(所) 사이에 간격이 없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두려움이나 고통은 없다. 괴로움을 겪는 주체로서의 '나'는 이미 사라져 버린 자리이기 때문에, 거기엔 오직 아픔만 있을 뿐이다. 빈 이름뿐인 아픔.· · · · · · ·



 그것이 물리적 대상이었건 정신적 대상이었건 '내'가 그 어떤 경계를 보고, 그것이 '나'의 바깥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대하지만 않는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 · · · · · · · · · · 이것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묘한 방편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실상이 그러하다. 모두가 한바탕에서 생각만으로 나툰 이런 모습, 저런 모습, '나'라는 모습, 고통이라는 모습일 뿐이다. 생각만 그러할 뿐이니, 거기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주체(能)도 없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체(所)도 없는 것이다.



 모름지기 마음에 능·소(能所)의 자취가 없으면 곧 정각(正覺)이라 했으니, 제대로 된 수행자에게는 주관도 객관도 없는 관찰, 이것이 곧 지관(止觀)이요, 어찌 보면 이것이 마음공부의 올바른 첫걸음을 가늠하게 하는 요체인 것이다.



 화엄경(華嚴經)에 이르기를,· · · · · · ·

 『마음이 모든 두 법을 전혀 생각하거나 헤아리거나 하지 않나니, 다만 항상 법의 둘 없음(法無二)을 요달하나, 모든 법이 둘이랗거니, 둘이 아니랗거니(둘이 아니라고 알아도 역시 客塵의 障碍를 免치 못한다) 하는 등에 필경 집착함이 없다.

 시방(十方)의 일체 세간(世間)이 다 중생의 허망한 생각의 분별로 이루어진 바이므로, '생각 있음'과 '생각 없음'에 다 같이 얻을 바가 없나니(無所得), 모름지기 이와 같이 모든 상(相)을 요달하여야 하느니라』

 또한 이르기를,· · · · · · ·

 『모든 법이 작용이 없고 또 체성(體性)도 없는지라, 그러므로 저 모든 법이 각각 서로 알지 못한다. 물이 흐르고, 불이 타고, 바람이 부는 것은 이 모두가 대지(大地)의 나는 바로되, 저들(물, 불, 바람)이 서로 알지 못함과 같다. 그러므로 경의 게송에 이르기를,· · · · · · ·


  분별하여 육신을 잘 관찰하건대,
  이 가운데 과연 무엇이 '나'인고?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안다면
  저가 곧 '나'의 있고 없음을 알리라.』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