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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에 이르기를· · · · · ·
▲ 일체법이 모두 '한 성품'(一性)임을 아나니,· · · · · · 일체법이 '성품이 없으며'(無性),
가지가지의 성품이 없으며(無種種性), 한량없는 성품이 없으며(無無量性), 숫자로 헤아릴 수 있는 성품이
없고(無可算數性), 수량으로 저울질 할 수 있는 성품이 없으며(無可稱量性),· · · · · ·
'존재하는 것'이 없으며(無色), 모습이 없으며(無相), 이렇듯 하나(一)와 이렇듯 많음(多)을 모두 얻을
수 없도다(不可得).
그러나 결정코 (性品이 없고 얻을 수 없는)이것이 모든 불법(佛法)이며, 이것이 보살법(菩薩法)이고, 이것이
독각법(獨覺法)이며, 성문법(聲聞法)이고, 또한 범부법(凡夫法)이며, 또 이것이 선한 법(善法)이요,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이며, 이것이 바로 세간법(世間法)이요, 출세간법(出世間法)이며, 또한 이것이 과실법(過失法)이요,
무과실법(無過失法)이며, 이것이 유루법(有漏法)이요, 무루법(無漏法)이며, 내지 이것이 곧 유위법(有爲法)이요,
무위법(無爲法)이라는 것을 잘 아노라.
▲ 보살이 교묘한 방편(善巧)으로 설법하고, 열반을 시현(示現)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있는 바 일체의
방편이 다 이것이 심상(心像)으로 세운 것이기는 하나, 그러나 이것은 결코 전도(顚倒)가 아니며, 또한
허광(虛狂)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보살이 일체법이 다 삼세(三世)가 평등하여 여여부동(如如不動)하며, 또한 실제(實際)가 머무름
없음(無住)을 잘 알아서,· · · · · ·
일찍이 한 중생도 이미 교화를 받았거나, '지금에 교화를 받거나, 미래에 교화를 받으리라고 보지 않으며,
또 스스로도 닦을 바가 없어서, 조그만 한 법도 생멸(生滅)을 얻을 것이 없음을 잘 알되,· · · ·
· ·
그러나 보살은 언제나 이 (如如하여 움직임이 없고 머무름이 없는)모든 법에 의하여 모든 소원이 헛되지 않게
하느니라.
▲ 보살이 모든 부처를 친견하고, 그 설한 바 법을 듣고는 큰 환희심을 내되, 제 몸에도 집착하지 않고,
부처 몸(佛身)에도 집착하지 않아서, 여래의 몸이 곧 실(實)도 아니고 허망(虛妄)도 아니며,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며, 성품(性)도 아니고 성품 없음(無性)도 아니며, 존재(色)도 아니고, 존재 아님(無色)도
아니며, 모습(相)도 아니고 모습 없음(無相)도 아니며, 생함(生)도 아니고 멸함(滅)도 아니어서,· ·
· · · ·
실로 도무지 <있는 바가 없음>을 알지만 그러나 또한 모든 있음을 허물지도 않음을 아나니,·
· · · · · 왜냐하면 모든 성(性)과 상(相)으로써 (可타 否타)취착(取着)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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