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법의 성품은 허공성(虛空性)이요, 무생성(無生性)이다.
  2. 법문(法門) : 모든 법의 성품이 비었으니, 이 공(空)이 곧 심성(心性)의 근원이다.
  3. 공안(公案) : 일체법이 모두 '한 성품'(一性)이라, 그 어떤 법도 '나'를 괴롭히는 일이 없다.
  4. 게송(揭頌) : 모든 법은 체성도 작용도 없어서 온갖 것은 서로 알지 못한다.
 
     
   
     
   

 이 세상 만법이 몽땅 한 바탕 위에 찍힌 도장과 같은 거요. 도장이 찍힐 때는 한꺼번에 찍히지만, 읽을 때에는 어떻소?· · · · · · 김 아무개, 이 아무개 하고 한 자, 한 자 순서대로 주워먹듯 읽질 않소? 그처럼 '나'를 포함한 모든 경계가 하나의 참 성품 바탕 위에 한꺼번에 찍힌 건데, 우리가 그것을 보고 인식작용을 일으킬 때에는, 무엇이 어떻고 저떻고, 내가 이렇고 쟤가 저렇고 따로따로 줄줄이 엮어대는 거요. 그러니 순서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 먼저와 나중, 처음과 끝, 이런 시간적인 벌어짐이 생기고, 공간적으로도 한꺼번에 찍혔으니 전부 그 자리가 그 자린데도 멀고 가까운 게 생기는 거요.

 이처럼 모든 걸 관찰자와 관찰 대상으로 나누어, 기왕에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들을 통해서, 마치 한 바탕에 찍힌 도장을 한 자, 한 자 주워 새기듯, 계속 뭔가를 이러쿵저러쿵 더듬는 것이 바로 인간이 유일하게 굴릴 줄 아는 인식작용이오. 그러나 진리가 됐건, 진여가 됐건, 성품이 됐건 그 이름이 무엇이건 간에 바탕은 하나요. 다시 말해, '나'와 '너', 이것과 저것이 본래 한 바탕인데 인식작용 때문에 서로 제 각각 다른 것으로 보이는 거요.· · · · · · 공부하는 수행자가 깨달아야 할 것이 바로 이거요. 관찰자와 관찰대상이 둘이 아니라는 것, 전혀 한 바탕, 한 성품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오.



 일체 만법을 나투는 근본성품을 법성(法性)이라고 하오. 여기서 일체 만법을 나툰다, 드러낸다 혹은 만들어낸다고 말할 때에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만들어내는 주체가 있어서 그 주체가 무엇을 만들어내는 그러한 구조가 아니오.· · · · · · 주체라고 생각되는 법성, 즉 온갖 법의 성품이 비었기 때문이오. 법성공(法性空), 법의 성품이 공이오. 전혀 실체가 없다 소리요.

 그 어떤 것도 반드시 다른 그 무엇인가로 말미암아 있는데, 그 무엇인가를 또 살펴보면 그 또한 무엇인가로 말미암아 되어 있소. 그 무엇인가도 역시 마찬가지고. 이와 같이 계속 그 끝을 파고 들어가면 결국 그 어떤 것도 실체가 없는 거요. 이것은 이미 2500년 전, 붓다가 설파했고 20세기 초반에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에 의해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바요.· · · · · · 법성이 공(空)이오. 이 공이 바로 심성의 근원이요, 여러분 마음의 근원이오. 그래서 한 생각을 낼 때 그 한 생각이 오는 데가 없다고 말하는 거요.

 법성은 일찍이 가고 오는 법이 없고, 새로 생겨나거나 멸하는 법이 없소. 변화하고 움직이는 법이 없이 늘 그대로요. 그런데 늘 그대로인 이 허공성(虛空性)인 법성이 중생들이 짓는 바 그대로 모두 응해주는 거요. 각자가 지은 업에 따라.

 듣기는 들었는데, 그 들은 바는 과거의 업 때문에 그렇게 들렸을 뿐이오. 보기는 봤는데, 그 역시 자신의 업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오. 모두 메아리고 그림자일 뿐,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소리요. 이렇게 여러분이 보고 듣는 대로, 짓는 대로 그 업에 따라 꿈처럼 환처럼 잘도 응해서 나타날 뿐이니, 이쯤 되면 화엄경의 말씀 그대로 아니오? "업으로 말미암아 잘도 나타난다.



 본래 하나의 참된 성품 바다에는 이것과 저것, 범부와 성인, 깨달음과 미(迷)함, 일체의 정신작용과 물리작용, 유정과 무정 그러한 일체의 차별이 없소. 그저 한 성품이 인연 따라, 업 따라 이 모습도 나투고 저 모습도 나툴 뿐이오. 꿈처럼 환처럼.

 하나의 성품바다에는 여러분이 오매불망 그리는 성불(成佛)도, 성불 아님도 없소. 성불하는 것과 성불하지 못하는 것이 범부들 입장에서 보면, 하늘과 땅 차이만큼 아득하지만 두 모습 다 본래 한 법인 거요. 전부 우리 자신이 멋대로 지어서 거룩해 보이고 하찮게 보이는 것이지 그 모두가 한 바탕 위에 찍힌 도장과 같은 거요.

 흔히 도통(道通)한다는 말 좋아들 할 거요. 하지만 이건 새삼스러운 소리가 아니오. 따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갈고 닦아서 도를 통하는 게 아니라, 도(道)는 이미 통해있는 거요. 일체가 본래 한 법이기 때문에 모든 이런 것과 모든 저런 것이 차별 없이 본래 통해있는 거요. 통한다 소리는 대립이 없다는 말이오. 선과 악, 옳음과 그름,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 이러한 대립, 다툼이 없는 것이 도(道)요. 일체 만법이 자체의 성품이 없어서 몽땅 하나의 평등한 법일 뿐이니, 이렇게 일체 만법이 평등으로 돌아가면 그게 도(道)고, 그게 통(通)하는 거요.



 여러분에게 지금 죽음이 임박했다고 가정해 보시오. 그럼 그게 무슨 소리요?· · · · · ·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 집문서, 예금통장, 금붙이, 피붙이, 그런 모든 것이 전부다 허물어진다 소리요. 자기가 의지하고 있던 모든 것(依報)들이 몽땅 허물어지는 거요. 이 의보가 다 허물어지는 것, 그게 곧 두려움이오.

 그러나 하나의 성품바다가 드러난 사람, 참 성품이 드러난 사람한테는 새로 생겨나는 것도 없고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도 없소. 지금 현재 이대로 살면서, 모든 것 다 보고 다 들으면서 일체 존재가 존재인 채로 존재가 아니니, 그 사람에겐 이미 뭐가 잘못 될까봐 두려워하는 그런 일이 없는 거요.· · · · · · 만법이 한 바탕 위에 찍힌 도장과 같은 것이니, 이것과 저것의 구별이 없고, 이것과 저것의 구별이 없으니 만법이 평등하고, 만법이 평등하니 모두가 한 성품인 거요. 이렇게 참 성품이 드러나면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다만 빈 말에 불과한 거요.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살고, '내'가 죽고· · · · · · 이 육신은 인연이 가짜로 어우른 환화공신(幻化空身)이기 때문에 지각(知覺)도 없고 힘도 없는데 전부 '내'가 한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거요.



 모든 것은 다만 인연에 속할 뿐, 도무지 작용하는 자가 없으니 모든 작용은 곧 작용 그대로 고요함이오.· · · · · · 이 몸을 형성하고 있는 구성요소가 무엇이건 간에, 마치 까보면 아무것도 없는 양파와도 같아서, 이 육신을 형성하고 있는 모든 인연 가운데는 보는 기능도 듣는 기능도 아는 기능도 깨닫는 기능도 도무지 없소. 하지만 인연들이 묘하게 모이게 되면,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깨닫기도 하는 모든 신비로운 작용이 일어나는 거요. 그러나 분명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자는 없소.

 모든 것이 그 무엇인가로 말미암아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그 어떤 것도 이게 이것이라고 콕 집어서 지칭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거요. 살(生) 때에 사는 사람이 없고, 죽을 때에 죽는 사람이 없다 소리요.· · · · · · 본래 '함'이란 없소. 만법이 실체가 없으니 도무지 그 무엇이 어떤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는 일은 없는 거요.

 다 보고 다 듣지만, 보는 자도 보는 바도, 듣는 자도 듣는 바도 없는 거요. 업도 짓고 보(報)도 받고 다 하지만, 업을 짓는 놈도 보를 받는 놈도 찾을 수가 없소.· · · · · · 사람이 사람이 아니고 그 이름이 사람일 뿐이요, 인과(因果)가 인과가 아니고 그 이름이 다만 인과일 뿐이니, 인과관계가 확연한 이 세상인 채로 이것이 인과관계가 아니라 소리요.

 만법이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 모든 법의 성품이 비었으니, 유한하고 한정된 인과관계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는 중생 세계가 그대로 그 원 바탕은 허공계라는 소리요. 허공계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고, 허공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중생계의 유한한 모습들을 방해하는 법도 없소. 그러니 인과가 비었다 소리를 듣고 새삼 인과법을 허물어뜨리려 하는 것은 더더욱 어리석은 일이오.



 유마힐 거사가 문수보살한테 물었소.

 "보살은 중생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어떻게 봐야 중생을 올바로 보고 올바로 인도하고 올바로 제도하는 겁니까?" 하니, 문수보살이 말하기를· · · · · ·

 "보살은 중생보기를 마치 요술하는 사람이 요술 속에 나타난 사람 보듯 그렇게 봐야 합니다. 또한 지혜로운 사람이 물 속의 달그림자 보듯 하고, 더운 여름날의 아지랑이 물결 보듯 하고, 마치 거울 속에 나타난 그대 자신의 얼굴 보듯 하고, 전부 그렇게 봐야 그게 참으로 중생을 보는 겁니다." 라고 했다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