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아(自我)를 소멸시킬 방법은 무엇인가?
  2. 법문(法門) : '나 있음'이나 '나 없음'이나 전부 빈 말일 뿐이다.
  3. 공안(公案) : '근본 마음'은 알거나 깨달음으로 말미암지 않는다.
  4. 게송(揭頌) : 도(道)는 승·속(僧俗)을 가리지 않는다.
 
     
   
     
   

△ 대주(大珠) 혜해(慧海) 선사가 처음 마조(馬祖)께 뵈니, 마조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월주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여기 와서 무엇을 구하려는가?』
『불법을 구하려 왔습니다.』
『<자기의 보배 창고>는 던져버리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무엇을 하려는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는데 무슨 불법을 구하는가?』

 대사가 드디어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떤 것이 <혜해(慧海) 자신의 보배 창고>입니까?』하니, 마조가 대답했다.
『지금 나에게 묻는 것이 그대의 보배 창고이다. 온갖 것이 구족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고,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어찌 밖으로 구하려고 하는가?』

 대사가 이 말 끝에 <자기의 근본 마음>은 알거나 깨달음을 말미암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뛸 듯이 기뻐서 절을 하고 사례한 뒤 육 년 동안 시봉을 하였다.




△ 혜해(慧海)에게 법사(法師) 몇 사람이 와서 뵙고 물었다.


『한 가지 묻겠는데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하니, 선사가 대답했다.
『깊은 못에 달 그림자를 마음대로 건져가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맑은 못에 얼굴을 대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부처가 아니고 무엇이랴.』하니, 무리가 모두 멍청했다. 조금 있다가 그 중이 또 물었다.

『스님은 어떤 법으로 사람들을 제접하십니까?』
『나는 어떤 법으로도 사람들을 제접한 일이 없다.』
『선사들은 모두가 이 모양이군.』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사가 도리어 물었다.

『대덕은 어떤 법으로 사람들을 제접하는가?』
『금강반야경을 강의했습니다.』
『몇 번이나 강의했는가?』
『이십 번이나 강의했습니다.』
『그 경은 누가 말한 것인가?』하니, 중이 소리 높이 말하기를,
『선사는 사람을 조롱하는가? 어찌 부처님의 말씀인 줄 모르신단 말이요.』

 이에 대사가 말했다.

『「만약 여래가 설법한 바가 있다고 하면 이것은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니, 이 사람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경을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면 이것은 경을 비방하는 것이다」 대덕은 말해 보라.』하니, 그 중이 대답이 없었다.

 대사가 다시 물었다.

『경에 말하기를,「만약 색(色)으로써 나를 찾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사(邪)된 도를 행하는 자요, 여래를 보지 못한다」고 했으니, 대덕은 말해 보라. 어느 것이 여래인가?』
『제가 그 문제에 대해서는 도리어 미혹했습니다.』
『본래 깨닫지 못했거늘 무엇을 미혹했다 하는가?』

 이에 그 중이 간곡히 청했다.

『스님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하니, 선사가 말했다.
『대덕은 반야경을 이십 번이나 강의했다면서 아직 여래를 모르다니, ― 여래라는 것은 <모든 법의 여실한 이치>라 했는데, 잊었는가?』
『그렇습니다. 그것이 <모든 법의 여실한 이치>입니다.』
『대덕이 그렇다는 것은 그렇지가 않다.』
『경문이 분명히 그렇거늘 어찌 그렇지 않다 하십니까?』
『대덕은 여실한가?』
『네, 그렇습니다.』
『목석(木石)도 여실한가?』
『그렇습니다.』
『대덕이 목석의 여실함과 동일한가?』
『다름이 없습니다.』
『대덕은 목석과 무엇이 다른가?』하니, 중이 대답이 없었다.

 중이 다시 묻기를, · · · · · ·

『어찌 해야 큰 열반을 증득할 수 있겠습니까?』
『<생사의 업>을 짓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것이 생사의 업입니까?』
『큰 열반을 구하는 것이 생사의 업이며, 더러운 것을 버리고 깨끗함을 취하는 것이 생사의 업이며, 얻음과 깨침이 있는 것이 생사의 업이며, 대치문(對治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생사의 업이니라.』
『어찌 해야 벗어나겠습니까?』
『본래 속박된 일이 없으니 해탈을 구할 필요가 없다. 바로 사용하고, 바로 행함이 바로 무등등(無等等)의 경지이다.』 하니, 그 중이 크게 탄복하고 절을 하고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