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물이 세차게 흘러도 흐르는 일이 없다.
  2. 법문(法門) : 시간이 흐른다는 생각은 전적으로 망상이다.
  3. 공안(公案) : 지혜가 세속 따라 차별이 있을지언정 지혜 '자체'는 조그만 시간의 변천도 없다.
  4. 게송(揭頌) : 삼세(三世)에 아무 물건도 없고, 마음도 부처도 모두 없나니 · · · · · ·
 
     
   
     
   

 화엄경에 이르기를· · · · · ·



▲ 삼세의 모든 부처와 일체중생이 몽땅 한가지로 하나의 <옮김이 없는 고요한 체성>(不遷定體)이다.

 '지혜의 시간 없음'에서 본다면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가 다 지금에 처음 발심한 자들과 더불어 한 때에 성불한 것이 되는 것이니, 지혜로 비추면 가히 볼 것이나, 정식(情識)으로 들으면 곧 미혹하리라.
 
 부처의 과위 중에서 행하는 온갖 법칙은 또한 보살과 모든 중생이 다 이 고요한 체성(定體)을 여의지 않아서, 시간에 변천 변역(變遷變易)이 없음을 밝힌 것이니, 곧 '때의 옮김 없음(不遷)'을 밝힘이다.




▲ '찰나제 삼매에 든다'(入刹那際三昧)란, 법의 근원을 다한 것이니, ― 극히 짧은 시간을 찰나라 하며, 고로 찰나의 시간의 모양(相)이 도무지 적멸을 다한, '때 없는 즈음'(無際之際)을 찰나제라 하는 것이다.

 보살의 지위가 다한 자리에는 아직 과보를 바라는 심루(心累)의 무상(無常)함이 남아 있어서, 생상(生相)이 아직도 고요하지 못하므로 오히려 이를 식장(識藏)이라 한다.

 그러나 만약 '짬 없는 지혜'(無間智)로써 마음의 처음 일어나는 것을 깨달아서 그 처음 모양이 없음을 보면(일어나는 마음이 그대로 일어나지 않는 마음이다) 이에 미세한 생각(微細念)마저 멀리 여읜 까닭에 찰나도 또한 없다.

 만약 이에 이르면 '심성의 상주함'(心性常住)을 보아서 곧, 그 이름이 '구경의 깨달음'(究竟覺)이니, 그러므로 이것을 일러서 '모든 부처의 삼매'(諸佛三昧)라 하였다. 그러므로 '처음으로 정각을 이룬다'(始成正覺)고 한 것은 곧, 도솔천(兜率天)에서 내려와서 강신수생(絳神受生)한 것과, 또한 설법하고 열반에 들고 한 것 등이 몽땅 이 시성정각한 찰나제삼매(刹那際三昧)의 때를 여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