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물이 세차게 흘러도 흐르는 일이 없다.
  2. 법문(法門) : 시간이 흐른다는 생각은 전적으로 망상이다.
  3. 공안(公案) : 지혜가 세속 따라 차별이 있을지언정 지혜 '자체'는 조그만 시간의 변천도 없다.
  4. 게송(揭頌) : 삼세(三世)에 아무 물건도 없고, 마음도 부처도 모두 없나니 · · · · · ·
 
     
   
     
   

 마음뿐인 도리를 공부하는 사람은 딴 거 없소. 모든 모습을 그저 허깨비처럼 볼 일이오. 무슨 모습을 보았건 무슨 소리를 들었건, 그동안 전부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은 것에 현혹되어, 온갖 느낌을 말아내고는 그 안에서 온통 생각만으로 사단을 벌였던 거요.


 안으로 아무리 수승(殊勝)한 견해가 생겨났다 해도 생겨난 바가 없고, 바깥으로 아무리 묘한 모습을 보았다 해도 그게 전부 망상이요, 실체가 없는 거요. 안으로 육정(六情)이 고요하고, 밖으로 육진(六塵)이 잠잠하니 본래 아무 일 없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이 이와 같으니, 이쯤 되면 새삼 새로 알아내야 할 것도 없고, 새로 닦고 증득해야 할 것이 도무지 없는 거요. 일체 만법이 성품이 없어서 그게 뭐였건 간에 전부다 꿈같고 환(幻)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투철히 꿰뚫어 보면, 그때 그 사람의 마음은 저절로 쉬게 되는 거요. 몸과 마음을 들볶듯 갈고 닦아, 끓어오르는 생각을 억지로 찍어누른 다음에 쉬어지는 게 아니오.




 일체 만법이 마음뿐이고, 몸과 마음이 전부다 허망해서 자체의 성품이 없소. 자체의 성품이 없으니 모두가 한 성품이요, 모두가 한 성품이니 만법이 평등한 거요. 지금 눈앞의 모든 것들이 전부 구구각각 따로따로 보이지만, 그게 전혀 따로따로가 아니라 소리요. 단지 진리가 인연 따라 여러 천태만상의 모습을 나투는 것일 뿐, 진리는 본래 늘고 줄고 하는 일이 없소.


 눈앞에 펼쳐진 천태만상 낱낱이 겉으로 보기엔 전부 다르게 보이지만, 다른 게 다른 것인 채로 전부다 진리의 나툼 아닌 것이 없으니 그 모두가 몽땅 한 모습이고 한 맛이라 소리요. 그러니 거기엔 새로 태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일이 있을 수 없고, 늘고 줄고 하는 일이 있을 수 없소. 그런 모든 생성과 소멸, 증감(增減)을 보는 것은 인간의 지극히 애매모호한 인식 작용의 결함 때문에 생겨나는 환상이오.· · · · · · 바람이 불어 태산을 불어 쓰러뜨리고 세상을 몽땅 날려 버려도, 그 보다 더한 제아무리 혹독한 변화가 일어난다 해도, 진실의 세계엔 털끝 하나 움직인 자취조차 없는 거요.




 우리는 과거가 원인이 되어 현재의 결과를 낸다고 알고 있소. 결국 지금 현재는 전부 과거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있다 소리요. 그렇다면 지금 뭔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과거의 원인이 틀림없이 있었다는 이야긴데, 문제는 그 원인인 과거가 현재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이오. 그 어떤 과거도 현재로 옮아온 게 없소. 그렇지만 원인이 없었다면 현재도 없을 테니,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니오.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에 오지도 않았다면, 결국 한 물건도 옮긴 게 없다는 이야기요.· · · · · · 이것이 불천(不遷)의 이치요.


 이것은 마치 커다란 전광판에 박힌 조그마한 콩알전구들이 반짝반짝 하게 되면, 우리는 그 전광판에서 뭔가 운동하고 변화하는 형상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요. 모든 전구는 늘 그 자리에 있고 전광판 위에 실제로 움직인 건 아무것도 없소. 그렇지만 우리 눈엔 뭔가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거요. 하지만 진실은 어떻소?· · · · · · 아무리 그 전광판 위에서 천지개벽하는 변화를 보았다 해도, 모든 꼬마전구는 그저 인연 따라 깜빡깜빡 했을 뿐, 늘 제 자리에 있었던 거요.· · · · · · · · · · · · 옮긴 건 아무 것도 없소. 이처럼 겉으로 보기엔 끊임없이 변화, 변천하는 듯 보이나, 일체의 세상 법은 늘 그 자리에 상주(常住)하는 거요.


 이러한 이치를 꿰뚫어 보려면 법안(法眼)이 열려야 하오.· · · · · · 땅이 뒤집히고 바다가 끓어 넘치고, 하늘이 두 쪽이 아니라 천 쪽 만 쪽이 나서 다 허물어진다 해도, 털끝만큼도 이 세상에는 옮기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그 모든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미동도 하질 않소.· · · · · · 근본 성품이 드러나고 나면 본래 털끝만큼도 옮기는 것이 없는 거요. 그게 불천론(不遷論)의 근본이오.


 성품을 발견하고 진리를 발명하고 나면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러나 여러분한테는 눈앞의 모든 변화와 변천이 너무 의심할 여지없는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진실을 알알이 드러내 보여도 그것을 믿어 받아 가지지를 못하는 거요.




 부처님 법은 시공(時空)의 한정이 없소. 시작도 끝도 없다는 이야기요. 중생은 불천(不遷)을 천(遷)으로 보기 때문에, 다시 말해, 뭔가 이동하고 변천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시작과 끝이 있는 거요. 본래 불천이라, 옮기는 것이 없다면 뭐가 시작이고 뭐가 끝이겠소?· · · · · · 늘 그대로요. 늘 온 누리에 두루해서 치우치는 일이 없고, 미치지 않는 곳이 없소. 그러면서 다만 인연 따라 가고 오는 모든 모습을 감응으로 나툴 뿐, 실제로 가고 오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거요.


 불천(不遷)이라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지속되는 게 없다는 뜻이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소? 지금 이 '나'라고 하는 존재는 늘 그대로 있으면서, 그 '내'가 점점 나이가 들어 늙어간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소? 즉,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히 존재하고 있는 어떤 실체를 늘 생각한단 말이오.


 여기서 여러분이 얼마나 공부를 듬성듬성, 진지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소. 말로는 늘 환화공신(幻化空身)이요,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요 별의별 얘기를 다 하면서도, 그 수많은 경전의 말씀 중에서 단 한 마디 말이라도 그 말의 깊은 뜻을 진지한 자세로 깊이 참구하는 사람은 참으로 찾아보기 어렵소.


 이 세상 모든 게 몽땅 꿈같고 환 같아서 자체성(自體性)이 없는데 어떻게 늙는 일이 있을 수 있겠소? 허공 꽃이 어떻게 늙을 수 있냔 말이오?· · · · · · 그저 인연이 바뀔 뿐이지, 뭔가 여기에서 저기로 또 저기에서 여기로, 그렇게 상속되고 지속되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거요.




 공자(孔子)의 말씀처럼 찰나찰나가 새로운 거요. 한 순간도 옛것은 없소. 지금 현재 이 찰나의 삶의 경험은 다른 때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가 없는 거요. 매 순간순간의 경험은 절대로 반복되지 않소. 문득 한 생각 일어나는 경우도 마찬가지요. 이미 한 찰나 전의 생각은 한 찰나 후의 생각이 아니오. 모든 생명활동이 순간순간 새로운 거요.


 진실이 이러함에도 뭔가 계속 반복되고 지속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지 여러분의 기억 때문에 그렇소.· · · · · · 어제 누구한테 당한 억울한 일에 대한 기억, 그 언짢은 감정이 지금까지 계속 끈적하게 꼬리를 끄는 거요. 하지만 실제로 어제로부터 끌려온 것은 아무것도 없소. 그러니 그 감정, 범정에서 해방된다면 여러분의 삶은 순간순간 신선하고 새로운 거요. 그게 바로 그 무엇에도 영향 받지 않는 순간순간 새로운 창조적인 삶이오.


 불상지(不相知), 불상도(不相到)라 그 어떤 것도 이것이 저것을 알 수 없고, 저것이 이것에게 도달할 수가 없소. 도무지 이것과 저것 사이에는 그 어떤 교섭도 있을 수 없는 거요.· · · · · · 가령 우리가 늙는다는 의미는 '나'라는 실체가 계속 모양을 바꿔 가고 있다 소리요. 그러나 모양이 바뀌기 전의 '나'와 바뀐 후의 '나'는 같은 '나'일 수가 없는 것 아니오? 언뜻 보기에 비슷해 보일 뿐, 계속 새로운 세포가 죽은 세포를 끊임없이 대체하고 있으니, 과연 어느 순간을 '나'라고 지칭할 수 있겠소?· · · · · · 순간순간 다른 거요. 다만 흐리멍텅하고 애매모호한 우리의 오관에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것뿐이오.




 이 세상 일체 만유가 불천(不遷)이니 모든 것이 늘 적멸하오.· · · · · · 본래 불천이라, 옮기는 게 없으면 시간이 흐른다는 생각도 전혀 터무니없는 거요. 시간이라는 것이 물리적인 변화와 이동에 의지해서 세워진 것인데, 애당초 그 어떤 변화와 이동도 일어난 일이 없는 거라면, 빈 말만 있을 뿐 더 이상 시간이 시간이 아닌 거요.


 그러니 이 차원이 되면 마음뿐인 도리가 명료하게 드러나게 되오. 전광판 위에 인연 따라 꼬마전구들이 깜빡깜빡 한 것뿐인데, 그것을 보고 온통 천지개벽을 보고 잔잔함을 보며 울그락불그락 하는 거요. 마음으로만 그렇다고 보는 거요. 마음으로만.· · · · · ·


 '나'라는 주체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변화하는 게 아니라면, 앞뒤가 완전히 끊어진다 소리니, 과거의 그 어떤 마땅치 않은 기억도, 미래의 그 어떤 불안함도 전혀 까닭이 없는 거요. 다만 마음으로만 납덩이같이 무지룩한 마음을 질질 끌고 있는 거요.




 본래 여여한 그 마음자리에 합하고 보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개념 자체가 전혀 허구였음이 드러나게 되오.· · · · · · 한 마음 그 자체는 일찍이 가고 오고, 늘고 줄고 하는 일이 없소. 아무 작용도 일으키지 않고 늘 적멸하지만, 그때그때 인연에 감응해서, 여러분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바에 따라 그 마음속에 느낌만으로 나타날 뿐이오. 그것이 보고 듣는 것으로 나타나고, 가고 오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요.


 이처럼 만법의 성품은 온 누리에 두루해서, 가고 옴도 없고 치우침도 없지만, 다만 인연 따라서 움직이는 모습, 혹은 고요한 모습이 나타나는 거요. 그러나 그 인연 속에는 실체라고 할 것이 없소. 그러니 이 세상 일체 존재는 다만 꿈속에서 겪는 것과 같은 일들이라는 사실을 거듭거듭 명심해야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