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지(聖智)는 '앎'이 없으므로 '앎이 없음'이 없다.
  2. 법문(法門) : 그 무엇도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은 없다.
  3. 공안(公案) : 지금 <모르는 그것>이 바로 '부처'이니, 앎과 모름은 하나도 아니요,둘도 아니다.
  4. 게송(揭頌) : '참 앎'은 앎이 없나니· · · · ·
 
     
   
     
   

    '지극한 도'(至道)는 '마음'에 근본을 두고
    '마음 법'(心法)은 '머무름 없음'(無住)이 근본이다.
    '머무름 없는 마음'의 본체는
    '신령한 앎'으로서 어둡지 않다.



    그 성품과 형상이 함께 고요하고
    온갖 공덕과 작용을 머금어서 안팎을 두루 꾸렸고
    깊고 넓어서, '있음'도 아니고 '공함'도 아니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아서 끝내 시작도 끝도 없다.



    버려도 여의어지지 않나니,
    '현량'(現量)을 미혹하면 어지러이 고(苦)를 받고,
    '참 성품' 깨달으면 비고 밝아서 확 트인다.
    비록 '마음'이 곧 '부처'라 하나 깨달은 이라야 비로소 안다.



    그러나 '증득함'과 '앎'이 있으면
    '지혜의 해'가 곧 '유위의 땅'에 빠지고,
    '비춤'(照)도 '깨달음'도 다 없으면
    어두운 구름이 '공문'(空門)에서 걷힌다.



    한 생각 나지 않으면 '앞뒤 한계'가 끊어지고
    '비추는 본체'가 홀로 우뚝하면 '물건'과 '나'가 다 여여하다.
    곧장 '마음의 근원'에 나아가면 '앎'도 없고 '얻음'도 없으며,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면 물리칠 것도 닦을 것도 없다.



    '미혹'과 '깨달음'이 엇갈려 서로 의지하고
    '참'과 '거짓'이 서로 상생(相生)하였으니,
    참을 구하려고 거짓을 버리면 마치 그림자가 싫어서 뛰는 것 같고,
    거짓이 곧 참임을 깨달으면 그늘에 머물러 그림자가 없는 것 같다.



    '무심'히 비추면서 '작용을 잊으면'
    만 가지 걱정이 모두 사라지고,
    걸림 없이 고요히 알면
    뭇 행이 모두 스스로 일어난다.





    (중략) ······





    '고요함'을 깨달으면 '고요함이 없고', '참 앎'은 '앎이 없나니',
    '앎'과 '고요함'이 둘이 아닌 마음으로,
    공·유(空有)가 쌍융(雙融)한 도리에 계합하면
    머무름도 집착도 없나니 거두지도 포섭하지도 말라.



    시비가 모두 없어지고, 능동과 피동이 함께 끊이면
    끊겼다는 것마저 끊겨서 곧 '반야'가 나타나리니,
    '반야'는 마음 밖에서 새로 생김이 아니요
    '지혜의 성품'은 본래 구족한 것이다.





    (중략) ······





    한 마음도 '부처 마음' 아님이 없어서 곳곳에서 도를 이루나니,
    한 티끌도 불국토 아닌 곳이 없다.
    참과 거짓, 물건과 '나'가, '하나'를 들추면 '전체'가 거두어지고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혼연히 일체가 된다.





                    - 징관(澄觀) 선사의 징관심요(澄觀心要)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