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지(聖智)는 '앎'이 없으므로 '앎이 없음'이 없다.
  2. 법문(法門) : 그 무엇도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은 없다.
  3. 공안(公案) : 지금 <모르는 그것>이 바로 '부처'이니, 앎과 모름은 하나도 아니요,둘도 아니다.
  4. 게송(揭頌) : '참 앎'은 앎이 없나니· · · · ·
 
     
   
     
   

 △ 마명(馬鳴)이라는 장자가 부나야사(富那耶奢) 존자에게 물었다.



  『저는 부처님을 알고 싶은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그대가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지금 모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라.』
  『'부처'도 모르는데 어찌 <그것>인줄 알겠습니까?』
  『그대는 이미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알지 못함>을 알겠는가?』
  『이는 '톱의 이치'(鋸義)입니다.』
  『그것은 '나무의 이치'(木義)니라. ··· 톱의 이치란 무엇인가?』
  『스승과 함께 벗어났습니다. ··· 나무의 이치란 무엇입니까?』
  『그대는 나에 의해 쪼개졌느니라.』



  이에 마명은 출가하였으니, 존자는 다음과 같이 송했다.



   미혹과 깨달음은 숨음과 드러남(隱現),
   밝음과 어둠은 서로 떠나지 않는다.
   이제 '숨음과 드러남의 법'(隱現法)을 너에게 전하노니
   이는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니라.





 △ 마명(馬鳴) 존자의 게송



   숨거나 드러남은 '본래의 법' 아니요,
   밝고 어두움은 본래 둘이 아니다.
   이제 '깨달음의 법'을 그대에게 주노니,
   취할 것도 아니요, 버릴 것도 아니다.





 △ 비라(毘羅) 존자의 게송



   숨거나 드러남이 아닌 법,
   이것을 '진실한 경지'라 한다.
   이 숨거나 드러난 법을 깨달으면
   어리석음도 아니요, 슬기로움도 아니다.





 △ 용수(龍樹) 존자의 게송



   '숨거나 드러난 법'(隱現法)을 밝히기 위해
   해탈의 이치를 말하네.
   법에 '깨달았다'는 생각 없으면
   성냄도 없고 기쁨도 없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