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함(爲)이 없고자 '하려는' 것이 미혹이다.
2. 법문(法門) : 조작하지 말고 흐름에 맡겨라.
3. 공안(公案) : 발우 씻은 때문도, 견해가 생김도 아니니 <본래 있는 성품>을 어째서 모르는가?
4. 게송(揭頌) : 오뚝이 일없이 앉았으니 봄이 오면 풀이 저절로 푸르르다.
 
     
   
     
   

   오뚝이 일없이 있노라니
   바꿔칠 일 있으랴.
   아무 일도 없거늘
   무엇 하러 한 바탕 떠들랴.

   곧은 마음에 산란이 없거든
   딴 일은 끊으려 하지 말라.
   과거는 벌써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헤아리지 말라.

   오뚝이 일없이 앉았으니
   뉘라서 부른 적이나 있던가.
   밖을 향해 공부하는 이들
   모두가 어리석은 무리이다.

   나는 하늘에 나기도 좋아하지 않고
   복전(福田)도 사랑하지 않나니,
   다만 시장하면 밥을 먹고
   곤하면 잠을 잘 뿐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나를 비웃겠지만
   지혜로운 이는 알 것이다.
   이는 어리석고 둔한 것이 아니요,
   '본체'가 원래 그렇다.


   (중략)


   말이 많고 또 이야기가 많으나
   원래가 도리어 그르치는 일이니,
   중생을 제도코자 하면
   스스로를 제도함에 지날 것이 없다.

   부질없이 '참 부처'를 구하지 말라.
   '참 부처'는 볼 수 없다.
   '묘한 성품'과 '마음 자리'가
   어찌 수련의 영향을 받으랴.

   '일 없음'은 본래 일이 없는 것이니
   어찌 문자를 읽어서 되랴.
   '너'다 '나'다 하는 근본을 없애면
   <그것>의 뜻에 자연히 계합한다.


   (중략)


   '공덕'을 위하여 '공력'을 들이면
   더욱더욱 어리석어지나니,
   취(取)하면 얻지 못하고
   취하지 않으면 저절로 통한다.

   나에게 한 말씀이 있는데,
   생각이 끊이고 반연을 잊었으니,
   교묘히 말해도 되지 않고
   오직 '마음'만으로 전한다.

   다시 한 말씀이 있으니
   곧장 일러주는 것만 못하다.
   가늘기는 털끝 같고, 크기는 장소가 없으며
   본래 뚜렷이 이루어져서 아무 손질을 빌리지 않는다.

   생사에 걱정이 없으니
   다시 무엇을 근심하랴.
   물 속의 달이 형상이 없듯이
   나는 항상 이렇게 편안하다.

   만 가지 법이 모두 그러하여
   본래부터 생멸이 없다.
   오뚝이 일없이 앉았으니
   봄이 오면 풀이 저절로 푸르르다.




   ― 남악 나찬화상(南嶽 懶瓚和尙)의 게송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