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없음>을 증득하는 것은 누구인가?
  2. 법문(法門) : 한 찰나 전의 '나'는 한 찰나 뒤의 '나'가 아니다.
  3. 공안(公案) : 몸을 빼건 벗어나건 더욱 '자기'를 미할 뿐이니, 금으론 금을 바꿀 수 없다.
  4. 게송(揭頌) : 모든 법은 체성도 작용도 없어서 온갖 것은 서로 알지 못한다.
 
     
   
     
   

 문수(文殊)가 각수(覺首) 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심성'(心性)은 바로 <하나>이거늘 어떻게 갖가지 차별이 있음을 보게 됩니까?』 하니, 각수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모든 법은 작용이 없고
   체성도 없으며,
   따라서 저 온갖 것은
   저마다 서로 알지 못한다.


   비유컨대, 저 강의 흐르는 물이
   여울져서 물살 빠르게 흐르면서도
   저마다 서로 모르듯이
   모든 법도 또한 그렇다.


   또한 마치 큰 불 더미가
   사납게 불길 일어 동시에 타면서도
   저마다 서로 모르듯이
   모든 법도 또한 그렇다.


   눈·귀·코·혀·몸과
   마음과 뜻이며, 여러 감관이
   이에 항상 유전(流轉)하면서도
   이것을 <굴리는 이>(主宰)가 없다.


   법성(法性)은 본래 남(生)이 없건만
   나투어 보이면서 남(生)이 있나니,
   이 속엔 실로 <능히 나투는(能現) 주체>가 없으며
   또한 <나투는 바(所現) 물건>도 없다.


   눈·귀·코·혀·몸과
   마음과 뜻이며, 여러 감관이
   모두가 공(空)하여 성품이 없거늘,
   망령된 마음으로 '있다'고 분별한다.


   이치대로 자세히 살펴보건대,
   온갖 것 모두가 성품이 없으며
   '법안'(法眼)은 생각이나 말로는 할 수 없어
   이것으로 봄(見)만이 뒤바뀜이 아니다.


   진실하거나, 진실하지 않거나
   망령된 것이거나, 망령된 것이 아니거나
   세간이거나, 출세간이거나 간에
   모두가 가정(假定)으로 언설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