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체 만법이 모두 한 성품의 다른 모습이다.
  2. 법문(法門) : 자체의 성품이 없으니 모두가 한 성품이다.
  3. 공안(公案) : 낱낱의 법이 한 뿌리에 의하여 잎이 퍼졌나니· · · · · ·
  4. 게송(揭頌) : 평등법계엔 원래 두 모양이 없다.
 
     
   
     
   

 만약 여러분이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그것에 대한 해답을 들음으로써, 예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는 것을 공부로 안다면, 그건 출발부터 틀린 거요.· · · 결국 공부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거요. 질문과 답변의 내용 속에는 아무 것도 담을 수가 없소. 그건 물소리, 새소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거요.· · · 오직 그 의증이 어디서 왔는가를 알아내야 하오.


 흔히 어리석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 게 올바른 공부입니까?" 하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질문자체가 잘못된 거요. 공부를 통해 '내'가 어떻게 돼야겠다는 목적을 먼저 세운 것 아니오? 가령 이 몸과 마음이 허망하다는 사실을 '내'가 확철하게 깨달아 벗어나야 되겠다는 목표를 이미 설정한 거요. 그렇게 목표를 설정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목표를 성취하는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로 이 길을 갈 수가 없소.


 공부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알아보는 게 진정한 공부요. 공부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고, 공부하는 자와 공부라는 행위가 둘로 분열되어, 이 '내'가 공부를 통해 장차 어떻게 될 것이라는 그러한 구도 자체가 전적으로 잘못된 거라 소리요. 지금 모든 범부가 범부의 탈을 벗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그것이오.


 뭔가를 추구하려고, 한 생각 내서 행동으로 옮길 때는 벌써 그 진여(眞如)가 둘로 갈라진 거요. 참된 하나가 '추구하는 자'와 '추구되어지는 대상'으로 분열된다 소리요. 말로는 늘 '참된 하나'니 '한 마음'이니, 전체를 거들면서 시작부터 전체를 둘로 갈라놓고 싸운다면, 어떻게 그 전체가 드러나겠소?· · · '추구하는 자'와 '추구의 대상'이 이미 둘로 갈라졌다면, 참선이 됐건 요가가 됐건 아무리 전통 있는 수행을 했을지라도 그 추구의 결과는 전혀 거들떠볼 필요도 없는 거요.




 흔히 고기를 잡았으면 통발은 버리라거나, 저편 언덕으로 가기 위해 필요했던 배도 도착했으면 버리라는 비유적인 말들을 많이 들을 거요.· · · 지금까지 여러분이 배로 삼았던 보고 듣고 익혔던 모든 것, 그러한 과정에서 절대 이것만은 진실이고, 이것만은 옳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 바꿔 얘기해서 진리에 대한 모든 언설, 깨달음이니 진여(眞如)니 부처니 하는, 전혀 의심할 여지없이 진실이라고 여겼던 그런 모든 모범답안들,· · · 그 모두를 티끌 만한 자취도 없이 깨끗이 털어 버려야 하오.· · · 한 마디로 모든 이름, 모든 말이 전부 허명(虛名)이고 희론이오.


 이 세상 일체 만법은 스스로 이름이 없소. 오직 마음이 있어서 이름이 있는 거요. 마음이 이름을 짓고, 마음이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그러한 것들을 실체화하고 고정화 해놓고는, 제가 지은 것에 제가 걸려서 그 마음이 지금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거요.


 다른 누구도 '나'를 장애하는 경우는 없소. 전부 '내' 스스로 지은 거요.· · · 여러분 마음이 어떻게 다른 그 무엇에 의해서 장애를 받을 수 있겠소? 단칸방에 살면서도 여러분 마음은 온 우주를 종횡(縱橫)할 수 있지 않소? 그런데도 끊임없이 마음바깥에 어떤 객관적인 실체가 존재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지금 그런 장애가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오. 그게 바로 미혹이오.


 '내'가 어떻게 되겠다는 생각, 갈고 닦아서 맑고 깨끗하고 거룩해질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전부 여기서 비롯된 거요.· · · 있는 그대로인 것 같으면 빠르지만, 어떻게 돼야 되겠다는, 추구하는 바가 있고, 목표나 목적이 있으면 전부 유위행에 떨어지는 거요. '절대로 밖으로 구하지 말라.' '모든 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라'고 하는 이유가 이 유위행의 결함을 스스로 자각하게 하기 위한 것이오.




 이 세상 물리적, 혹은 심리적 일체 만법은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없소. 반드시 그 어떤 인연이 어우러야 돼요. 그리고 그 인연 또한 또 다른 인연이 어우러야 되는 것이니, 결국 이 세상엔 본래 인연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 거요.


 일정한 원인 하에서 일정한 결과가 난다고 여기는 그 자체가 대단히 망령된 생각이오. 무엇이 무엇의 원인이 되며, 무엇이 무엇의 결과가 될 수 있겠소? 원인도 자체의 성품이 없고, 결과도 자체의 성품이 없고, 다만 이게 한 마음에 의지해서 있는 것뿐이오. 어떻게 원인이 그 자체의 성품이 있길래 결과를 부르는 능력이 있으며, 그러한 결과가 어떻게 자체의 성품이 있어서 원인에 보답하는 능력이 있겠냐는 말이오? 어떠한 원인도 결과를 부를 수가 없고, 어떠한 결과도 원인에 보답할 수가 없는 거요. 그 모두가 전부 인간 의식으로 멋대로 지어낸 거요. 빈 말만 있다는 소리요.


 중생이 어리석어 본래 바탕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뭔가를 있다고 지어놓고 또 다시 이것과 저것 사이의 '관계'를 엮어놓는 거요. 이처럼 인과관계나 상호관계, 모든 관계는 텅 트인 허공에 인간이 머리로 생각해 억지로 그려놓은 망상이오.


 모든 법은 인연 따라, 다시 말해 인과관계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인데, 인과관계 자체가 근본이 비어 허망한 것이라면, 모든 법이 생겨날 때 생겨난 것이 없고, 따라서 생겨난 것이 없으니 사라지는 법도 없는 거요.· · · 이 길에 들어선 수행자라면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오. 일체 만법은 인연에 의지해서만 존재하고, 인연에 의지해 존재하는 것은 그 자체의 성품이 없다는 것.· · · 그 자체의 성품이 없다는 것은 그 모습이나 그 이름이나 그 의미가 몽땅 망령된 거라 소리요.




 일체 만법이 자체의 성품이 없는 데에다가 우리가 지금 얼마나 많은 이름을 짓고,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 분류하고 범주화해놓고는 또 다시 스스로 그 속에 빠져 야단법석을 피우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오.· · · 우리가 일체 만법에 대해 알고 있는, 허공에서부터 대지에 이르기까지, 일체 우주 삼라만상에다 지은 모든 이름과 모든 의미는 망정(妄情)이요, 망상(妄想)이오.· · · 자체의 성품이 없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름을 짓고 뜻을 지어서, 옳다 그르다, 좋다 싫다에 달라붙어 코가 닷 자나 빠져있는 거요. 그 모든 게 자체의 성품이 없는 줄 안다면 도무지 시비가 생길 일이 없는 거요.


 이 인과관계가 전혀 환영처럼 이름만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연하게 알아서, 그 사슬을 끊어버렸을 때 비로소, 흔히 말하는 윤회(輪廻)의 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소. 그게 곧 해탈이고 열반이오.· · ·


 불자들이 이 소리를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할 거요. 그럼 윤회라는 것이 실제로 있는 게 아니란 말인가?· · · 그런 것 없소. 한 번도 구른 적이 없소. 구른 것도 없고, 구른 적도 없고 구른 때도 없소. 그런데 미혹한 중생이 굴렀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오.· · · 가장 중요한 것은 일체 만법이 그 자체의 성품이 없다는 거요. 자체의 성품이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한마음뿐인 유심(唯心)의 법이 드러나는 거요. 일체 만법은 끝내 마음뿐이오.


 생각을 더듬어 뭔가 따지고 짐작해 안 것은 전부 망령된 거요.· · · 일체 만법이 자체의 성품이 없으니, 사람은 사람인데 빈 이름뿐인 사람이요, 괴로움은 괴로움인데 빈 이름뿐인 괴로움인 거요. 실체가 없단 말이오.· · · 자체의 성품이 없다는 말은, 그러한 것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고 행동할 수도 없고, 어떤 능력도 없다는 얘기요. 그런데 이 고깃덩어리가 건방지게, 독립적인 자기 능력이 있다고 확실히 믿고있기 때문에, 재주를 배우고 능력을 쌓고 힘을 기르려고 아등바등하는 거요. 지금의 '나'가 힘들여 쌓은 인행(因行)의 과보로 훗날 보다 편하고 보다 초월적인 '나'가 되기 위해.· · · 그것이 자기강화, 에고(ego)의 강화요. 그러니 동쪽으로 갈 사람이 서쪽으로만 내닫는다는 소리를 면치 못하는 거요.




 일체가 마음뿐이어서 능·소(能所), 주체와 객체가 본래 빈 이름뿐이라면, 곧 인무아(人無我)요, 법무아(法無我)요. 이것을 깨달으면 곧바로 부처자리요.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여전히 보는 자도 실체고 보이는 대상도 실체 아니오? 그렇다면 '일체 만법이 전부 자체의 성품이 없다'는 부처님 가르침은 계속 한 토막 지견으로만 겉도는 거요. 말만 배운다 소리요. 그런 식이라면 아무리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알아도, 들은 자가 있으니 인유아(人有我)요, 들은 바 지식이 있고, 나름대로의 묘한 재간이 생길 테니 법유아(法有我)요.


 여러분 중에 혹시 '내가 근본적인 변혁을 이루어 꼭 깨치고야 말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천만에 말씀이오.· · · 그냥 쉬시오. 아무 생각 없는 것만 못한 거요.· · · 깨치고 깨치지 못함이 자체의 성품이 없는 거요. 깨달음이 깨달음이 아니고 다만 그 이름이 깨달음이오. 미혹함이 미혹함이 아니고 다만 그 이름이 미혹함이오.


 누차 말하지만 본래 일체 만법에는 이름이 없소. 이름이 없으니 의미도 있을 수 없소. 굳이 말한다면 그건 전부 중생이 편의에 의해 지어서 쓰는 개념, 즉 개략적인 생각일 뿐이오. 때문에 중생이 생각이 없으면 세상은 지금 있는 이대로인 채로 고요하오. 거기에 살풋 한 생각 일으키면 천태만상으로 벌어지는 거요, 지금 여러분 눈앞에 보이고 들리는 것처럼. 다만 그것뿐이오.· · · 천태만상으로 벌어진들 방해로울 게 뭐며, 안으로 거두어들여 조용한들 바람직할 건 뭐겠소? 전부 마음뿐인데.




 끊임없이 머리 터지게 뭔가 알려고 하지만 이 법이 본래 알고 모르는 데에 속한 법이 아니오. 이 세상 만법이 자체의 성품이 없다고 했으면 이제 더 이상 할 말 없는 거요.· · · 그렇다고 자체의 성품이 없다고 알면 옳게 아는 거요?· · · 자체의 성품이 없다는 그 말의 참뜻을 알았거든 행여 그 말을 짊어지고 다니지 마시오. 본래 성품 그 자체는, 자체의 성품이 있다 커니 자체의 성품이 없다 커니 하는 그 어떤 말도 붙을 여지가 없소. 어떤 말로도 도무지 규정지을 수가 없는 거요.· · · 그래서 마침내 유마힐 거사가 입을 다물어버린 거요.


 법상(法床)에 앉아서 한참을 가만히 있으니 누가 물었소. 그래도 한동안 가만히 앉아있더니, 한참 만에야 말하기를,


  "알겠나?"
  "· · · · · ·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게 아는 것이요, 아는 게 곧 모르는 거요. 자체의 성품이 없소.· · · 그렇게 모른다고 알고, 안다고 아니, 그 참 성품은 늘 제자리에서 환히 빛을 놓고 있는 거요.· · · 뜻을 사무치시오. 말을 배우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