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체 만법이 모두 한 성품의 다른 모습이다.
  2. 법문(法門) : 자체의 성품이 없으니 모두가 한 성품이다.
  3. 공안(公案) : 낱낱의 법이 한 뿌리에 의하여 잎이 퍼졌나니· · · · · ·
  4. 게송(揭頌) : 평등법계엔 원래 두 모양이 없다.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한 몸'이라거나 혹은 '한 성품'이라는 말은 이 길에 들어선 웬만한 불자(佛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언제나, 또 누구나 들을 수 있을 만큼 흔한 말이 돼서 그런지, 그 말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큰 뜻을 담고있는가를 참구하는 사람은 참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 · 그 함의(含意)는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받아온 교육과 가치관의 주입으로 인해, 우리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원적인 사고체계를 아무 저항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또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당장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만 보더라도 모든 문장의 마지막 서술이 '∼이다' 혹은 '∼아니다'로 크게 나뉘어 지는 것을 볼 때, 우리 사고체계의 이원성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여기서 진지한 수행자라면 '일체 만법이 한 성품'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우리가 늘 사용하고 있는 언어습관이나 사고체계에 과연 부합되는가를 깊이 참구해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부처님의 말씀이 참으로 진실임을 간파했다면, 지금까지 고수해온 사고체계를 지금 당장 앉은자리에서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기개(氣槪)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수행자의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진실을 대하고도 지금까지 살아온 타성에 젖어 선지식의 가르침을 그저 적당한 선에서 선택적으로 취사(取捨)한다면, 그 사람은 불자(佛子)도 아닐뿐더러 당나귀 해가 되어도 깨달을 분수가 없는 것이다.


 많은 선지식들이 '세상 일체 만법이 몽땅 한 성품의 다른 모습'임을 한결같이 설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원적 사고의 틀에 젖어 살아온 중생들은 여전히 '이것'이 '저것'을 보고, '이것'이 '저것'을 알고, '이것'이 '저것'을 깨닫는 일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모두가 한 몸이라면 '무엇'이 '무엇'을 보고, '무엇'이 '무엇'을 알고, 또 '무엇'이 '무엇'을 깨닫는다는 말인가?· · ·


 물론 이 세계를 수많은 개별적인 대상과 사건들로 나누어 분별하고 범주화하는 것이 중생의 일상적 환경을 다루는 데는 필요할지 모르나, 그러한 개별적 사건, 사물들이 전적으로 인간의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것들이 모두 실제인 줄로 믿고, 또 그것이 다인 양 여기는 것이 바로 망념이요, 미혹인 것이다.




 경(經)에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으니 그 뜻을 깊이 새겨봐야 할 것이다.


 『원래가 하나의 '앎의 성품'일 뿐인데 작용에 따라서 나뉨이 많다. 전혀 마음 밖에는 따로 여러 수(數)가 있음이 아니니, 이는 마치 금(金)으로 갖가지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이 금 이외에는 따로 '그릇의 체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작용에 따라서 느낌과 생각함, 지어감(受·想·行) 등으로 나누어서, 저마다 제 모양을 지키면서 수(數)가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것은, 마치 금과 그릇이 차별이 없지는 않은 것과 같다.

 금과 그릇이 비록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그 '때'(時)는 앞뒤가 없듯이(隱·顯이 同時다), 마음과 법도 또한 이와 같다(마음이 그대로 法이다).

 만약 결정코 하나라고 한다면 금일 때에 모든 그릇은 없어야 되고, 만약 결정코 따로라고 한다면 그릇은 하나의 금이 아니어야 한다. 마음과 법의 동일함과 다름(不一不異)도 이에 준하여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만약 금일 뿐(唯心 '마음'일 뿐)이라 한다면 그릇을 잃게 되어서 세속의 이치(俗諦)를 무너뜨리고, 만약 그릇일 뿐이라고 한다면 금을 잃게 되어서 참된 이치(眞諦)가 숨어버린다.

 이야말로 깨끗함에 즉한 물듦(卽體之用)이어서, 진리(眞理)에 거리끼지 않으면서 항상 범속(凡俗)이며, 또한 물듦에 즉한 깨끗함(卽用之體)이어서, 범속을 허물지 않으면서 항상 진리이다.

 따라서 '한 마음'을 장애하지 않으면서 쌍으로 '두 가지 이치'가 존재하며, 한량없는 '몸 구름'(身雲)과 한량없는 '법문'(法門)에 이르기까지 뜻에 따라 비록 무수히 나누어져도 '한 마음'은 옴짝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펼치면(舒) 만 가지 법이 되고, 거두어들이면(卷) 그대로가 바로 '한 마음'이며, '하나' 안의 '한량없음'이요, '한량없음' 가운데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