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체중생이 모두 '깨달음의 지위'(覺位)에 있다.
  2. 법문(法門) : 즐겁다고 알고 괴롭다고 아는 그것이 깨달음이다.
  3. 공안(公案) : '법 없는 법'이 '참 법'이요, '깨달음 없는 깨달음'이 '참 깨달음'이다.
  4. 게송(揭頌) : 무명(無明)의 참 성품이 곧 불성(佛性)이라 · · · · · ·
 
     
   
     
   

   그대 보지 못했는가?
   배우기를 쉰 한가한 도인은
   망상을 없애려 하지도 않고
   '참'을 구하지도 않는다.


   <무명(無明)의 참 성품>이 곧 불성(佛性)이요
   <환화공신>(幻化空身)이 곧 법신(法身)이다.
   법신을 깨닫고 나면 한 물건도 없으니
   <근본 근원> 그대로 곧 천진불(天眞佛)이다.


   오음(五陰)의 구름은 공연히 오락가락 하고
   삼독(三毒)의 거품은 헛되이 뜨고 잠긴다.
   실상(實相)을 증득하면 사람도 법도 모두 없으니,
   찰나에 아비지옥(阿鼻地獄)의 업을 녹인다.


   (중략)······


   꿈속엔 분명히 여섯 길이 있더니
   깬 뒤엔 공하여 대천세계도 없다.
   죄도 복도 없고, 손해도 이익도 없으니
   본래 적멸한 성품 안에서 묻고 찾고 하지 말라.


   아직 먼지 속의 거울을 닦지 못했으니
   오늘에는 분명히 닦고 분석하리라.
   누가 무념(無念)이며, 무엇이 무생(無生)이랴.
   진실로 '무생'이라면 나지 않는 것이 없다.


   '나무 사람'(木人)에게 물어 보라.
   부처를 구하고 공(功)을 들여서 언제나 이루어지랴.
   사대(四大)를 놓아버려서 거두어 잡지 말고
   적멸한 성품 안에서 마음껏 먹고 마셔라.


   (중략)······

   들(野)이거나 절이거나 걸림 없이 조용히 앉았으니
   고요하여 안거(安居)함에 진실로 쇄락(灑落)하다.
   깨달으면 그만이요, 아무 공력(功力)도 들이지 않으니
   온갖 '유위의 법'(有爲法)과는 동일하지 않다.


   어찌 <무위의 실상법문> 안에서 단번에 뛰어나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드는 것만 같으랴.
   '근본'을 얻기만 하면 '끝'은 근심하지 말라.
   마치 밝은 유리에 달이 비친 것 같다.


   불성과 계율의 구슬이 마음 자리에 찍혔고
   안개와 이슬 구름 노을은 몸 위의 옷이니라.
   '참'을 구하지도 않고 '허망'을 끊지도 않나니
   두 법이 공하여 형상이 없는 줄 알라.


   '형상'이 없고, '공'도 없고, '공 아님'도 없으니
   이것이 <여래의 진실한 형상>이다.
   마음이 밝아서 걸림 없이 비치니
   환하게 비치어 항하사 세계에 두루 한다.



                 
       ― 영가(永嘉 眞覺)대사의 증도가(證道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