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체중생이 모두 '깨달음의 지위'(覺位)에 있다.
  2. 법문(法門) : 즐겁다고 알고 괴롭다고 아는 그것이 깨달음이다.
  3. 공안(公案) : '법 없는 법'이 '참 법'이요, '깨달음 없는 깨달음'이 '참 깨달음'이다.
  4. 게송(揭頌) : 무명(無明)의 참 성품이 곧 불성(佛性)이라 · · · · · ·
 
     
   
     
   

 어느 날 제자가 묻기를,· · ·


 『부처를 깨달음의 이치로 일컫는데, 어떤 법을 깨닫습니까?』하니, 스승이 답하기를· · ·

 『'법이 없는 법'을 '참 법'이라 하고, '깨달음이 없는 깨달음'을 '참 깨달음'이라 하나니, '미묘한 성품'은 본래 붙일 데가 없어서(虛空은 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천진(天眞)이며, 스스로 밝고 환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화엄경(華嚴經) 게송에 다음과 같이 이른다.


 '불법'은 깨달을 수 없나니,
 이것을 알면 '깨달음의 법'이라 하고,
 한 법도 얻을 수 없나니,
 모든 부처는 이렇게 수행하네.




 <무자보협경>에서, 승사유(勝思惟)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법이 바로 여래께서 증득하여 깨달아 알 바입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 ·

 『한 법도 여래의 깨달을 바가 없느니라. '법'에서 깨달음이 없음이 곧 '여래의 깨달음'이니라』라고 했다.




 그러므로 ≪만약 깨달음이 있으면 중생이요, 깨달음이 없으면 목석과 같으리니 (有覺 無覺이)모두 '참 성품'이 아니다. 그러나 계합(契合)하는데는 인연이 없지 않아서, '깨달음이 없는 깨달음'이라야 큰 종지(宗旨)가 같다.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중생과 같지 않고, 깨닫지 않음이 없으므로 목석과 같지 않아서, 곧 '하나의 깨달음'이 '온갖 깨달음'이다.

 깨달음이 없되, 깨닫지 않음이 없나니,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지혜로 아는 것이 항상 고요하고, 깨닫지 않음이 없으므로 '텅 빈 마음'이 항상 환히 비춘다.

 또한 마음이 '항상 머물러 있음'(常住)을 보면 이것을 '깨달음'이라 한다. 그러므로 '하나'가 이루어지면 '온갖 것'이 이루어지고, '하나'가 깨달으면 '온갖 것'이 깨닫는다.(一卽一切 一切卽一) 곧, '말'이 다하고 '생각'이 끊어졌으면서도 '거짓 이름'을 무너뜨리지 않으므로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