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완전한 관찰
  2. 법문(法門) :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관찰의 현장에 관찰자로서의 ‘나’가 없는 것이다.
  3. 공안(公案) : 물·아(物我)가 일여한 뜻은 산천을 주유(周遊)하는 참 멋이로다.
  4. 게송(揭頌) : 모든 법이 평등한 줄 알면 홀연히 거뜬하고 쾌락하리라.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큰 지혜'와 '바보'가 다르지 않다.
    어찌 밖을 향하여 보배를 구하랴.
    신전(身田)에 원래부터 '밝은 구슬'이 있다.

     '바른 길', '삿된 길'이 둘이 아니니,
    '범부'와 '성인'이 같은 것임을 알라.
    '미혹'과 '깨달음'이 본래 차별이 없고
    '열반'과 '생사'는 한결같은 것이다.

     끝끝내 공적(空寂)함을 사무쳐서
    오직 뜻과 생각이 맑기만을 구하라.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으면
    잠깐 사이에 저절로 '남음 없는 도'(無餘道)에 든다.



     온갖 것이 불사(佛事) 아님이 없으니
    어찌 생각을 거두면서 좌선(坐禪)을 하랴.
    '망상'이 본래 공적한 것이니
    '반연'(攀緣)을 끊으려 할 것이 없다.

     지혜로운 이가 도무지 '얻을 마음'이 없이 되면
    자연히 시끄러움도 다툼도 없어진다.
    '무위의 대도'(無爲大道)를 알지 못하면
    언제 깊고 현묘(玄妙)함을 증득하랴.

     부처와 중생은 한 종류이니
    중생이 그대로 세존(世尊)이시다.
    범부는 허망하게 분별을 내어
    '없음' 가운데서 '있음'을 집착하며 어지럽게 설친다.



      성문(聲聞)은 시끄러움을 피하고 고요함을 구하니
    마치 떡가루를 버리고 떡을 찾는 것과 같다.
    '번뇌'가 그대로 '보리'(菩提)이니
    '마음'이 없으면 '경계'도 없다.

     지혜로운 이는 '부처'를 구할 마음이 없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사됨(邪)과 바름(正)에 집착한다.
    음욕(淫慾)의 성품이 원래 공한 줄 알면
    '불가마 지옥'이 저절로 식는다.


             ― 지공(誌公)선사의 십사과송(十四科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