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승보살의 단덕(斷德)
   

대체로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다. 즉, 그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어 그것을 근본적으로 끊고 제거함으로써 문제의 해법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늘 무엇인가를 끊어야 할 법이 있는 것이다.

비단 범부들뿐만 아니라 불법에 인연을 맺고 수행을 시작했다는 사람들마저도 궁극적으로는 끊어야 할 법이 있어서, 늘 그것을 끊기 위해 애를 쓴다. 예컨대 그들은 번뇌가 본래 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늘 번뇌를 끊으려고 하거나, 억누르려고 하며 혹은, 그 번뇌를 잘 조복하여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유위행(有爲行)이요, 인과법(因果法)의 잔재에 불과한 것이다. 일승보살(一乘菩薩)은 이미 온갖 법의 성품이 비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옳은 법이건 그른 법이건, 깨끗한 법이건 물든 법이건, 특별히 끊어야 할 만한 법도, 붙잡아 간직할 만한 법도 없는 것이다. 즉 과거·현재·미래를 통해 도무지 끊어야 할 만한 법이 없으니, 이는 온갖 법이 성품이 없고 머무름도 없이 모두가 한 성품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참된 끊음'이라 함은, 예전에는 속박되어 있다가 부단한 노력을 통해 그것을 끊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지는 그러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 삼시를 통해 도무지 끊을 법이 없게 되었을 때에 그것을 '참된 끊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영원한 끊음'이요, 바로 「일승보살의 단덕(斷德)」이 드러나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끊는 것도 보지 않고, 끊지 않는 것도 보지 않아, 끊고 끊지 못하는 양변을 모두 보내고, 보냈다는 생각조차도 보냈을 때, 이것을 비로소 '끊은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승법의 요체(要諦)이다.

어떠한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모든 수행자들의 유위행을 훌쩍 넘어서서, 지금 여기에서 당장 있는 그대로인 채로 몰록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 이것이 돈증법(頓證法)인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닦은 자가 있고 그 닦음으로 해서 얻은 바가 있다면 그것은 다만 유위법이요, 생사법(生死法)일 뿐이니, 결코 참된 증득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증득해 얻되, 얻은 바도 이룬 바도 없는 것, 이것이 참된 증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