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승의 도리는 결코 인간의 이른바 합리적 사유로는 미치지 못한다.
   

대체로 이 어지러운 세상사에 휘말린 채 온갖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모든 번뇌를 갖춘 범부들이 이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이 모든 번뇌와 혼란을 여의고 벗어나서, 이른바 '저 언덕'에 도달하는 것은 '삼승'(三乘 聲聞 緣覺 菩薩 )들이 이것이다.
 
그러나 일승(一乘)의 보살은 이 두 가지가 모두 아닌 것이다. 즉, 일승 보살은 이 세상의 일체 만유가 모두 허망하여 실다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지만, 그러나 이들은 이미 '진리의 보편성'을 증득하여, 양변(兩邊)과 중간(中間)이 아울러 다한(盡), 저 <가 없이 광대한 이지(理智)의 바다>에 노닐면서, '참' 과 '허망'이 문득 <하나의 참>(一眞)으로 돌아갔으니, 어찌 구태여 '허망'을 버리고 '참'을 지향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겠는가?

이들은 '속'(俗)이 바로 '진'(眞)임 (마치 물결이 그대로 물이 듯이) 을 깨달아 마쳤으므로 '진'을 닦음에도 거리끼지 않아서, <짓되 지음이 없는 참된 도>를 오히려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수행하지 않으면 '진리'에 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속'을 허물지 않으니, 어찌 <닦아 증득함>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섣불리 몇 마디 알아들은 말귀를 앞세우면서 이른바 <배움이 없고 함이 없음>(絶學無爲)으로써 옳음을 삼아서, 겁도 없이, 저 '성스러운 가르침'(聖敎)을 비방하고, 자칭 유유자적하는 무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결국 <닦는 자>도 <닦지 않는 자>도 모두 '진리'를 등지고, 헛된 지견을 좇으면서 허송세월하는 무리들이니, 어찌 본래 스스로 청정하여 일체의 인간적 차원의 조작을 기다리지 않는 '옛 집'(舊居)으로 돌아가 쉴 수 있겠는가?

요즘 대부분의 공부하는 사람들은, 저 '사성제'(四聖諦 苦集滅道 )를 닦는 데 있어서,

요컨대, 일승 보살은 자기의 성품이 본래 스스로 <법계 허공계>(法界 虛空界)에 두루해서 항상 사물에 감응하되, 왕래(往來)와 중간(中間)이 없으므로, 따라서 일승 보살은 '누진통'(漏盡通 煩惱가 다한 神通 )을 증득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개의 학인들이 좋아하고 싫어함이 있고, 또 취하고 버림이 있는 것과는 전혀 같지 않은 것이다.

또한 범부들은 '세간법'(世間法)을 행하고, 삼승은 '출세간법'(出世間法)을 행하지만, 일승 보살은 '세간'도 아니고, '출세간'도 아니니, 곧 이들은 능히 세간을 따르면서 모든 차별법을 자재하게 굴리되, 전혀 걸리는 일도 없고, 물드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세간법은 다 '사의법'(思議法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法 )이고, 저 삼승도 역시 '사의법'이니, 왜냐하면 저들 모두가 '얻음이 있음'(有所得)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승'의 경계는 '부사의'(不思議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음 )이니, 왜냐하면, 이것이 '무소득'(無所得)이기 때문이며, '고요함과 작용'(寂用)이 걸림이 없는 대자재(大自在)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중생과 이승(二乘)과 정토보살(淨土菩薩 따로 理想境인 淨土를 求하는 菩薩 )은 모두 <과보가 있는 모습>(有報相)이지만, 오직 이 일승 보살은 물들고 깨끗함을 가리는 마음이 이미 소멸하였으므로, 전혀 '과보'(果報)를 의지하지 않는다. 이들은 다만 중생들의 즐기고 원하는 바를 따라, 사물을 따르면서 온갖 법을 나투되, 마치 저 맑은 여의주(如意珠)가 온갖 사물과 더불어 색을 함께하되, 자·타(自他)의 구별이 없는 것과 같다.
 
요약컨대, 본래 모든 중생과 더불어 '한 마음'을 같이하여, 전적으로 저들의 '마음'이 보는 바에 맡기는 것이니, ··· 달인(達人)은 '법'이 스스로 이러하여서, 그 작용이 <가고 옴>(往來)이 아닌 것이다.
 
결국 <일승의 도리>는 결코 인간의 이른바 합리적인 사유로는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설사 의식의 헤아림으로 이 도리를 이해하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끝내 그 의심을 밑동까지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며, 또한 성인의 말씀만을 믿고 좇는 까닭에 스스로의 의심이 끝내 끊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오직 오래도록 무심(無心) 무념(無念)의 이른바 생각 없는 경지에 있으면서, 마침내 고(苦)를 싫어하지 않게 된 자와, 고요함에 체(滯)하지 않는 자와, 또한 지금 있는 이대로의 이 세상이 곧 그대로 항구불변하는 해탈 열반의 청정한 불국토라는 사실을 깨달은 자만이 능히 이 <일승의 도리>를 알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