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이 본래 없고, '부처'도 없음을 알면 이를 일러 '깨달은 사람'이라 한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줄곧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중요 명제였다. 인간세상의 모든 일들, ··· 정치,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그 어떤 분야도 궁극적으로는 이 생사문제와 연관되어 있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웃지 못할 '넌센스 퀴즈'에서부터, '진화론' '운명론' 등의 과학적, 철학적 접근은 물론이고, '창세기'니, '말세'니 하는 따위의 종교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가 알고 보면 인간의 생사문제를 직·간접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힘이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적자생존'의 냉혹한 현실, 이른바 '정글'의 법칙만이 판을 치는 작금의 사회상에 생각이 미치면, 이 인간의 생사문제야말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를 막론하고, 우리들 인간이 해결해야 할, 그것도 매우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대사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우리에게 <죽고 사는 문제>에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온다면, 이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까? 아마도 지금보다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편안하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한 사람이 <생멸이 없고, 가고 옴도 없는 이치>를 깊이 깨달아서, <생성과 소멸의 순환의 고리>(輪廻)가 끊어지고, '인과법'의 전·후 관계도 전혀 인식작용이 허망하게 빚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마침내 시간의 흐름도 없고, 공간적인 차별도 소멸한 세계가 홀연히 목전에 나타난다면, ··· 그러면서도 그 모든 차별법을 전혀 허물지 않고, 그 차별적인 현상계 가운데서 삶을 영위하면서 전혀 아무런 갈등도 충돌도 겪는 일이 없이, 그야말로 무애자재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그것이 바로 '깨달은 사람'에게만 열리는 세계이며, 그것이 바로 '진리'에 가지런히 계합(契合)한 '일승의 법계'(一乘法界)이며, 그것이 바로 모든 <있는 것>을 다만 <있는 그대로의 자세>로 그저 <있는 그대로 보는>, 그리하여 '시간'도 '노력'도 들이지 않고 잠잠히 '진리의 땅'을 밟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세계인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지금에 있어서 온갖 번뇌와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면서 매일매일을 정신 없이 헐떡이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범부들이 모두 그와 같은 세계, 이른바 '열반의 세계'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다만 제가 혼자 스스로 모르고 있을 뿐이라니, 실로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들 범부가 억겁을 두고 꾸어오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생멸도 없고, 따라서 생사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이 마냥 고요하고 청정한 세계를 살고 있으면서도, 허망하게 길들여진 중생의 업식(業識) 때문에 그 마음 속에 헛되이 나타나는 '업의 그림자'(業影)를 실다운 존재인 줄로 오인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그가 꿈에서 홀연히 깬다면, 꿈속에서 보고 듣고 경험했던 모든 일들은 졸지에 끝나버리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편안히 잠자리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에 있어서 온갖 방편에 의지하여 열심히 갈고 닦고 하면서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은 아직 이 영겁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중생이 본래 '생사'가 없다. 이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수행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실로 '생사'가 본래 '생사'가 아닌 것이다.
 
또한 모든 불자들이 그렇게도 숭앙해 마지않는 '부처'도 제 성품이 없다. 따라서 '보리'(菩提)도 '열반'(涅槃)도 다 없는 것인데, 다만 어리석은 중생들이 「모든 부처는 '보리'와 '열반'이 있다」고 말할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중생이 이와 같은 사실을 분명히 아는 이가 있다면, 이것이 바로 중생이 '발심'(發心)한 것이며, 이것을 일러서 '부처'라고 하며, 이것을 일러서 '견도'(見道)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무명'(無明)을 깨달아 마친 사람인 것이니, 따라서 '무명'이 본래 없고, '중생'도 '부처'도 모두 없다는 것을 알면 이것이 곧 '깨달은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지혜로운 이가 어찌 힘쓰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