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가 정각(正覺)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박'이나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것의 '원인'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찾아내어 그것을 뿌리째 끊어버림으로써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인연법의 '남(生)이 없는 도리'를 깊이 통찰하지 못한 결과이다.
'부처'의 <지음 없는 근본지혜>(無作根本智)에 의지하는 '일승의 길'은 <'함이 있음'(有爲)과 '함이 없음'(無爲)이 둘이 아닌 경지에서의 '번뇌 없음'(無漏)>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범부의 살림살이는 모두 <세간법을 따르는 행위뿐>이요, 삼승(三乘)의 그것은 오직 <세간법을 여의는 행위뿐>인데 비해, 이 '일승의 길'은 <'세간'도 아니고 '출세간'도 아닌 것>이다. 이는 능히 이 '세간'을 따르면서 두루 행하나, 전혀 끄달리거나 물드는 일이 없는, 이른바 '보현행'(普賢行)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또한 '삼계'(三界), 즉 '탐욕이 치성한 세계'(欲界)와 '미묘한 형색의 세계'(色界) 그리고 '순수한 정신만의 세계'(無色界) 등은 그 모두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법>(思議法)이요, '삼승', 즉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 보살법(菩薩法) 등도 역시 마찬가지이니, 그것은 이들 모두가 전부 <얻을 바가 있는 법>(有所得法)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승의 지혜 경계'는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법>(不思議法)이니, 그것은 바로 <얻을 바 없는 법>(無所得法)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경우, 즉 삼계(三界)의 중생이건 혹은 이승(二乘)이나 정토보살(淨土菩薩)이건, 그 모두가 <과보가 있는 모습>(有報相)인데 비해, 오직 '일승의 불과(佛果)'만은 이미 '물들고 깨끗한 마음'(染淨心)이 소멸되었음으로 '과보'(果報)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다만 중생들이 즐겨하고 원하는 바를 따르면서 사물의 모습을 나투어 보이니, 이는 마치 둥글고 맑은 거울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가리지 않고 비추는 것과 같다. 즉, '부처 지혜'는 모든 중생과 더불어 '한 마음'을 같이 하면서, 전적으로 그 '마음'이 보는 바에 맡기는 것이니, '깨달은 사람'에겐 '법'이 본래 이와 같아서 그 작용이 가고 옴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도 이르기를,

  『 무릇 진실한 법은 '제 모양'을 버리고 '다른 모양'을 취하지 않는다. 만약 <'정각' 아닌 것>(不覺)을 버리고 <평등한 바른 깨달음>(等正覺)을 이룬다면 이것은 <진실한 깨달음>이 아니니라. 』
    
라고 했던 것이다.

이는 모든 중생이 <지금 있는 이대로> 모두 '깨달음의 자리'(覺位)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결코 '불각'(不覺)을 버리고 '정각'(正覺)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하나의 깨달음'이 '모든 깨달음'이어서, 항상 '정각'을 이루었고, '불각'일 때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