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모든 <대립의 피안>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혹시 <대립>을 떠나 <대립 없음>으로 가려하는 것은 아닌가요?
   
 

우리가 괴롭거나 슬플 때(기쁘고 즐거울 때도 마찬가지지만),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거기에는 예외 없이 <대립적인 두 개념 사이의 갈등>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즉, 재산의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 일의 성패(成敗) 등등, 전자일 경우야 당연히 즐겁겠지만, 후자일 경우는 괴롭고 슬프겠지요. 그래서 늘 후자는 없애버리고, 전자만 계속되게끔 마음을 쓰고 노력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 우리는 좌절하고 괴로워합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하지만 우리의 소원대로 <적음>, <낮음>, <실패> 등의 개념이 막상 영원히 사라졌다고 할 때, 과연 그 때에도 <많음>, <높음>, <성공> 등의 개념이 계속 그 의미를 갖고 우리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요?
 
인간의 의식구조가 얼마나 애매 모호한가 하는 것은 우리 일상의 언어 생활에서도 쉽게
드러납니다. 가령, "토끼는 뿔이 없다"···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 말이지요.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소나 사슴 등은 뿔이 있는데, 토끼는 뿔이 없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 뿔 가진 동물이 애초부터 없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 그 때에는 "토끼는 뿔이 없다"는 말은 아무 의미도 없는 '헛소리'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있다>, <없다>, <많다>, <적다> 등의 모든 상대적인 말들은 언뜻 서로 배타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너무 밀접한 상호 의존적인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대립적 개념의 어느 일방이 소멸되면 다른 일방도 따라서 존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모든 <대립적인 것>들은 '상호의존적'이며, 따라서 이와 같은 대립적인 개념이나 대립적 존재들이 빚어내는 갈등과 상극(相剋) 현상은 결코 어느 일방의 완전한 승리로 끝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한쪽만을 취하고 다른 한쪽은 없애버리려고 애쓰는 우리들, 이제 그 부질없고, 실현 불가능한 노력을 멈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에게 닥쳐오는 어떠한 상황이라도 그것이 다만 거울에 비친 그림자와 같이 성품이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철히 깨닫는다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애매 모호한 판단과 또, 그에 얽매인 우리의 고통스럽고 피곤한 삶은 곧 평온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넓은 바다 표면에 수도 없이 많은 크고 작은 파도들이 매순간마다 일었다 사라졌다 하지만, 바다 그 자체는 아무런 증감(增減)이 없이 미동(微動)도 하지 않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맑은 거울 위에 가지각색의 그림자가 비추었다 사라졌다 하듯이, 푸른 바다에 항상 크고 작은 파도가 일었다 사라졌다 하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갖가지 상황이 끊임없이 부딪혀 오지만 이내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겠지요. 그와 같은 온갖 차별적 상황들이 모두 하나의 <유기적 전체>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다면 말입니다. 모든 상황이나 형상이 원래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으면서도 다만 그 나타나는 모양이 서로 다르게 보일 뿐임을 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상황들에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면, 모든 상황은 그 자체로 <참>인 것이지요. 옳건 그르건, 이롭건 해롭건 모두 그대로 잘못된 것은 없는 것입니다.
 

  <대립 있음>을 <대립 없음>으로 바꾸려는 노력은 또 다른 대립만을 낳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상황에 대한 어떠한 비판이나 정당화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담담히 비출 수만 있다면 지금 여기 그대로가 바로 모든 <대립의 피안>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