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끊임없는 향상 발전의 끝은 어디인가?
 
진리가 보편성을 근본으로 한다면 비보편적인 것은 진리가 아닌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이야기해 왔습니다. 또한, 수많은 경전과 철학서적을 하늘같이 신봉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수행자들도 무수히 많지요. 하지만 그들을 비롯하여 우리 대부분이 간과해온 지극히 단순한 의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 우리는 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일까? "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야말로 끊임없이 바깥에서 무언가를 구하려는 우리의 시각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는 시발점이자, 진리의 실상을 밝힐 열쇠가 될 것입니다.

위에 제시한 의문의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앞서 욕망의 실상을 밝히며 거론한 바와 같이 그 해답은 바로 "욕망"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진리탐구에 대한 명분과 동기가 아무리 원대하고 심오하다해도 그 답은 동일합니다. . . 욕망 때문이지요. "도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고 싶다", "혼란과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영원하고 싶다" 등등. . .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결국 그것은 우리 자신의 "욕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 따라서 진리를 밖에서 추구하기보다는 "왜 나는 진리를 추구하게 되었는가?"라는, 자신 내면의 고찰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게 되기까지의 동요와 혼란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말은 결코 세속에서의 진리탐구가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탐구의 대상 이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 이라는 것입니다. 옛 성인들도 바로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됨을 늘 경책하셨던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고찰해야 할 점은 " 과연 진리는 탐구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진리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인류탄생이래 지금까지 인간은 진리를 찾아왔겠지요.
혹시 "'미지(未知)의 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첩보영화에서 접선할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접선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보셨는지요? 거기에는 최소한이나마 접선대상의 인상착의 등에 대한 정보가 제공됩니다.

결국 우리도 "진리는 어떠어떠할 것이다"라는 기왕의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 얻어진 막연한 정보를 가지고 그것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속에 그려놓은 모양과 비슷한 것을 찾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결코 "미지의 것"이 아닙니다.
 

 
참된 실재는 저쪽에서 찾아오는 것이지, 내가 그것을 찾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만약 내가 그것을 찾는다면 이때, 나는 나 자신에 의해서 투영된 '기지(旣知)의 것'을 찾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미지의 것(眞理)'에 대한 '충동'이나 '탐구'는 결정적으로 끝나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처음에 제시한 제목 즉, "이것이 진리다" 혹은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에 진리가 아니다"하는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의식'은 '기지의 것'의 지속적인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끈끈한 연결선상에서만 활동하는 우리의 의식, 이것은 어쩔 수없이 그 의식을 통해 그 작용과 활동, 그리고 욕구를 완전히 전체적으로 이해했을 때에만 종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단순히 종교적 집회에 참가한다든가, 강의를 듣는다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하는 것으로는 결코 이해될 수 없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당신은 사고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그 어떤 비판이나 정당화함이 없이, 한순간도 놓치지 말고 관찰하며, '적조' (寂照, 고요히 비춤. 止觀雙行) 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