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끊임없는 향상 발전의 끝은 어디인가?
 
새 물리학은 '절대진리'가 아닌, '인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거시(巨視)세계를 다루던 기존의 고전 물리학이 전자(電子)의 움직임 등을 기술하는데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그러한 미시(微視)세계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법칙 즉, 양자역학으로 대표되는 현대물리학이 탄생하게 됩니다. 당시에 발표된 여러 이론 중에서도 1927년 '하이젠베르그'(Werner Heisenberg, 1901∼1976)가 제시한 <불확정성 원리>와 앞서 언급한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는 그 동안 '객관적 실체'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믿어 왔던 고전 물리학의 기본적인 틀을 그 근저로부터 뒤엎은, 인류 문명의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동안 고전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어떤 물체이건 간에 그 <위치>와 <운동량(운동방향과 속도)>을 동시에 측정할 수 있었으므로 그것의 존재성을 인정할 수 있었지만, 모든 존재의 기본 단위라 할 수 있는 '양자'의 세계에서는 위의 두 가지 사항을 절대로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즉, 어떤 존재(양자)도 그에 대한 확정적인 기술(記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이는 다시 말해서 그 대상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되고 만 것입니다.

이들 이론이 내포하고 있는 철학적 의미(우리는 지금 존재가 존재 아닌 세계를 살고 있다는 사실)가 얼마나 충격적인 것인가를 과학자들 스스로가 얼마만큼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분명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보다도 더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 이론이 발표된 지 근 한 세기가 다 되어 가지만 그 이론에 따라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리도 신봉하는 <과학>의 이름으로 명명백백하게 증명된 엄연한 사실인데도 말입니다.
 
지동설이 보편적인 상식으로 자리잡는 데 수백년이 걸렸으니, 최소한 그만큼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요? 대답은 회의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수천년을 기다려 왔기 때문이지요. 위의 이론들은 2500년 전 '붓다'의 가르침을 20세기에 와서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는 간단히 말해서, 전자의 <위치>를 보다 정확히 측정하면 할수록 측정하는 순간의 <운동량(운동 방향과 속도)>은 그만큼 덜 정확히 파악되며, 반대로 전자의 <운동량>을 더 정확히 측정하면 할수록, 그 순간 전자의 <위치>는 그만큼 덜 정확히 관측된다 는 것입니다. 즉, 측정행위 자체가 측정대상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요. 이 말은 결국 이 두 가지를 결코 동시에 관측할 수 없다는 것이며, 나아가 이 두 가지 '물질의 속성' 가운데 어느 한 쪽을 관찰할 것인가 하는 <선택적 결정>을 바로 관찰자인 우리들 인간이 내려야 한다 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빛의 파동-입자의 이중성>과 같은 맥락의 얘기로서, 인간 스스로가 관찰해야 할 '물질의 속성'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결국 그 '속성'을 바로 <인간 자신이 지어낸다> 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양자역학에 의하면 '객관적 관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는 것이지요. 우리들은 자기 자신을 관찰의 현장에서 결코 제외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고, 우리들이 자연을 연구할 때, 자연이 자연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회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 결국 현대물리학은 '절대진리'(絶對眞理)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인간' 스스로에게 바탕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인간 자신의 현실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어느 의미에서는 사실상 그 현실을 창조하고 있다 는 실로 놀라운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지요.

 
 

2500년 전 '붓다' 이후, 많은 성인들이 한결같이 설파하였던 가르침, 20세기 들어서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 하지만 왜 우리의 세상 보는 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것일까요?
이 세상에 무엇 하나 <실체>는 없으며, 단지 거울에 비친 그림자와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심지어 그 그림자마저 우리가 이렇다면 이렇게, 저렇다면 저렇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흔히들 이 세상이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진다고 말합니다. 당연한 현상입니다. 인간 문명의 발전 속도는 점점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라지고,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그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한 우리의 몸부림은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계속 추구되어온 <향상, 발전>을 위한 모든 노력은 이제 그 근원적인 차원에서마저 그 존재의 당위성이 부정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것만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보다 안락한 삶, 보다 안정된 삶, 보다 풍족한 삶을 추구하여 마지않는, 인간들의 그 탐욕스러운 노력이 계속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성의 황폐화>만 더욱 가중되어 가고 있을 뿐, 진정한 "평화"와 "안정"이라는 인류 공통의 목표는 점점 공허한 소리로만 들리기 때문입니다.

목전의 현실을 실체로 알고 살아가는 한,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의 출구는 없습니다.
언제까지 진실을 등지고, 방황을 해야 하겠습니까? 인간이 그토록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진실, 아니, 인정하기를 두려워했던 진실, 이제 그 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할 때가 된 것입니다.

<마음뿐인 도리>(唯心), 그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이 세상의 모든 흐름이
<우리의 마음>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게 되고,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참된 평화를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