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끊임없는 향상 발전의 끝은 어디인가?
 
모든 물리적 현실은 우리의 '인식'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옛날 중국의 한(漢)나라에 강궁(强弓)으로 소문난 이광(李廣)이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어느 날 군사들을 거느리고 행군을 하던 중에 전방의 고갯마루에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군사들이 웅성거리며 동요 하는 사건이 벌어졌답니다.

이에 평소 자신의 활 솜씨에 자신이 있던 이 장군이 선뜻 나서서 호랑이를 향해 힘껏 화살을 날렸는데, 화살은 보기 좋게 호랑이에 명중했습니다. 의기양양해서 화살을 맞은 호랑이에 다가가서 확인했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그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흡사 호랑이를 닮은 큼직한 바위였던 것입니다. 화살은 그 바위를 보기 좋게 관통하여 꽂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이 장군은 자신의 강력한 활 솜씨에 더욱 우쭐해서, 아까 활을 쏘았던 그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바위를 향해 힘껏 활을 쏘았습니다. 그러나 화살은 기대와는 달리, 바위를 꿰뚫지 못하고 튕겨나가고 말았습니다. 재차 삼차 쏘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선문(禪門)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사람이 그것을 호랑이로 보면 호랑이로, 바위로 보면 바위로 기능한 셈이니,··· 「만법은 오직 마음으로 지은 것일 뿐이라」(萬法唯識)는 '붓다'의 가르침을 드러내기에 알맞은 화두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에 들어서면서, 이런 이야기는 더 이상 조금도 신기할 것이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그러한 현상은 너무도 당연한 것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은 이런 사실이 일반 사람들의 상식으로 자리잡기엔 상당한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말입니다.
   
  20세기 초반, 많은 물리학자들이 <빛의 성질>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을 시도한 끝에, 기존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선택하는 실험방법에 따라서 <빛>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성질 즉, <입자(粒子)적 성질>과 <파동(波動)적 성질> 모두를 띠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가령 간섭현상(干涉現象)을 일으키는 <쌍'슬릿' 실험>을 통하면 <빛의 파동적 성질>이 증명되고, 광전(光電)효과 를 통하면 <빛의 입자적 성질>이 입증되는 것이지요. 이 실험결과로부터 192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닐스 보어'(Niels Bohr, 덴마크, 1885∼1962)는 빛의
<파동­입자의 이중성>을 설명하기 위해 '상보성원리'(相補性原理)라는 이론을 발표하게 됩니다.
   
 

즉, '파동'의 성질과 '입자'의 성질은 빛의 상호 배타적이면서 동시에 상호 보완적인 측면들로 , 비록 그 어느 한 쪽이 언제나 다른 한 쪽을 배척하지만, 이 둘은 모두 빛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는 것입니다. 이처럼 두 성질이 서로 배척하는 이유는, 빛 또는 그 밖의 그 어떤 것도 동시에 파동이면서 입자일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배타적인 두 성질이 어떻게 동일한 '빛'의 공동 성질일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당대의 물리학자들은 전혀 새로운 사고의 전환점을 맞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것들이 '빛'의 고유의 성질이 아니라 <빛과 인간(觀察者)과의 상호작용>의 성질 이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어떤 실험방법을 선택하는 순간, 다시 말해 우리의 의도가 정해지는 순간 빛은 우리가 의도한 바대로 보여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둘 중의 어느 하나가 진정한 빛의 성질이냐고 묻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다시 정리해 본다면, 빛은 스스로의 독립된 성질을 갖고 있지 않으며, 앞장에서 밝힌 바와 같이, 어떤 대상이 그 고유의 성질이 없다는 것은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물리학자들이 밝힌 빛의 성질이 우리와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상호작용의 한쪽인 우리들 '인간'이 없으면 '빛'은 존재하지 않는다 는 실로 놀라운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동안의 고전물리학에서는 <이미 거기에 있는 어떤 대상>을 사람이 여기에서 관찰함으로써 그 존재를 알 수 있었지만, 현대물리학에 의하면 우리가 관찰하기 이전에는 그것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관찰 대상이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라, 단지 '상호관계'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지요.

즉, 그것이 거기에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오직 관찰자가 지어내는 '개념작용'을 따르는 것일 뿐, 관찰자가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2500년 전 '붓다'가 설파했던 <'만법유식'(萬法唯識)의 이치>를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꾸어 놓은 것으로서, 결국 20세기 들어서 '붓다'의 가르침이 최첨단 현대물리학에 의해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것이지요.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제 이 장군이 그것을 바위로 본 이상 화살은 결코 그것을 뚫을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