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일까?
 
무릇 진실한 법은 제 모양을 버리고 다른 모양을 취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교회나 절, 그 밖의 이러저러한 종교 사이트를 찾아 다니면서 그들의 고달픈 마음을 고요하고 맑게 바꾸어, 보다 안정된 삶을 보장받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그들의 의도대로 마음이 맑아지고 삶이 안정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잠시일
뿐, 곧 다시 산란해지고 다시금 갈등을 겪게 되리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늘 반복해서 겪게 되는 현실입니다.

이 세상에는 <지속되는 것>(그것이 좋은 일이건 궂은 일이건 간에)은 없기 때문이지요.
"시작"이 있는 것은 반드시 "끝"이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늘 반복되는 부질없는 노력은 그만 종식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흔히 불가(佛家)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맑은 거울에 비유하곤 합니다. 맑은 거울은 그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 즉 아름답거나 추한 것, 즐겁거나 괴로운 것, 번듯하거나 초라한 것 등, 그 무엇도 차별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지요.

우리의 <본래 마음>도 바로 이 맑은 거울처럼 항상 모든 대상을 아무런 조작도 없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내는 것이 진실이지만, 단지 우리의 왜곡된 의식이 그것을 바깥의 대상물인 양 오인(제가 비추어낸 것인 줄 모르고)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늘 동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래 마음>은 거울의 맑은 성품처럼 물들 수도 없고, 더 깨끗하여질 수도 없는 것이며, 더구나 우리의 '의식'으로는 알아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식'이란 바로 <마음의 거울>에 나타난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자를 <나의 마음>인 줄 잘못 알고, 그 그림자를 좇으면서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그림자(생각)를 나의 마음인 줄 잘못 알고 살아가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절로, 교회로, 혹은 경전 속을 뒤지면서, 보다 나은 느낌(헛된 생각)을 좇아 나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목전에 펼쳐지는 온갖 모습들은 인연화합으로 잠시 머무르는, 스스로의 성품이 없는,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보다 투철히 자각하여, 마치 거울이 모든 형상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비추듯이, 그 상황을 아무런 비판이나 정당화함이 없이 그저 정관(靜觀)할 수만 있다면, 그 때에야 비로소 그 어떤 상황에도 물들지 않는 본래의 참된 성품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나의 마음이 진정 맑은 거울 같은 존재일진대, 그 거울 위에 아름다운 모습이 비추건, 추한 모습이 비추건 <참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인연이 다하면 그러한 모습은 이내 사라질 터이고, 사라진 그 자리엔 언제나 맑은 거울 같은 <나의 마음>만이 남게 되겠지요. 그러니 괴롭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나의 마음>이라고 여기는 한, 우중충한 그림자를 핑크빛 그림자로 바꾸려는 부질없는 노력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추악하거나 혹은 훌륭한 그림자라 할지라도 그 스스로의 성품이 없듯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모습 역시 그와 한치도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가 참이요, 진실인 것이지요.··· 맑은 거울은 모든 모습을 그저 담담히 있는 그대로 비출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