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깨닫는 자도, 깨달은 바도 모두 대원경에 비친 그림자일 뿐이니,

어느 것 하나라도 이게 이거라고 지칭할 게 없소.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이 낱낱이 다 아니니, 어디에 머무를

수 있겠으며, 또 어디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누가 궁시럭거릴 수

있겠소?

‘머묾이 있음에도 머물지 않았고, 머묾이 없음에도 머물지 않았다’

하면, 아무도 못 찾소.

머묾이 있건 머묾이 없건 둘 다 의식의 영역이오. 의식이 작동을

멈추면 말이 붙을 데가 없어요. 머묾이 있는 법도, 머묾이 없는

법도, 모든 법의 성품은 허공성이오.

어제의 잔재, 묵은 기억들이 현재에 반응하는 것이 ‘체험’이오.

매순간은 일회적이고 찰나적인데, 과거의 잔재를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짓고 있는 거요.

내가 뭐를 알고 깨달았건 모든 체험은 ‘나’를 ‘강화’합니다!

견문각지에 현혹되건,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게 전부 다 빈 거라

고, 티끌만한 한 법도 의지할 것 없고 관여할 것 없다고 ‘알았건’,

그 양쪽이 모두 의식의 영역이오.

‘모든 법이 성품이 비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체달하게 되면

의식이 저절로 멈춰요. 스톱 모션 걸려서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고,

의식이 움직이건 움직이지 않건, 본체를 본 거요.

머무는가, 머물지 않는가, 이 두 가지를 놓고 왔다 갔다 하면,

천년만년 왔다 갔다 해도 헛일이요. 이게 하나로 융즉해야 해.

둘 중 하나를 세워놓고, 이거 없애고 이거 세우고 하는 거 아니고,

이 두 가지가 다이내믹하게 원융되는 거. 서로 상반되는 인자끼리

서로가 서로를 허무는 일 없이 공조하는.

성품 본 사람에게는 모든 대립 개념이 하나도 서로 상충하지

않소. 아는 게 모르는 거고.

온갖 그림자라고 해서 없애버리는 것 아니오. 지금 이대로인 채로

혼란스러운 세간사하고 함께 어울리면서도, 세간사를 하나도 허무

는 일이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