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보통 세속의 강의나 강연은 모르는 게 있으면 물으면 되나 여러분의

공부는 묻고 대답하는 사이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소. 정작 알아

야 될 것은 묻고 대답하는 사이에 있는 게 아니오. · · · · · · 그래도

물어야 하오. 말을 해도 말이 아니고, 들어도 들음이 아니오. 그렇지

만 말씀은 지극히 필요하오. 이럴 때에 입 없는 사람이 말을 하고, 눈

없는 사람이 보고, 귀 없는 사람이 듣는다는 뜻을 알아야 하오. 이 육

신은 지각이 없고 환화공신이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게 진실이오. 이런 말들을 전부 안 믿는 거요. 전부 다 밥과

반찬의 기운으로 뻗치는 거요. 어디를 찾아봐도 지각활동을 할 수 있

는 ‘나’라는 ‘나’는 없는 거요.

머무름 없는 근본에서 모든 것을 세운다는 말이 있소. 그러나 범부들

은 ‘내’가 모든 것을 세우고 베푼다고 알고 있소. 하지만 법을 설하는

자와 법을 듣는 자는 모두 머무름 없는 근본에서 세워지는 거요. 낱낱

의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주재자는 없는 거요. 그러니 무슨 말을 들었

거든 그 말의 뜻을 철저히 구명해야 하오. 그 뜻을 구명할 때 방해가

되는 것이 ‘내’가 사고의 주체, 관찰의 주체라는 상식이오. 지금 이 말

과 상식이 충돌할 때 누가 흔쾌히 상식을 포기하는가가 이 공부의 요

체요.

여러분의 탐구가 아주 미세하고 깊은 곳에 닿게 되면 자기 지혜의 힘

으로는 해소가 안 되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오. 이럴 때 한 가지 숨통

을 틔울 길이 있소. 바로 생각이 없는 거요. 포기한다는 말이 있소. 단

념, 체념 다 같은 말이오. 무슨 뜻인가? · · · · · · 해결해야 될 법은 아

무것도 없소. 애초에 근본 없는 데서 모든 법이 난 거요. 그렇다면 모

든 법은 근본이 없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