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품천(稟天)이란 말이 있소. 하늘이 내려줬다는 뜻이오. 하늘이 내려주신 천

진한 성품은 인간의 머리로 궁리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오. 그 반대요.

자신의 고행과 노력을 통해 그 천진한 성품을 얻어 가져야겠다는 그 ‘나’란 놈

의 숨이 죽어야 비로소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거요. 그런데 여러분의 최고 관

심사는 뭐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 놈을 ‘나’인 줄 알고, 이 세상을 실제인 줄

알고, 그 어간에서 어떻게 요령 좋게 잘 지지고 볶고 해서 보다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제 일 목표 아니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수행자라 할

수 있겠소.

　망정(妄情)이 맺힌 게 ‘나’요. 그 ‘나’란 놈 중심으로 여태까지 모든 걸 보고

듣고 꾸려왔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회심하기가 참으로 어렵소. 전체가 개오

(開悟)되어 진실을 밝히게 되면 티끌만한 한 법도 상대할 것이 없소. 다시 말

해 이 마음이 향하는 바에 걸림도 막힘도 본래 없는 거요. 그런데 무엇이 여

러분의 발목을 잡고 콱 막히게 하는가? · · · · · · 바로 그 망정이요. 안으로

실체가 없는 것을 ‘나’로 알고, 이놈이 보는 걸 ‘내’가 보는 줄 알고, 이놈이

듣는 걸 전부 ‘내’가 듣는 줄 아는 거요. 다시 말하지만 이놈은 지각(知覺)이

없소.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오. 이

말이 지금 믿기지가 않는 거요.

　이 ‘나’는 인연생기요. 긴 얘기도 아니오. 인연 따라 난 것은 자체로 성품이

없소. 자체로 성품도 없는데 이놈이 어떻게 지각활동을 하겠냐 이 말이오. 여

러분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이 ‘나’가 주도적으로

행하는 줄 알고 있는 거요. 지금 이 만큼 여러 해 동안 법문을 들었어도 아직

도 이 ‘나’가 행위의 주체, 수행의 주체, 사고의 주체인 줄로 알고 있는 한, 그

사람은 깨닫기는 글른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