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허망함을 맛본 자가 누구요? · · · · · · 지금 자기는 빼놓고 나머지만 다

허망하다 소리나 마찬가지인 거요. 말인즉슨 ‘나’까지 포함하여 허망함을

맛봤다고 하지만, 만약 ‘나’를 포함하여 몽땅 허망하다 그러면 허망함이라

는 개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거요. 누가 있어서 허망한지 안 허망한지

판단을 하겠냐는 말이오. 허망하다는 개념은 능소의 관계에서 지어질 수밖

에 없소. 관찰자와 관찰대상 사이에서 지어진다는 얘기요. 만법이 몽땅 허

망하다면 관찰자도 관찰대상도 다 없는 거요.

　참되니 허망하니 하는 말 자체가 본래 잠꼬대요. 면전에는 지금 티끌 하

나 없이 적멸하오. 그러나 중생들이 ‘실제로 있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그게

다 허망해서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뿐이오. 그렇다고 이 말을

듣고 또 전부 다 허망하다, 비었다, 환(幻)이다 하는 식으로 알아버린다면

그건 똑같은 어리석음으로 이쪽저쪽 하는 거요. 있을 유(有)에 붙었다가

없을 무(無)에 가서 붙는 꼴이란 말이오. 그렇게 시계추처럼 이쪽저쪽을

계속 왔다갔다 하는 게 범부요. 참이니 허망이니, 있니 없니, 범부니 성인

이니 등등.

　아무리 희한하고 대단한 것을 깨달았다고 해도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건

그 깨달음의 내용을 물어볼 것도 없이 치도곤(治盜棍)이오. 깨달은 자가 있

어야 깨달은 바가 있는 거요. · · · · · · 진리는 깨달을 수가 없소. 만약 누

군가가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진리 바깥에서 그 진리를 봤

다는 소린데, 그럼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서 깨달았니 어쩌니 말하고 있는

거요? 전체가 참된 하나라면 참이니 허망이니, 있니 없니 하는 소리가 애초

에 성립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하오. · · · · · · 참으로 참구가 깊고 진지해야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