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여기 물수건 한 장이 있소. 자 이제 이 수건이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는가를

한 번 따져봅시다. 순면이냐 혼방이냐 따위의 재질이 무엇인가는 재처 두고,

수건이 가로실과 세로실로 짜여져 있다는 것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 거요.

즉 가로실과 세로실을 서로 번갈아 교차해서 짰더니 이런 네모난 모양의 수건

이 실재로 생겨났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게 여겨요. 그럼 이 수

건의 가로실과 세로실을 전부 뽑아서 따로따로 놓아 봅시다. 그럼 어떤 상황

이 벌어지겠소?· · · · · · 가로실 세로실이 서로 얽어져 있던 이런 모양과 수

건이라는 이름과 그 쓰임새가 한순간 없어진 거요. 그 실 무더기를 수건이라

고 할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오. 같은 방법으로 뽑아놓은 각각의 실을 다시 그

구성을 살펴보면 섬유소 등으로 되어있을 테고, 섬유소는 수많은 분자들로 이

루어졌을 테고, 분자는 다시 원자, 원자는 전자와 핵 등등.· · · · · ·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할 거요.

　제대로 된 수행자는 이때 수건이 새로 생겨났다커니 수건이 없어졌다커니

하는 말은 전부 우리의 머릿속 관념만으로 지어서 하는 소리라는 사실을 잊어

서는 안 되오. 수건이라는 그 이름과 한정된 모양에만 국소적으로 집착하면 영

락없이 새로 생겨났다고 핏대 낼 거요. 하지만 허공성이요, 무생성이요, 무작

성인 법성의 도리에 비추어보면 수건은 새로 생겨난 일도, 없어진 일도 없이 늘

거기 그렇게 수많은 인자와 함께 있었을 뿐이오. 그게 어느 순간 묘한 인연을

만나면 수건도 되고 옷도 되고 모자도 되고, 인간의 필요에 따라 온갖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우는 거요. 온통 이름만 난무할 뿐이라 소리요.

　‘나’를 포함한 하늘 땅 삼라만상이 다 이 수건과 다르지 않소. 이 세상 모든 게

전부 다른 그 무엇으로 이루어졌으니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자기만의 고유의 성

품이 있는 것은 없소. 딱히 이것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요. 그렇기 때

문에 능소의 증득이 있을 수가 없고, 그렇게 마음에 능소의 자취가 없어야 정각

을 이룬다고 한 거요.